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1.아람 나라의 운명(열왕기하 8:7-15)

[성경본문] 열왕기하8:7-15개역개정

7.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왕에게 들리기를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하니

8.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이하고 내가 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 그를 통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9.하사엘이 그를 맞이하러 갈새 다메섹의 모든 좋은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 가지고 낙타 사십 마리에 싣고 나아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 이르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하니

10.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11.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12.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13.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14.그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의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반드시 살아나시리이다 하더이다 하더라

15.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람 나라의 운명(열왕기하 8:7-15/2015.2.1.오전)

1. 일본의 역사를 보면 에도 시대가 황금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안정되고, 경제나 문화면으로도 그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에도 시대에도 상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신분은 제일 낮았습니다. 이유는 생산하지 못하는 상인은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이 생각한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내고, 각 지역의 생산성을 위해 힘을 모아 좋은 결과를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교오토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시가껜을 중심으로 하는 오미상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손님을 위해서는 악천후에도 가게 문을 열어 두었고, 물건이 모자라는 품귀현상이 일어나면 절대로 이익을 남기지 않았으며, 손님들에게 유익한 것이 곧 지역사회에 유익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산뽀요시(三方良し)라는 것입니다.
산뽀요시는 상거래를 통해서 물건을 파는 자와 사는 자, 그리고 그 지역사회가 함께 만족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복리에 공헌한다는 정신입니다.
그들은 권력이나 특별한 힘을 배경으로 이익을 얻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고, 투기나 매점매석은 서로가 철저히 감시함으로 상인의 윤리와 판매 전략을 동시에 증진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본의 상인은 천민이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오미상인의 정신은 일본 사회 속에서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어서 나만 잘되고 내 가정이, 내 자녀만 복 받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희생하고 내가 죽으면 나는 죽었지만 내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들 앞에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하심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북왕국 이스라엘이나 남왕국 유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아람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아람 나라는 노아의 아들인 셈의 후손으로 사사시대부터 시작해서 블레셋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많은 괴로움을 주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라반이 아람 사람이었고(창25:20), 모세도 신26:5절에 보면,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신26:5) 이라고 하였으니 원래는 이스라엘과 한 혈통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와 초대교회 시대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역시 아람어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 속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죽은 소녀를 살리실 때에 “달리다굼”(막5:41)하셨는데 그 뜻은 소녀야 일어나라 는 뜻입니다.
귀먹어리를 고치실 때에도 “에바다”(막7:34) 라고 하셨는데 열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하는 아멘이라는 말(마6:13) 이나,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실 때에 부르짖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이 말씀도 아람어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출판한 산상수훈의 겉표지의 그림도 그것이 히브리어도 헬라어도 아닌 아람어 성경의 일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웃 아람나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그 당시의 아람 나라의 왕이 벤하닷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그만 죽을병에 들려 고통 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선지자 엘리사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방문한 것을 왕이 알고는 군대장관인 하사엘을 보내, 본문 9절에 보니 고통 중에 있는 자신이 이 병 때문에 죽을 것인지 아니면 회복되어 살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다메섹에서 나는 모든 좋은 물품을 낙타 40마리에 실어서 보내왔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오사카에서 나는 각종 귀한 물품을 자동차 40대에 실어서 보낸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세상의 부귀공명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만, 세상 권력이나 부의 힘보다는 하나님의 종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더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확정짓는 또 다른 증거가 본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원래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을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였고, 그래서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빼앗고 괴롭히는 나라였습니다.
6장에서 사마리아 성의 참상도 이 아람 나라의 침공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런데 벤하닷 왕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군대장관 하사엘이 대언하는 바에 의하면 본문 9절에 보면 자신을, “당신의 아들”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믿는 것과 그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기름 부은 받은 종의 말씀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신의 대리자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람 왕도 많은 예물을 가지고 예의를 표시하면서 물었던 것입니다.

