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1.오직 여호와뿐입니다(열왕기하17:24-41)

[성경본문] 열왕기하17:24-41개역개정

24.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25.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27.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29.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4.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오직 여호와뿐입니다(열왕기하17:24-41/2015.10.11.오전)


1.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씨는 늘 대통령을 꿈꾸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잘못되어 감옥에 갇혀도, 아무리 실망스런 환경과 조건 속에 있어도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도중에 적당히 수정하고 타협하면서 자기의 길을 갔지만, 그는 오직 대통령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꿈을 꾸고 인생을 계획할 때, 대부분이 자기의 수준에 맞추게됩니다.
그 결과는 원대한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실패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생각하는 대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슬픈 마음을 가지면 얼굴에도 슬픔이 가득하고, 기쁜 마음을 가지면 얼굴에도 기쁨이 나오는 법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만큼 영육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신뢰하고 얼마만큼 크게 믿는가에 따라 우리의 표정은 물론이고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2. 가나안 땅은 원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곳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에서 열방의 자랑거리가 되는 복받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은 나중에 전쟁의 고통과 기근과 질병이며, 온갖 어려움이 찾아오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믿음을 요구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대신에 자신들의 어리석은 욕심을 따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축복의 땅에서 도리어 늘 고통과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는 그 땅에 사는 7부족을 몰아낸 후에 그 땅을 차지하였는데, 그 땅의 원주민들인 가나안 부족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이유가 지나친 우상숭배와 죄악의 관영함 때문이었습니다(민33:52-53).
특히 우상숭배를 위해 자기 자녀들을 불 태워 재물로 삼은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보다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따라서, 그들을 본받아 함께 우상숭배하고 함께 죄악의 낙을 누렸고, 그 결과는 오늘 본문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부족들을 몰아내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앗수르에 점령당한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 사방으로 흩어짐을 당하였고, 그들이 거주하였던 이스라엘은 도리어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거나 죄가 가볍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많고 적은게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맺은 약속을 깨트렸고,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짐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축복의 땅이요 거룩한 땅의 주민들이라 할지라도,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로 말미암아 그 땅을 더럽힐 때에는, 하나님이 이방인으로 그 땅을 대신하여 죄가 주는 결과가 어떤 것임을 만방에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이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이것이 그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멸망한 이스라엘의 땅이 이제는 사자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달려들 정도로 그 땅이 황폐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땅이 될 정도로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땅을 차지하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점령지 곳곳에서 다른 민족들을 서로 교차하여 이주시킴으로 그곳에서 두 번 다시 반란이나 독립운동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핵심 세력을 전부 다른 나라로 끌고가서 사방에 흩어버리고, 이스라엘에는 다른 점령지의 민족들을 데려다가 그곳에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예수님 시대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상종도 하지 않았으며,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잇는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었지만, 일부러 다른 곳으로 돌아가서 왕래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700여 년 전의 이스라엘이 행하던 우상숭배와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4.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신기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민족들이 이스라엘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들은 이미 자기 나라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그들과 상관이 없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25절을 보면, 사자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물어뜯어 죽이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각 지역에는 각각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려고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복자인 앗수르 왕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고, 종교에 관해서는 관대한 정책을 쓰고 있던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에서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 중에 제사장을 찾아내 그를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로 보내어, 이방 나라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참 하나님을 찾아서 예배하려는 믿음이 아니라 이 땅을 지배하는 신에 대한 지식과 그 신을 섬기는 예배에 관한 지식이었습니다.
현대의 교회들이 선교정책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매우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겠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일 수 있었습니다.

5. 우리는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 보다 더 악하고 잘못된 민족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백성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존재, 즉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숭배하며 물마시듯 죄악을 더해가면서, 하나님께 전연 관심도 없던 이스라엘에 비하면 훨씬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로 물이 들자 그 누구도 이 일에는 무관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식은 힘이 된다고 말하는데,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많이 안다고 잘 섬기고, 많이 배웠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능력이 나오고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이 누구를 향하고 있으며,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 있으며, 지금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고 있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이방 땅에서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그 땅의 하나님의 법”을 알기 원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이 그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알기 원했던 하나님 섬기는 법은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문제였습니다.
27절에 보면, 먼저는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온 제사장 한 사람을 사마리아로 데려와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잘못 섬겨서, 우상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죄로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바른 믿음의 도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32절에도 보면,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고 했는데, 레위 자손도 아닌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으니 그는 이방인으로서 더구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6. 또한 29절에 보면,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산당에 두어,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3)고 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왕에 섬기는 신이니 그 신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신들 중에 여호와를 또 하나 추가해서 하나님으로 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혼합종교였습니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본의 종교풍토와 너무 많이 닮았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경외하여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살면서 그 땅의 신의 진노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신을 선택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신을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은 사람들이 만드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인생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축복하시는 만물과 인생의 주인이시오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죄 가운데 빠져 고통하는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분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고 영원한 기업을 잇는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7.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가 본문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사람들이 사자에 물러 죽을 때,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짐승을 통해서 사람들의 불신앙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원인 제공자이시며, 그 과정의 진행을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요, 그 결과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 분입니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이 겉으로는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제단도 만들고 제사장도 세우고 정기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도 드렸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요, 이전에 다른 신들을 섬기던 풍습대로 행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비록 이방인이였지만,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예비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와 그들이 살게된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전의 행하던 풍습대로, 이전에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던 그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이방인으로 살아도 누구에게나 구원의 길은 열려 있으며, 구원의 은총을 입을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8.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할 때, 남쪽 유다 나라의 임금은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냥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유대 나라에 바알 우상을 들여오고 자녀를 불에 태워 바치는 몰록 우상을 시작하고 제 자신의 자식도 태워 바친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 아하스 임금 때문에 유대 나라는 매우 쇠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히스기야는 우상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부친이 만든 우상들을 다 파괴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종교개혁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왜 부친 아하스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기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왕들처럼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려고 종교를 빙자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을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일어난 일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불량 소년, 소녀들이 처음에는 친구의 꾐에 빠져 잘못된 행동을 하다가도, 자신의 행동을 보고 부모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뉘우치고 바른 길을 걷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슬프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온갖 유혹을 끊어 버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듯이 하나님 섬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연합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성령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큰 능력, 큰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9. 본문에서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만을 경외하고, 여호와만을 경배하며 여호와께만 제물을 드릴 것” 이라 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이나 그 땅에 새로 들어온 이방인들이나 한결같이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행하던 습관대로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여호와도 다른 신들 중의 하나처럼 그렇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원받은 그의 백성들 사이에는 소중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언약입니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해 봐서 알지만 언약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어기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가거나 여러 가지로 벌을 받습니다.    

그 만큼 언약이나 약속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일에 바쁘다 보면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리”(35) 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만이 연약한 인생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길이요, 이것만이 죄인이 용서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망해버린 이스라엘이나 차별도 상관이 없습니다.

10.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이 사랑을 위해서 어떤 것까지 아낌없이 희생해 줄 수 있는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의 차이점이 무엇이며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사도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잘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롬3:9) 선언했습니다.
다 하나님을 떠나 한가지로 치우치고 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망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기에 상응하는 은총과 축복을 누리려면 다른 모든 것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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