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9.생명을 사랑하는 자(열왕기하1:9-18)
[성경본문] 열왕기하1:9-18개역개정
9.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17.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생명을 사랑하는 자(열왕기하1:9-18/2014.6.29.오전) 1. 일본과 중국의 국가간의 관계가 매우 험악해지며 중국에서는 반일 폭동이 일어나던 2004년에 중국에서 관서학원대학으로 유학 온 젊은이 휘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켐퍼스에서 오까자끼와 친구가 되었고, 이듬해 그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도중에 28살의 휘휘가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투병 중이던 2007년에 두 사람은 결혼 하였고,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듯하다가 암이 다른 장기에 전이되면서 2011년 휘휘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남겨진 오까자끼는 북경에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면서, 이번에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것을 문예춘추사에서,「일중의 바다를 건넌사랑」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이 두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지난 목요일 밤 NHK밤 9시 뉴스에 소개되었습니다. 질병에 쓰러지고 망가지는 연약한 인생이지만, 그래서 채 피지도 못한 젊은 청춘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강인한 생명력과 더불어 이념의 대립과 국경을 넘는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관서학원대학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날, 휘휘가 오까자끼에게 말합니다. 바로 이 장소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 준 것 감사해요. 나 하고 결혼하겠다고 결심해 준 것 감사해요, 몹쓸 병에 걸린 것을 알고도 북경까지 날아와서 곁에 있어 준 것 감사해요, 수술실 바깥에서 결혼반지를 쥐고서 날 위해 기도해 준 것 감사해요, 절망으로 쓰러지는 어머니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준 것 감사해요, 통증으로 잠들 수 없을 때 몇 시간이고 마사지를 해 준 것 감사해요, 물리치료 받으며 고통하는 내 곁에서 웃으면서 말을 걸어 준 것 감사해요, 머리가 다 빠진 날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것 감사해요. 이 두 사람은 일본과 중국이 가장 힘든 관계 속에 있던 그 7년 동안 바다를 건너 사랑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미움 대신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2.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지금 소개한 이야기와는 정 반대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아하시야 왕의 명령으로 선지자 엘리야를 잡으러 나섰던 100여명의 군사들이 엘리야에 의해서 두 번씩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태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불 타 죽은 그들이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 자식이나 남편이 군대 가서 이렇게 타 죽었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며, 성경은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을 여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패역해진 이스라엘의 왕권과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3. 아하시야 왕은 3번에 걸쳐 오십 부장과 오십 명의 군대를 엘리아가 있는 갈멜산으로 보내어 그를 잡아오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하늘에서 내린 불이 군대를 태우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파견된 오십 부장의 태도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오십 부장들과는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말과 태도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엘리야에게 왕명을 집행하는 자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산 아래에서 엘리야를 향하여 왕이 너를 부르니 당장 내려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엘리야가 있는 산 위에 기어 올라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이 아니라 반대로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데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 오십 부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먼저 파견된 오십 부장들과 각각 오십 명의 군대가 하늘에서 내린 불로 죽임을 당하여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자신에게 엘리야를 잡아오라는 왕명이 떨어졌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길을 가면서 오십 부장과 군인들은 자신들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타 들어갔겠습니까? 그래서 오십 부장이 택한 태도가 무엇입니까? 왕명을 따르자니 오십 한 명이 몰살하겠고, 따르지 않으면 이 또한 반역입니다. 그래서 왕명을 전달하면서 왕권이나 군대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의 신적 권위와 선지자의 능력을 먼저 인정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걸한 것입니다. 4. 사람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는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들을 경멸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백성을 향해 수탈하고 개인적으로는 우상숭배로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 가정에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가 이름입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이사람 저 사람에게 의논하고 작명가도 찾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이름이 그 인생의 가치와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생명이 귀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옷에 좋은 음식, 쾌적한 환경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이유는 제 생명이 그만큼 귀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생명을 왜 하나님은 한꺼번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오십 한명을 두 번씩이나 태워 죽였습니까?