4. 문제는 이렇게 예의를 다해서 선지자를 대우하고 있는 이 벤하닷에게 엘리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니 그의 대답이 매우 애매모호한 상태입니다.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드시 낫는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중대사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 대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아람 왕 벤하닷의 병은 낫겠지만 그가 신임하고 있던 군대장관 하사엘의 반역에 의해 결국 왕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람 왕 벤하닷이 선지자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예물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왕의 태도는 근본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특히 자신의 생명에 관한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약해지고 또한 겸손해지기 마련입니다.
생명의 위험을 느낄 만큼 어려운 병에 걸렸다면 당연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벤하닷은 선지자에게 마치 점쟁이에게 물어보듯이 그렇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당연히 선지자에게 대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탁을 했어야 합니다.

5. 벤하닷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선지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결코 하사엘에게 역모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건강이 회복되어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벤하닷은 처음부터 회개할 마음은 없었고, 오직 병이 낫는지 아니면 죽을 것이지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옳지 못한 태도와 생각에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도 결코 옳은 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병에서 낫는다는 선지자의 말에 안심하고 있을 때 군대장관 하사엘의 모반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가 어떤 생각과 어떤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서서평 합창단 31명이 오셔서 귀한 찬양으로 은혜를 끼치고 돌아갔는데, 그 때 찬양단의 어린이들 5명도 함께 공연을 하는데, 그 한 가운데는 여자 어린이 초등학생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일 신나고 제일 열심히 하는데 태도도 당당해서 눈에 뛰었습니다.
알고 보니 지휘자의 딸이었습니다.
아빠가 책임자고 바로 앞에서 지휘하고 있으니 무서울 것도 염려할 것도 없고 재미있게 공연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저런 태도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풀 죽은 면 와이셔츠처럼 그렇게 힘이 없고, 얼굴에는 늘 그림자가 있으며, 입에서 나오는 말도 확신과 소망이 넘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온갖 세상 풍파에 시달린 패잔병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약하고 나는 병들어도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중생케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구원의 역사가 축복의 역사가 넘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6. 선지자 엘리사는 본문을 통해 아람 나라에 대해 두 가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벤하닷 왕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왕의 질문을 가지고 온 군대장관 하사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예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예언이요 예언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하사엘에 대한 예언은 정말 고통스럽고 두려운 내용입니다.
본문 12절 이하에 보면 하사엘이 왕이 되고 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는 일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것이 끔찍한 내용들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람 나라 자체도 믿음이 없는 나라요 하나님 두려워할 줄 모르는 왕이 통치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모르고 세상 사람들 이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사엘 이라는 잔인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람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람 나라의 운명은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왕이 됨으로 아람과 이스라엘을 함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될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국가의 재앙이 임하는 법입니다.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될 사람이 재물을 소유하면 그 재물을 통해 가정과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하사엘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째서 하사엘을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문을 보면 하사엘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사엘이 행할 두렵고 끔찍한 이 일을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을 때, 하사엘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이까” 하였습니다.
언 듯 보면 선지자 앞에서 매우 겸손하여 자신을 개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끔찍스럽고 무참한 이 일을 가리켜 “큰 일” 이라고 했습니다.

7. 하사엘은 스스로 탐욕과 정권욕에 빠져서 왕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이웃 나라에 전무후무한 피해를 입히는 이 일을 가리켜 마치 큰 공적을 세우는 것처럼 “큰 일”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이런 끔찍한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으니, 이것은 스스로의 인격과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집착에 빠지면 제 정신을 잃고 사로 잡히기 마련입니다.
돈에 집착하면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에 집착하면 권력의 시녀가 되고,
쾌락에 집착하면 쾌락의 도구로 전락하며, 명예에 집착하면 그 명예 때문에 망하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사엘이라는 이 인간은 악한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그들을 고통하게 하실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악의 도구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잠16: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으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의 일시적인 형통을 부러워하면 그 악에 동참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사엘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그 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 보고 울었던 것입니다.

8. 우리는 벤하닷 왕이 예물을 보내면서 자기 병에 대하여 선지자에게 물어본 사건을 통해 중대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의 손 안에,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라 내 욕심과 생각을 따라간다면 국가의 미래를 점점 어두워질 것이고 자녀들의 미래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내 조국도 이웃 나라들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어떻게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키우는 그런 정성과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내 자식 잘 키워서 훌륭한 사람 만들고, 성공하고 잘살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이웃이나 지도자들에게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교회도 그런 마음으로 모이면 교회도 부흥하고, 교회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도 형통하고 대한민국도 일본도 잘 사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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