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6.무엇을 구할 것인가(열왕기하 2:1-14)

[성경본문] 열왕기하2:1-14개역개정

1.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무엇을 구할 것인가(열왕기하 2:1-14/2014.7.6.오전)
1.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의 활동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백성들의 도덕적인 타락을 꾸짖었고, 정치적으로는 권력자들의 부패와 압제에 대하여, 종교적으로는 우상숭배에 대한 죄를 공격하면서,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아합 시대에 강력하게 활동했던 선지자 엘리야 시대가 끝이 나고, 선지자 엘리사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는데, 특별히 본문은 승천하는 엘리야와의 마지막 이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의 만남은 언제 부터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우상숭배와 악마적인 통치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온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선지자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왕이 많은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고 엘리야까지 잡으려고 혈안이 되고 있을 때, 엘리야가 갈멜 산상에서의 영적인 대결을 주장했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또한 큰 비를 내려 마른 땅을 적시며 큰 승리를 거두고 난 이후에 엘리사를 만나게 됩니다.
열왕기상 19:19-21절에 보면, 엘리사가 12겨리, 곧 24마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엘리야가 찾아와서 그를 제자로 삼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소를 잡아 이웃 사람들을 먹이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2. 그런데 엘리야의 선지자 사역은 한마디로 전투적인 삶이었습니다.
12절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존재가 아합이나 바알 신을 숭배하는 선지자들이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삶은 아합 왕과 왕후 이세벨이 숭배하는 이방 우상과의 싸움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우상에게 기울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싸움이 얼마나 극심하였는지 궁내대신 오바다를 시켜 온 이스라엘을 뒤져서 엘리야를 찾아 잡아오게 하였고, 갈멜 산상에서 바알 숭배자 450인과 대결할 때에도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한 것이나, 나중에는 이세벨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지쳐서 스스로의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기를 간절히 구할 정도였습니다.
엘리야의 삶은 그래서 전투적인 삶이었고, 그의 사역조차도 생명을 건 영적으로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현대교회의 문제점 중에 한 가지는 목회자가 교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며, 사회생활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생존경쟁의 치열한 전투장과 같은 데도 목회자는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면서 그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영적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 지 성도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자신들의 삶이 그렇게 힘들고 치열한 줄 알면서도 정작, 교인이나 목회자의 현실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3. 일제 강점기의 압제를 받으면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제 가족들조차도 모르게 싸운 것처럼,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 한 가운데서 싸우는 영적인 싸움과,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서 싸우는 이 영적싸움도 남들이 알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고독한 싸움이고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과 목회자가 다른 것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교인들은 잘못하고 부족하고 약점이 있어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열심히 양육하여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경우는 일단 문제가 생기고 약점이 드러나게 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것이 용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목회자의 입장에서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인들처럼 그런 자세나 생각을 가지고는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보다 도덕적인 수준이 낮아서는 존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보다 열심히 적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눅23:23절에 보면, 군중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대중들의 외침이, 그들의 목소리가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대중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너무 고독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면서 그 분을 환영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렸고, 하나님 아버지가 유일하게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외면하셨던 장소가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표현했습니까?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행4:11) 이라고 했습니다.
건축의 전문가들조차도 쓸모없다고 버린 조각돌 같은 존재가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요 선지자인 줄 잘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지키는 절대적인 존재인 줄 알면서도 그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딤전6:5) 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편에 서서 고난당하는 것 보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과 이세벨의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은 말씀을 듣는 귀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을 바알 우상에게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5. 아합이 선지자 엘리야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왕상18:17절에 보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 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엘리야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8:18)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세상 욕심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지혜와 능력이 없어진 결과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교회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오지 않는 사람들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복음을 가진 사명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6. 선지자 엘리야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지명에는 각각 선지 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엘리야는 각 지역에 있는 선지학교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고별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함께 동행하는 엘리사를 향해서 이제 그만 따라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의지와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 (2,4,6) 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가는 곳이 죽음의 골짜기이든지 승천하는 산꼭대기이든지 그곳까지, 엘리야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제자로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그만 따라 오라고 해도 엘리사는 끝까지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스승인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그의 태도였습니다.
선지 생도들이 가는 곳마다 엘리사에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선생님이 세상 떠나시기 위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데 왜 끝까지 따라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라면 스승의 말씀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고, 그래서 내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 붙는 것은 스승에 대한 예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무엇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 그 사실이 본문 9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엘리야는 엘리사와 단 둘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끝까지 따라 붙는 엘리사의 마음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 때 엘리사가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야보다도 갑절의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반복해서 가는 곳 마다 선지생도들이 등장하고 엘리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아합과 이세벨에게 죽임을 당한 선지자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전국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왕상18장에 보면 아합왕의 궁내대신 오바댜는 이세벨에게 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50명씩 100명을 숨겨 놓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한 것은 엘리야가 가고 없는 이스라엘에서 그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지하고 있던 선지생도들 중에서 일부는 이 일을 저지할 목적으로 엘리사에게 스승인 엘리야를 더 이상 따라 다니면서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구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장자는 유산을 두 배 상속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신21:17).
엘리사가 구한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장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8. 여기에 대한 엘리야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니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사가 구한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승천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오는 자가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를 하여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을 질그릇 만드시는 토기장이로 비유하면서,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 고 했습니다.
부자나 권력자나 성공적 목회도 사람의 재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아무리 좋은 것을 구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룰 수 없습니다.
둘째는 귀한 것을 구하는 엘리사 자신의 생각과 태도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평생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전투적인 삶이었고 목숨을 걸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치열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되기를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9. 문제는 이러한 엘리사의 태도와 생각을 하나님이 어떻게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13-14절이 그 대답입니다.
엘리야가 요단을 건널 때 자신의 겉옷을 벗어 마치 모세가 홍해 바다를 쳐서 둘로 갈라놓고 온 백성들과 함께 건넌 것처럼, 그렇게 요단물을 쳐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불병거로 승천하면서 그의 겉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던졌습니다.
겉옷을 주운 엘리사는 조금 전에 엘리야가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물을 치니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다고 1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같은 능력이 엘리사에게도 임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하도록 함으로 이스라엘을 지키는 선지자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의 겉옷을 주웠다는 것은 선지자의 직분과 능력을 계승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요단을 가르고 건너는 것은 많은 대중 앞에서 그것을 인정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이어지는 여행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엘리야의 후계자인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생도들에게 간절히 구할 것이 무엇인지 산교육이 되도록 함이었습니다.

10. 이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힘이 없으면 도태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도 행하는 믿음이 산 믿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힘이 있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싸움도 힘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으며 제 믿음도 힘이 없으면 지킬 수 없으며 하나님께 영광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목숨을 걸고 받은 사명을 완수할 때 까지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로 하여금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목격하게 한 것은, 후계자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능력과 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면 사람은 보지 못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은 행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한계를 뛰어넘도록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마지막 모습도 목격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엘리야보다도 더 위대하고 능력 많은 선지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우상과 도덕적인 타락에서 구원하는 귀한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갑절의 능력으로 일본의 영적 구원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갑절의 능력으로 가정의 영적 제사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 만나는 날 까지 갑절의 능력으로 충성된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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