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눈동자 같이 사랑하시고,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시면서 왜 이런 일을 이스라엘 중에 행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생명과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집에서 키우는 짐승의 생명은 귀한 줄 알고 사랑하지만 들판이나 산에 기어 다니는 뱀이나 곤충은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애완용 짐승은 물론이고 농장에 소와 돼지가 수천수만 마리 있어도 사랑하는 아들딸의 생명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인생을 살아도 남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사람들의 가는 길을 굽게 만들고, 제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사람은 차라리 사육 당하는 짐승의 생명보다 가치가 없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도 생각합니다. 왜냐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소유나 사회적인 지위나 특별한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왕이라도 아합이나 아하시아 처럼 법을 무시하고 백성을 착취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집안 대대로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사람이라면 백성의 손에 의해서라도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아하시아는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고 침상에서 떨어져 죽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고, 선지자의 말 그대로 반드시 살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은, 악한 오므리 왕가를 끊어버리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 아하시아 왕의 권세를 가지고 군대를 이끌고 선지자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는 오십 부장과 그의 부하들도 아하시아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 위에 불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6. 그러나 세 번째 오십 부장은 비록 왕명을 따라 엘리야를 잡으러 왔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왕권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 선지자의 능력을 더 귀하고 본 것입니다. 먼저 왔던 두 사람의 오십 부장은 자신들이 왕명에 의해 살고 죽는 존재인 줄 알았지만,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왕권보다는 하나님의 권세와 주의 종의 능력을 더 귀하게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사 문제는 왕이 아니라 선지자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겸손하게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며 누가 능력 있는 사람입니까? 잠28:14절에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강퍅하고 악한 자들의 특징은 제 생명도 귀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제 마음대로 살다가 죽은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 부장은 자신은 물론이고 휘하의 오십 명의 군사들의 생명까지 귀하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성경 말씀에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재앙을 만나지만, 남의 생명까지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오십 부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아하시아 왕과 그의 선왕인 아합과 이세벨에게 하나님은 거듭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의 죄악에 대한 경고를 내렸지만, 그들은 반복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의 운명은 왕상18장에 기록된 대로, 갈멜 산상의 엘리야와 450인의 바알신의 제사장들과의 영적 대결에서, 하늘에서 불로 응답받은 엘리야의 승리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백성들이 450명의 바알 제사장들을 잡아 기손 시냇가에서 죽였지만, 아합왕은 깨닫지 못하고 선지자들을 잡아 죽여 복수를 하려 하였고,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 왕은 거짓 증인을 세워서 무죄한 그의 피까지 흘렸습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의 음성을 듣고 깨닫고 회개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돌이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사람은 끝까지 악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아합 왕처럼, 그 부인 이세벨 왕후처럼 도리어 분노와 혈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더 많은 악을 통해서 하나님의 저주와 재앙을 자기 머리에 쌓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악한 일에 손을 대지 않으며, 말과 행동에 신중하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8. 인간의 편에서 보면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 행위가 너무 가혹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죄 문제에 대하여는 언제나 분명한 결론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까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 번째 오십 부장처럼 그렇게 겸손하지도 못한데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태우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많은 복과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고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무엇을 가리켜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불신앙이 재앙이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 재앙이고, 우상숭배가 이미 재앙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9. 하나님이 왜 인생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위해 온갖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불순종하고 온갖 악을 행하는 자는 그 생명의 가치를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시기 때문에 이렇게 불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과 세상은 나그네 인생일 뿐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음을 믿고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신앙생활 하면서도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국만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15장에 보면 부활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곳에 보면 받을 영광이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15:39-41) 고 하였습니다. 순교자가 받을 영광이 다르고, 신실한 성도가 받는 영광이 다르고, 불 가운데서 겨우 구원받는 사람이 받을 영광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고, 그에게서 받은 선물인 이 믿음으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받을 영광과 상급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축복을 입은 자의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