2015.10.18.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열왕기하18:1-12)

[성경본문] 열왕기하18:1-12개역개정

1.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열왕기하18:1-12/2015.10.18.오전)
1. 저희 맨션 옆에 시 소유의 넓은 공터에 몇 년 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의 임시 교사가 있었는데, 교사가 완공이 되자 학교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가고, 이곳은 다시 공터가 되면서, 지난여름에는 그곳에서 올라오는 잡초들이 2-3미터씩 자라 대단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시 직원들이 와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잘라내고 나니 또 다시 텅 빈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잡초는 주위의 나무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렇게 빨리 자라고 무성해서, 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모여 들어도 때가 되니 아낌없이 밑둥치까지 잘려 나가고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며 왠지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연의 이치는 성장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만 지상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교회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쓰임 받는가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같은 시대에 나라가 다르고 통치하는 왕이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히 왕으로서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우리도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원히 복을 받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히스기야는 유대 나라의 13번째 임금으로 25세에 위에 올라 29년간 나라를 다스린 왕입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히스기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니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 할 뿐만 아니라, 5절에는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 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역대 왕들 중에서 이렇게 칭찬이 많고 대단한 왕은 없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스기야 임금의 부친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아하스 임금입니다.
아하스는 정치적으로는 친 앗수르파였고, 신앙적으로는 성전 문을 닫아 걸고 온 나라 백성이 우상숭배 하도록 만든 사람입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정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의 조상인 다윗을 따르고 다윗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이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을 부수는 하나님 중심의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을 보면 여러 우상을 깨트려 우상숭배를 못하도록 만들 때, 그 가운데서 특히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까지 부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놋뱀이 무엇입니까? 왜 히스기야가 모세가 만든 놋뱀을 파괴했습니까?

3. 놋뱀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이스라엘이 메마르고 험한 광야 길로 인하여 속이 상해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로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5) 고 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이 진중에 불뱀들을 보내셨고, 불뱀이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물었는데 물린 사람들은 뱀의 독으로 인해 사경을 헤메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올렸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놋으로 뱀을 만들고 그것을 높은 장대에 메 달게 하고, 뱀에 물린 자마다 이 놋뱀을 쳐다보면 해독이 되고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뱀에게 물려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있는 상황에서, 똑같은 뱀을 다시 쳐다본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것이고 인간의 정서상 용납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쳐다본 사람들은 다 치료가 되었습니다.
치료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의 죄를 용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이 놋뱀을 만들어 그곳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어가던 사람들이 이 놋뱀을 보고 살아났으니 이 놋뱀에 큰 능력이 있는 줄 착각한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불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이 놋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여부를 보는 도구에 불과한 것인데, 마치 그것이 능력 있는 신인 것처럼 숭배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4. 물론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놋뱀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과 그 은혜를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드라큐랴 같은 영화에서 믿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십자가 자체에 큰 능력이나 있는 줄 알고 귀신이나 흡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잘못 묘사하고 있는데, 구약시대의 사람들도 이 놋뱀을 그렇게 생각하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 놋뱀이 신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절대적인 상징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임금에 이르도록 여러 왕들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이 놋뱀 만큼은 절대로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인데, 히스기야는 초반에 이 놋뱀을 부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사안이었지만 히스기야는 우상을 부수는데 있어서는 종류를 가리지 않았고,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34:14절에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내 사랑의 대상을 남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질투는 불보다 무섭고 예리한 칼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우리의 하나님도 육신과 영혼이 영원토록 파멸되는 것도 모르고 잘못된 사랑으로 달려가는 인생을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기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자기 사랑을 빼앗기심으로 그렇게 질투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5. 그래서 놋뱀이 비록 한 때는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상징물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백성들을 잘못된 우상숭배로 빠지게 만드는 유혹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낌없이 그 놋뱀을 부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신앙은 결단이고 용기가 있어야 하고, 말씀에서 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영적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똑같은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똑같은 신자요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능력이 있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제 믿음도 바로 지키지 못하는 부끄럽고 못난 신앙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주저함없이 단행할 수 있었습니까?
본문 6절에 분명한 답을 주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 연합한다는 연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다바크” 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꼭 붙어 있는 것처럼, 연인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를 가든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룬 것처럼 그렇게 붙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임금의 종교개혁의 원동력은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연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온 것입니다.

6.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 때 이웃 나라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붙어 있다가 애급에게 붙었다가 이리저리 상황에 따라 머리를 굴려가면서 유리한 쪽에 붙어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본문 9-10절에 기록된 대로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3년 동안 공격을 했는데, 그 때 이웃나라인 유다의 히스기야 임금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이웃이요 형제 국가인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히스기야는 부친 아하스 임금이 유지하던 앗수르를 의지하는 정책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은 신앙의 결단이요, 믿음의 용기요, 말씀이 주는 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우상을 섬기기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히스기야 임금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힘의 근원이었고, 구원의 손길이었고, 그 분이 축복하시면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친이 가던 길을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나라에서 히스기야 임금처럼 하나님께 이렇게 칭찬 받은 왕이 3사람 있었습니다.
왕상15:9절 이하에 나오는 아사왕이 있었고, 왕하 22:1절 이하에 나오는 요시야 왕이 있었고, 그리고 본문의 히스기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세 왕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한 왕들에게서 자녀로 출생했다는 것과, 왕이 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영적으로 우상숭배로 인해 저주 받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존재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능하고 죄악으로 더러워져도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윗과의 언약이 이런 사람들을 통해 승계됨으로 일을 이루는 것이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비록 환경과 조건이 나쁘고 인생이 연약해도 인생의 길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택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복된 길을 가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심을 따라 세상을 택하고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심판받고 저주아래에 갇힌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7. 히스기야가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만든 이 놋뱀을 부수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느후수단”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번역하면 놋 조각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만든 이 놋뱀은 신이 아니라 단순한 쇠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이 참으로 믿고 의지하고 따라 갈 자가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인생이 추구하고 자랑하는 모든 것은 전부 일시적이고 유한하고, 그래서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지만,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였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요,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히스기야 임금의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과 산당들을 다 헐어버리고, 모든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대하29:3절에 보니,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 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닫힌 성전의 문을 열고, 낡은 성전을 수리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를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방해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다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고 거룩한 일은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는 일을 뒤로 미루다가는 반드시 사단이 시험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8.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가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히스기야 처럼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왕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면서 이리저리 머리 굴리면서 살았더니 기원전 722에 앗수르에게 망하고 말았지만, 이웃 나라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로 만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신앙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스스로를 의지하다가 망했지만, 지혜로운 자는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7) 는 말씀대로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우리의 신앙이 옛날보다는 많이 변질되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알고 행하지 않으면 더 많은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처럼 깨달은 것을 즉시 고치고 행하면 큰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일본 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는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히스기야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여 더 아름답고 능력이 넘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자녀교육에 실패하고 자녀를 믿음으로 이끌지 못하면 그 인생은 패배자요 부끄러운 인생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강론할 것”(신6:7) 이라 했습니다.
셋째는, 이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삼아 일본을 복음화 하면서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칭찬을 받는 그런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9.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요10:29) 고 하시고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참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자손들까지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이 종교개혁 주일인데, 우리 삶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 가운데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먼저 우리 안에서부터 참된 개혁 변화가 있기를 바라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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