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8.잘못된 관계(열왕기하8:16-24)

[성경본문] 열왕기하8:16-24개역개정

16.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17.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18.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19.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20.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손에서 배반하여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21.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들의 장막들로 돌아갔더라

22.이와 같이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배반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23.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4.여호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잘못된 관계(열왕기하8:16-24/2015.2.8.오전)

1. 일본의 신학자며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上)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천황을 불경시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자 월간지 성서연구를 창간하고 본격적으로 저술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가 지은 글 중에 하나가 「예수를 생각하고」 가 있습니다.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남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
    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그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입학한 뒤로 지금까지 늘 제 마음에 두고 있는 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저자 자신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잘 설명해 주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이며, 또 그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때에 북왕국의 이스라엘 왕이나 남왕국의 유다의 왕이나 신기하게 이름이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을 요람으로 표현하고, 유다왕을 여호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먼저 왕이 되어 1년 정도 통치하다가 그 형제 요람이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유다왕 여호람의 경우는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어받아 1년 남짓 통치하다가 이스라엘에 요람왕을 만나러 갔다가 예후의 손에 두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왕 여호람은 이런 시대적인 상황으로 사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이 여호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 선왕인 여호사밧은 하나님 중심의 임금으로 그래서 율법인 말씀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였고, 전국에 재판소를 설치하고 강한 군대를 소유하여 부국강병의 시대를 이룬 임금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인 아사왕은 이방신을 섬기는 모친을 황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 정도로 41년을 통치하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는데, 그의 손자인 여호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자 속히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중심으로 하는 이방신을 섬기면서 유다나라를 고통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신앙적으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말았습니까?
이유는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선택입니까?
결혼을 할 때, 아달랴 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이 여자는 유다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딸이요, 오므리의 손녀였습니다.
이스라엘 임금 중에서 가장 악독한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의 악명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세벨은 바알 신전을 세우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찾아내어 죽이고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도록 만든 사람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아합은 전장에 나가서 활에 맞아 하루 종일 도망도 못가고 병거 위에서 신음하다가 죽었고(왕상22:34-35),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이세벨을 창문에서 던져 죽게 만들자 개들이 와서 그 시체를 먹었고(왕하9:30-37), 그의 자녀들은 자손의 대가 완전히 끊어진 집안입니다(왕하10:6-7).
아달랴는 유다나라에 시집오면서 이스라엘에 만연했던 바알신을 가져와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 땅에 산당을 설치하고 악마와 같이 행동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유다나라를 파멸로 몰고간 장본인이었습니다.
이 젊은 부부인 왕과 왕비의 악행은 한마디로 악마적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죽으면서 다른 아들들에게는 은금보화와 성을 나누어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기 때문에 왕권을 물려주었는데, 부친이 죽고 나서는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다 죽이고 나누어 준 성과 은금보화를 몰수했습니다.

3. 그의 부인 아달랴는 11:1절에 보니,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즉 제 자식이 죽자마자 남은 손자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이러한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왕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무엇입니까?
사방의 이웃나라들과 유다 안에서도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역대하 21장에 보면, 아버지 여호사밧 때에는 꼼짝도 못하던 이웃 나라들이, 여호람이 왕이 되면서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이 배신하고 블레셋은 물론이고 먼 곳 아라비아 사람들까지 침공해 왔으며, 유다 안의 립나 라는 지역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8년 동안 왕으로 있는 동안에 한 때도 나라가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 위에 본인은 중병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습니다.
그야말로 본문 19절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과 그 은혜가 아니었으면 유다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선왕이었던 여호사밧 임금 때 까지는 유다 나라 안에 바알 신을 섬기는 풍조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 유다왕가에 시집을 옴으로 인해 재앙이 시작된 것입니다.
역대하21:6절에 보면 여호람 왕에 대하여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잘못된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맺어서는 안되는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왕비 아달랴를 보면 그 모친인 이세벨을 능가하는 악마적인 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 맺어진 관계로 인한 그 댓가로 유다 나라의 백성들은 전쟁과 갖은 재앙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왕의 자녀들과 그 아내들까지, 그리고 그들이 소유한 은금 보화 재물에 까지 하나님의 재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4. 여호람에 대하여 역대하 21-23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기에 보면 여호람은 창자에 중병이 들어 날로 고통 하다가 죽을 때에는 창자가 그 몸에서 다 빠져 나와 고통 중에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21:18-19).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제 욕심에 사로잡혀 제 마음대로 사는 날은 지극히 짧았지만, 하나님 앞에 저주받아 고통당하는 날들은 그야말로 하루가 1년 같고 백년 같았을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잘못된 관계로 말미암아 시작된 이 악한 자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어서도 왕들의 묘소에 들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를 위해 아무도 향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은(대하21:19), 백성들 가운데서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역대하 21:10절에 보면,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보면,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66년간의 하나님 중심의 통치 사역을 통해 이 여호람이 다윗의 언약과 하나님의 은혜를 모를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 는 이 말씀은 그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버리기로 결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여호람을 왕으로 세웠습니까?
역대하21:13절에 보면, 여호람 왕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 형제들은 다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입니까?
본문 18절이 그 원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바로 이것입니다.
이세벨을 닮은 그 딸과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남자가 결혼 잘못 하면 형제들과 원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5.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국가나 개인이나 그 삶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백성들이 복 받는 길로 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호람을 왕으로 세우실 때에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호람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아사 왕처럼, 그리고 그 부친 여호사밧 왕처럼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다스려서 그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믿음의 바른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스스로 복된 길을 버리고 저주를 자청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모친 이세벨을 닮은 아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걸고 계시는 기대를 외면하고 하나님 대신 아내 아달랴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여,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 젊은 사람들이 믿는 상대가 없다고 쉽게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게 되면 유다왕 여호람 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관계에 끌려 다니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본문 20절 이하를 보면 에돔의 배신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직접 전장에 뛰어 들었더니 도리어 개망신만 당하고 겨우 목숨만 살아서 도망 오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제 자신도 병들어 고통과 저주의 세월을 보내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스스로 힘쓰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잘못된 관계에서 온 것입니다.
유다 왕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최고로 악한 왕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잘못된 관계 때문에 나라는 물론이고 온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람의 불행한 인생, 그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호람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예외 없이 다 죄 아래 있는 존재요, 누구나가 잘못된 관계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욕심이 잘못된 관계를 만들고, 그 잘못된 관계가 우리를 고통과 저주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분의 손을 잡으면, 그 분이 다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고, 이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복된 관계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이 관계는 더 나아가서 우리의 모든 잘못된 관계를 청산하도록 만들어 주고, 우리의 모든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도 물리치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이 잘못된 관계를 바른 관계로 회복시켜 주시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축복의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손에 붙잡히는 순간부터,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관계를 통해 인생을 낭비하고 고통하고 어두움 속에서 눈물을 흘렸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고통에서 평안으로 이끌어 주시고,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어두움에서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며, 잘못된 관계로 인해 두 번 다시 고통 받는 일 없도록 우리를 온전히 사랑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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