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9.마지막 때의 사람들(디모데후서3:1-5)

[성경본문] 디모데후서3:1-5개역개정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지막 때의 사람들(디모데후서3:1-5/2013.6.9.오전)

1. 어제 조선일보를 보니 젊은 여기자가 쓴 칼럼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내용은 늙은 오빠(언니)에 대한 유감이었습니다.
늙은 남자들은 팔팔하고 과도한 젊은이에 비해서 육체가 늙은 대신에 여유가 있고 많은 경험을 가졌음에도 겸손이 있고 남을 배려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그들도 회춘의 바람이 불면서 젊은 남자들처럼 변해가면서 젊은이들의 퇴폐문화에 휩쓸리고 공공장소에서 소리가 크고 밀치고 끼어들면서 품위 있게 늙는 모습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마음이 쓸쓸했다는 내용입니다.
조용필의 바운스 열풍에 용필이 오빠를 외치는 늙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이 기사를 읽으니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역의 아줌마들 소위 오바따리안이 생각났습니다.호랑이 무늬의 의상과 악세사리를 좋아하고 목소리 크고 어디서나 위세가 당당한 여자들입니다.
물론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것도 생활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되기 때문에 전체의 늙은 남녀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20년 전의 사람들과 10년 전의 사람들, 그리고 최근의 사람들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고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21세기의 늙은 남녀들이 더 이상 자신을 지키는 품위도 품격도 없고 젊은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도 없는 세대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 시대를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모든 것에 안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하고 불안한 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람들도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대라고 생각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라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가리켰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시는 그 때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말세라는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백보좌 심판이 있고, 이 땅과 하늘은 사라지고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들리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말세라는 그 때가 언제입니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면 성경에는 말세의 때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재림에 맞추어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따라서 이 세상의 풍습과 문화가 변하고, 그기에 맞추어서 정치나 경제나 사회가 변화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을이 오면 단풍으로 세상이 붉게 물이 들듯이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세상은 그렇게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세가 오면 더욱 득세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사단의 세력입니다.
사단은 종말의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4:7절에,「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고, 5:8절에,「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함 받은 자라도 넘어뜨리려고 온갖 계략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면서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왜? 계시록12:12절에 보니,「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했으니 한마디로 말해서 최후의 발악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제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면, 그리고 모든 환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르려면, 시대를 분별하고 마귀의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마귀는 어떻게 역사하고 마귀가 노리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귀는 자연이나 짐승이나 우주만물을 대적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부패하게 만들어 모든 것을 썩어 버리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어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며, 온갖 죄로 철저하게 타락하게 만들어 가롯유다 처럼 회개할 기회도 얻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멸망에 던짐 받게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었습니까?
그래서 그 증거로 독신가정, 독거노인, 이혼가정이 급속도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정의 한 울타리 속에서도 식구끼리도 못 믿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서로 배반하고 파는 것은 더 이상의 뉴스거리도 아닙니다.
과학은 발달하고, 문명은 최첨단을 자랑하고, 지식과 이성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어 가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정상이고 수준이 높은데 오직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고 사람들의 마음이 냄새나는 생선처럼 썩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환경과 조건이 주어져도 일단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고 썩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세상 사람들의 병든 마음을 고치고 병든 심령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4. 지금도 마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정치 세력의 뒤에 숨어서, 경제와 돈다발 뒤에 숨어서, 교육과 문화 속에 숨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도 여전히 행복은 없고 만족도 없고 오직 확실한 것 한 가지 불안한 것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귀가 사단이 사람들의 심령에 침투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불의하게 만들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만들고, 죄악을 즐기는데 담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을 즐기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 성품이 있듯이 사단도 성품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듯이, 그래서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되듯이, 사람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면 그 사람은 그 때부터 마귀의 마음, 마귀의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뱀을 보면 사단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뱀의 성품을 오늘 본문에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대로 말세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5. 첫째로 2절에,「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지의 사랑은 항상 짝을 지어 다니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말세에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버리고, 이웃도 버리고 오직 돈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이웃으로 삼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웃사람을 돈으로 관리하고, 신앙도 돈으로 표시하려고 합니다.
뱀은 냉혈동물로 차갑습니다.
뱀은 다니는 곳도 습하고 차가운 곳을 찾아다닙니다.
며칠 전에 쥐의 눈을 보았는데 그 눈은 매우 애처로운 듯이 보였고, 동정을 구하는 눈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동물이라도 뱀의 눈을 보면 차갑고 섬뜩하고 그 몸도 차갑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세에는 사람들의 눈도 차가워지고 몸의 체온도 떨어지고 감정도 차가워지고,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자비와 동정심은 사라지고 차갑고 냉정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목적이 자기에게 있고, 자기 사랑에 있고, 그래서 자기애를 만족 시키는 수단으로 돈을 사랑합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 육체밖에 모른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혼이나 육체나 일단 병이 들면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서울의 어느 시장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가 밤에 차에 치었는데 차고 있던 돈 주머니가 풀어져 돈이 사방에 흩어지니 주위의 사람들은 사람 구할 생각은 안하고 서로 돈 주워가려고 아우성 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6. 둘째로,「자긍하며 교만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짐승들은 다 머리를 숙이고 다니는데 뱀은 언제나 머리를 들고 다닙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마귀가 들어오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머리를 들고 다니며 이웃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데 이유는 교만한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건강하다고, 돈 좀 있다고, 지위가 올라갔다고, 좀 배웠다고 남을 무시하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믿을 것도 의지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랑하고 교만하고 허세 부려서 잘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같은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패가망신과 고통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잘되고 못되는 것 관계없이 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훼방은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삶을 사는 것과 불신앙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많이 가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말세는 부모의 은혜를 무시하고, 그것 때문에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회복케 하고 의로움으로 바로 세우고 거룩함으로 도덕성을 회복하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워주셨는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의 교회들은 사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7. 네 번째로,「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배반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 은혜가 있고,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은혜가 있고, 부모의 은혜가 있는데, 이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대신에 불평과 원망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추하고 더러운 것, 속된 것들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쾌락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가운데 들어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가 문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음악, 만화, 잡지 ,영화, 인터넷이 사람을 난폭하게 만들고 더럽게 만들고, 음란하게 만들고, 강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이 지구촌의 멸망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사람을 고통과 멸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교회의 힘도 성도들의 감사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마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사에서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다섯 번째로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인정이라는 것은 다 사라지고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성행하고 쌀쌀맞은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부의 정도 사라지고, 교회에 대한 애착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8. 그리고 「참소하며 절재하지 못하며」,「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참소란 말은 헬라어로 사탄이라는 말로, 남의 말하기 좋아하고 비방하고 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사단이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한 것처럼.
또 절재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기 관리가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늘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인내하셨고 고난 속에서 은혜를 가져오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이 악한 시대에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식입니까? 과학입니까? 아니면 도덕이나 권력입니까? 혹은 물질입니까?
본문 마지막 절에 그 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돌아설 때 섬뜩한 느낌, 전율을 느끼면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육체를 위하고 자신에게는 만족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세의 이런 삶은 자신을 지옥에 멸하는 증거가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통째로 잘못된 것에 속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사단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섬뜩함을 느끼면서 전율하면서 큰일 날 뻔 했구나 하는 심정으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1:8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좇으라」는 의미입니다.
돌아서면 악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돌아서는 그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의 사람을 붙들어 영육간에 승리하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변화되지 못하면 도태되고 잊혀지고 짓밟히는 시대에 우리가 살지만, 우리는 알을 낳기 위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지막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여 영원한 승리지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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