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7.7.감사가 넘치는 사람 (시편 50:14-23)
[성경본문] 시편50:14-23개역개정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감사가 넘치는 사람 (시편 50:14-23/2013.7.7.맥추감사절) 1. 이와나미(岩波) 출판사가 1978년에 출판한 「一月一話」라는 책이 있는데, 동서고금의 명언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기에 보면 19세기 초에 영국 군함이 오끼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돌아가던 중, 센트헤레나섬에 기항하여 유배의 몸이 되어 있는 나폴레옹을 만났다고 합니다.대화중에 오끼나와에 가보니 그곳에는 무기가 없더라는 소리를 듣고 나폴레옹은 무기도 없이 어떻게 전쟁을 하느냐고 했고, 돌아온 답이 그곳 사람들은 전쟁을 아예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하늘 아래 그런 민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오끼나와도 명치 시대 이후에 일본의 근대화에 휘말리더니 마침내 2차 대전 말기에는 20여만 명이 넘는 인명을 빼앗겼고, 미군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 때의 참상을 기록하기를 세상에 있는 지옥이란 지옥은 다 모아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평화롭게 살고 좋은 곳이라도 스스로를 지킬만한 힘이 없으면 언제 어떻게 무너지고 빼앗기고 삼킴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활에서 능력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기도의 응답과 그 능력을 맛보지 못한 채 늘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월에 밀려가고 있다면 세상과 마귀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새 아침의 해를 바라보면서 2013년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서원하고 작정한 것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맥추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살피면서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고 더 큰 은혜의 자리로, 더 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2.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때 제일 중한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감사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헌신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인의 제사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열심히 예배드리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감사가 없었고 헌신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배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제사 드린 후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터져 나왔고 불평으로 넘쳤고, 이것이 마침내 동생 아벨을 쳐 죽기는 형제 살인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인의 예배는 악한 자의 예배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며 따라가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3.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평생 따라 다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은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그리고 고통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선언하였고, 이 말씀 그대로 사람들은 살면 살수록 고통을 더하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육신이 병들고 망가지고 연약해지고, 죄로 말미암아 마음이 병들고 생각이 병들고 그리고 영혼까지 망가지고 멸망하는 것이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참 행복과 구원을 얻으려면 고통과 영원한 저주를 가져다주는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종교와 신들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 두려움과 고통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만,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대가를 치루어 보았지만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떠난 온갖 종교적인 행사는 도리어 고통과 허무함을 더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도 원죄를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요 값없이 주시는 영생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줄 믿습니다. 4. 또한 그는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루하루의 삶,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은 실상은 전투적인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의 사자도 사냥에 실패하여 굶주려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근과 전쟁과 질병이며 전염병, 지진을 포함한 수많은 재해들이 매년 이 지구촌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 이래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길에서도 건지셨고, 홍해 바다 가운데서도 건지셨고, 광야 40년 동안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먹이시고 입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랑과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자 되신 하나님 이 큰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하나님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죄와 허물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 살면서도 가나안의 축복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약속된 축복 대신에 온갖 재앙과 이웃 나라의 침략과 재해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 위에 우상숭배로 영육간의 모든 환경은 더욱 파괴되어 갔습니다. 축복의 땅이 고통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22절에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땅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죽음의 사막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장은 농사할 수 없는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게 하심에 있지만, 장차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께 비를 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비로 인하여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먼저 감사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확신하면서 감사할 때,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잔은 넘치는 줄 믿습니다. 5. 그는 우리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이 언약을 통하여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어디서 확인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하였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축복을 선언하시는 줄 믿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맺은 언약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구원의 감격과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찬양과 더불어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예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은혜 충만한 자의 삶 역시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감격과 기쁨을 맛보려고 그 분의 은혜를 입으려고 이 예배를 기다리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시50:23)다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예배는 감사와 헌신이 주제가 될 때 향기 넘치는 제사가 되는 줄 믿습니다. 6.그는 환란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절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언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환란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 받는 순간입니다. 갈멜 산상에서 비 오기를 기도하던 선지자 엘리야와 영적 대결을 벌이던 450명의 바알 신을 숭배하던 우상숭배자들의 대결이 그랬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불러도 응답이 없는 자기 신의 응답을 위해 예리한 칼로 자기들의 몸 깊숙이 찔러가며 피투성이가 되어도 응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불로 응답 받은 엘리야와 성난 군중들의 손에 붙잡혀 기손 시내에서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상18:40) 과연 소동성에 심판의 불이 내릴 때에도 그 성안에 온갖 신들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우상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하는 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의 신음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라라” (렘33: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며 기도하실 때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 돕게 하셨고 그 기도에 응답하사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환란 가운데에서도 기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고민과 낙심은 잘 해도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을 새카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환란 가운데서 사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7. 좋은 일을 만나고 소원이 성취되면 기뻐하고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환란과 고난 속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사야말로 성도의 능력이고 감사야 말로 기도의 응답이고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13년도 전반기인 181일의 날 수를 따라 남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눈물과 땀과 수고를 이 땅에 쏟았습니다. 땀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에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오늘 우리가 이 날들을 뒤돌아보니 그 땅방울이 떨어진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인도하심, 그리고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수고하는 것들, 주의 이름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들, 주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따라 행하는 모든 것들에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있고 그의 인자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풍성함으로 갚으시는 축복의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베푸신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향기 나는 제사를 날마다 올리는 줄 믿습니다. 감사는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세웁니다. 그래서 어디서도 섬길 수 있고 언제든지 헌신 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떤 희생도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넘치는 감사를 우리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