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19.요아스의 신앙과 인생(열왕기하12:17-21)

[성경본문] 열왕기하12:17-21개역개정

17.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아스의 신앙과 인생(열왕기하12:17-21/2015.7.19.오전)


1.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에 보면 여우와 호랑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 보면 호랑이에게 꼼짝없이 잡혀 죽게 된 어느 여우 한 마리가 꾀를 내어 살아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우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 호랑이가 강하고 무섭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짐승은 없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이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고 여우는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 주겠다고 하면서 내 뒤를 따라 와 보면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호랑이가 코웃음을 치면서 여우 뒤를 따라가 보니 만나는 짐승마다 기겁을 하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뒤 따라 오는 호랑이가 무서워 모든 짐승들이 도망하는 것도 모르고, 호랑이는 생각하기를 과연 이 여우가 무서운 놈이구나 생각하고 슬그머니 도망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위광(威光)」 이라고 표현합니다.
위광은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위엄이나 권위를 말하지만, 어떤 사람 자체의 인격이나 실력이나 감화력 보다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인맥이나 지위나 출신 같은 것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자기는 어디 어디의 무슨 교회를 나간다고 말하는데 그 분위기를 보면 영락없이 유명 교회의 위광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신앙의 평가가 아니라 그 교회의 유명세, 목회자의 유명세,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명한 누구 누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요아스 임금의 신앙과 인생의 종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아스 왕을 가리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12:2) 한 왕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24장에 보면 요아스 임금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정직한 왕이라고 인정을 받은 것은 순전히 여호야다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라는 위광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죽음으로 인하여 요아스도 빛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요아스 임금의 인생 전반부와 후반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우리는 요아스 임금의 종언을 통하여 이 시대와 우리들의 신앙을 재점검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대하24:17절 이하에 보면 여호야다가 죽고 나자 유다 방백들이 각 지역에서 요아스 왕을 찾아와 간언을 하고 있습니다.
17-18절의 문맥을 보면, 각 지방 산당에서의 예배를 허락해 달라는 간청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우상숭배를 뿌리 뽑았던 정책에 180도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18) 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겠지만, 요아스는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자질은 배움을 통해서 리더십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많이 배워도 자기 중심이 없으면 남을 이끌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의 특징은 귀가 얇아 남의 말을 잘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된다면 가정에서 자녀들과 남편이나 아내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영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가정의 불신앙의 세력들과 싸우는 싸움인데, 이런 리더십이 부족하면 도리어 불신앙의 식구들의 말에 넘어갑니다.
요아스 임금의 경우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여호야다의 말을 듣고, 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죽고 나니 이제는 간신배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침내 그들의 영향력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요아스를 보면서 그의 신앙이 지나치게 인간 의존적인 신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 여호야다에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서 영적인 감화를 받았으면 이제는 남다른 자기 신앙과 통치의 스타일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남의 말에 순종하여 신앙 생활은 할 수 있었지만, 남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적 영향력은 나타낼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쉽게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은 다 인간 중심의 의존적인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선교 사역을 어렵다고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불평만 하는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로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고 없는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앙입니다.
시편기자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10-11)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도 시편55편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떨림, 고통과 분노 속에 빠져 있었고, 도무지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자신의 대적들을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홀로 서는 신앙을 얻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던지 어떻게 대응하던지 관계없이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5. 이로 볼 때, 인생의 문제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아무리 철옹성을 쌓고 그 안에 숨어 있어도 내 안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요아스 임금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사람들의 말에 인생도 신앙도 국가도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지방의 산당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용인하고 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도움을 줄 테니 이방신을 제사하는데 한 번만 와 달라는 데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그래서 내 생각에 이번 한 번만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악의 세력이나 불신앙의 세력일수록 이쪽에서 한 번 양보해 주면 그것을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내가 물러나고 항복을 선언하고 파멸에 이를 때 까지 그들은 끈질기게 잘못된 것을 요구합니다.
지난번에도 했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뭘 그렇게 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요아스 임금은 스스로 수리에 열심을 내었던 그 하나님 성전을 버리고 산당에 가서 이방신을 숭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이 중요합니다.
안되는 것, 신앙에 위배되는 것은 처음부터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저항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타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적어도 신앙의 세계에서는 나중은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오늘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그 뒤로 가는 한 걸음이 두 번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렸던 안이숙 여사는 20살 때 신사 참배를 강요 당하자, 일본 헌병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주님께 이미 절 했기 때문에 일본 순사에게 절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며, 나는 주님을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할 순 없다고 했습니다.
    좁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 옛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하소서.

