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9.고통 하는 이스라엘(열왕기하 6:20-33)
[성경본문] 열왕기하6:20-33개역개정
20.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24.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26.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제공: 대한성서공회
고통 하는 이스라엘(열왕기하 6:20-33/2014.11.9.오전)
1. 인간이 가진 제일 큰 고민과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문제를 만나고 문제에 갇혀 살고, 문제로 고통당하다가 문제를 안고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 까지 그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부대통령을 지낸 엘 고어 씨가 7년 전에 지구 온난화를 테마로 한,「불편한 진실」을 발표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이번에는,「미래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면서 세계 경제나 생명과학 등의 인류가 가지고 있는 6개 분야의 문제를 각각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분석하면서 인류 미래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며,이런 문제를 방치한다면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권말에 가서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면서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경고 메시지는 던지고 있지만, 분명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는 바로 이것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한 가정 적절한 대답으로 마틴 로이든 존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각 사람의 유일한 소망이며 온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오직 복음만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어 줄 수 있고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2. 인간이 가진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주어진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사마리아 성 한 가운데에 가두어 버린 선지자 엘리사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 왕은 번번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이들을 쳐서 죽이자고 재촉했지만, 엘리사는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22)라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선지자 엘리사의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형편과 조건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분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람 군대의 경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이며, 우리가 받는 이 사랑을 위해 하나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셨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이요, 죄인과 의인 사이의 평화요, 또한 죄인과 죄인 사이의 용서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리 가운데 오셨고, 33년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참 사랑과 평화가 무엇이며, 이 문제 많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고, 바로 그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3. 나에게 고통을 주고 늘 위협이 되는 원수 같은 관계를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 나라의 통치자의 신분으로서 백성의 생명과 국가의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위협이 되는 화근은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원수를 용서하고 되돌려 보내는 일 보다 더 어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를 나타내고 알리는 일입니다.
이 일을 가장 모범적으로 온전하게 이루어 내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왕 되신 그 분을 높이고 그 분의 위대하심을 알려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더욱 그 분께 순종함으로 그 분의 자녀된 자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생각을 자유롭게 하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것입니까?
복수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되돌려 보낸 아람 나라의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번에는 정 반대의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에 갇혀 죽을 위기를 만났지만,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사마리아 성에 갇혀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4. 다시 침공한 그들은 이스라엘이 아람에게 베푼 은혜를 속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이 사마리아 성에 갇혔다가 용서받고 살아난 일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이 일은 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원수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었는데, 정작 자비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수치심에 원수를 갚겠다고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일을 하고 용서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장 알맞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문제인 동시에 하나님 백성된 우리들의 고민이요 갈등이요 또 다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사마리아성의 위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아람군대에게 포위된 이스라엘의 수도인 이 사마리아 성은 한마디로 지옥의 참상 그대로였습니다.
오죽하면 여호람 왕이,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31) 고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32절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를 죽이는 자객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왜 엘리사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 왕이 지금은 돌변하여 저주하면서 그를 죽이려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눈이 멀어 사마리아 성에 갇혔던 아람군대를 죽이자고 했을 때, 그들을 살려 보내었던 이 일이 도리어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아람 군대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이고, 왕이 침실에서 비밀리에 하는 말까지 다 알고 있었던 선지자가, 왜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가 되도록 침묵하고 그것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왕이 분노할 만도 합니다.
우리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왜 하나님이 이런 심각한 위기를 만나도록 잠잠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추측이지만 선지자 엘리사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32절에 보면 자신을 죽이려고 오는 자객들의 뒤를 쫓고 있는 왕의 발소리 까지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일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 분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6. 이스라엘의 왕권은 남북이 분열되면서 여로보암이 권세를 잡았고, 지금의 왕인 아합의 아들 여호람에 관해서 기록하기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3:2-3) 고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지옥 같은 참상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의 참상의 원인은 멀리는 여로보암으로 부터 시작하여 가깝게는 오므리 왕조인 아합의 죄악과,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여호람 왕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접시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의 죄악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자들의 인생이 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 여호람왕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이 살인한 자의 아들" (32)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의 아비인 아합이 얼마나 악독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행하던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면서 나봇 자신은 물론이고 그 자식들까지 다 쳐죽였습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처럼, 선지자를 나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던 왕이 화가 치밀어 오르자 아합이 나봇에게 행한 똑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31-3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아니했던 조상들과 그 부모의 죄악과 더불어, 여호람 자신은 우상은 버렸지만 근본적인 죄악에서 조상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악행들이 이스라엘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모든 원인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한계요 문제점입니다.
7. 계속해서 우리가 본문을 살펴보면 아람에게 포위되어 굶주림이 극에 달하자 자식을 삶아먹는 여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나귀머리도 막대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사마리아 성의 기근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33절에 왕이 스스로 말하기를,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 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재앙이 그들의 조상부터 쌓아 올렸던 죄악으로 인해 온 것이 누가 하나님의 진노의 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권 같은 권력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과학의 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권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본문 28-29절을 보면 굶주림 앞에서 모성애도 상실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인격이나 양심이나 물질이나 능력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문제다운 문제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8. 그런 의미에서 돈이 통용되고 권력이 질서를 잡아주고, 가족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문제다운 문제나 위기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평안할 때,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을 고통하게 만들고 절망으로 몰아넣는 그런 문제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문제나 고통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이 겸손함을 통하여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7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육체를 고통하게 만드는 가시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간구했지만, 몸에 있는 그 가시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요 자신을 능력 있는 사도로 만들고 있는 것을 알고는 그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 그대로, 사마리아 성에 일어난 이 처참한 상황은 언제든지 어느 시대에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왕에게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27) 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고통과 문제를 만날 때, 사람을 의지하거나 물질을 의지한들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왕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평안할 때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9. 세상에서 인생에게 제일 가치 있고 만족을 주며 즐거운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주는 빛이요, 고통과 문제 속에 빠졌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주며, 그 분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소망을 주는 줄 믿습니다.
고난이라는 문제를 통해서든지, 형통이라는 축복을 통해서든지 우리가 그런 곳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고, 인생에 문제를 만나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며,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더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위로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중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자식을 삶아 먹은 이 여인이 만일에 이러한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사마리아성의 문제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분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입니다.
여로보암의 죄악에서 떠나지 아니한 아합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그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에 가담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함에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면, 사마리아성의 재앙이 어느 날 홀연히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 분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데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능력으로 우리 인생의 충만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 힘이 우리를 모든 문제와 위기와 고통에서 건지며 도리어 위기와 문제를 통해 우리를 지혜롭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111:10) 고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