6.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했습니다.
신앙이 자리지 못하고 아직 어릴 때에는 자주 넘어질 수도 있으며, 주위 사람들을 실망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도 계속 넘어지고 실망을 준다면 그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 아닙니다.
요아스 임금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여호야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불행하게도 또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것을 좋아했고, 우상숭배자들은 이러한 그의 약점을 노려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하도록 유혹했고,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으니 그는 누가 붙잡아 주고 끌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장성 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세상을 중심으로 살면 신앙 생활이 어려워지고, 신앙을 중심으로 하면 세상 살이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 (갈5:17) 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살려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요아스 임금은 이것저것 다 얻으려고 하다가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7. 사람의 본질은 어려운 위기를 만날 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간신들의 속임에 빠져 우상숭배로 치닫는 임금을 향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이 꾸짖고 책망하자, 분노한 임금은 신하를 시켜 그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임금에게 더 이상의 기대나 소망을 품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임금의 태도에 실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지혜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삼하11장에 보면, 다윗은 충성된 신하인 우리야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이 불륜의 사건을 덮으려고, 그를 적진 한가운데로 유인하여 적군의 손에 죽게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본인은 이 일을 지혜롭게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이 일을 책망하였습니다.
삼하12:9절에 보니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야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13절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 고 하였고, 그녀와 사이에 난 아이의 죽음을 선고 했습니다(12:14).
다윗도 다른 임금들처럼 잘못된 길로 갔지만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가던 길에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임금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니, 아람 나라의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쳐 올라왔고, 요아스는   침략자가 요구하는 대로 나라 안의 금과 은을 갔다 바쳤지만, 턱 없이 부족하자 나중에는 그 조상들이 하나님께 드린 성전의 거룩한 물건들과 기둥에 붙인 금까지 다 벗겨내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모면하려고 요아스는 자신의 신앙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성전까지 다 팔아먹은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요아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시편 기자들처럼 하나님께 호소하고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 스가랴의 책망을 받고 그를 돌로 쳐 죽인 후 1년이 지났을 때, 이렇게 아람 군대가 유대 땅을 침공하였고 요아스 임금은 적은 숫자의 적군을 우습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크게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요아스 임금을 적군들이 죽이지 않고 그냥 버리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방인이 볼 때에도 쓰레기 같고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 죽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처를 입고 적군에게 까지 버림을 당한 이 요아스 임금의 목숨은 마침내 그의 가장 충성스런 측근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대하24:25절에 보면,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수로 기록된 것을 보면 제사장 스가랴만 죽인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의 아들들을 몽땅 죽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조모였던 아달랴 여왕이 행한 것을 손자 요아스가 똑 같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 자신도 죄 없는 학살의 희생자였는데, 하나님을 떠난 그의 이제는 우상숭배자가 되어 조모가 행한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9. 요아스 임금의 신앙과 삶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신앙처럼 보여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매우 위태롭고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요아스가 왕권 강화를 위해서 성전 수리는 물론이고 산당에서 제사하는 우상숭배까지 용납하는 이런 타협은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신앙의 결과는 국가와 민족에게 재앙이 되었고, 스스로에게는 저주 받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요아스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성경은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대하24:25절에 보면, 그가 당연히 유다 왕으로 왕들의 묘실에 장사되어야 마땅한데도, 사람들은 그를 그곳에 묻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스승이며 인도자였던 여호야다 제사장은 요아스와는 반대로 왕은 아니었지만 왕들의 묘소에 묻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요아스 임금의 신앙과 인생은 위기 가운데서 시작했지만, 위기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는 정직한 왕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을 줄 몰랐기 때문에 그의 남은 인생은 사악했고, 저주 받은 인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남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질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가리켜 도리어 하나님의 주신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고후12:9) 하면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고 고백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신앙의 경주를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하나님 중심에 서도록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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