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2.다시 사는 은혜(에베소서2:8-10)

[성경본문] 에베소서2:8-10개역개정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다시 사는 은혜(에베소서2:8-10/2013.6.2. 오후)

1. 성경에 보면 유대나라의 마지막 임금 시드기야가 나옵니다.
21세에 왕이 되어 11년을 다스리다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게 나라는 영영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시드기야가 정치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왜 군대가 싸움에서 패하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목전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기의 두 눈은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개처럼 끌려감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대하36:12), 즉 나라가 망하고 왕이 비참한 최후를 맞본 이유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 있었던 것임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2. 본문 1절에,「허물과 죄로 죽었던」우리를 살려내셨다고 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의학적으로는 호흡이 끊어진 상태, 뇌사상태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그 결과로 영원한 죽음이 임한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권세와 부귀가 있어도 죽음만큼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가 그 사실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잔치의 목적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원천적인 기쁨으로 충만하다면 잔치를 하지 않아도 날마다 잔치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15:11절에 보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우리 속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죄가 그 좋은 것들을 다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서 이상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리켜 죄라고 하며, 허물이라고 합니까?
죄란 헬라어로 하말티아로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바로 맞히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즉 죄란 하나님의 뜻에서, 그의 요구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죄가 인간을 지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공중권세 잡은 세력인 마귀와 세상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세상의 쾌락과 욕망의 달콤함을 보여주면서 점점 사망으로 사람을 끌고 갑니다.
인간이 그 욕망과 쾌락에 한 번 사로잡히면 자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영과 생각과 육체를 사단이 온전히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내가 원치 않는 악한 영과 세상의 더러운 풍습에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면서 사는 것입니다.
여기 「이 세상 풍속을 좇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세상의 온갖 유행과 풍조를 열심히 좇아가다가 결국은 죄 값으로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운명입니다.
사실 세상을 바른 정신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매우 비참합니다.
몇 년 전에, 후꾸오까에서 34살 된 부인이 5살 된 딸아이를 목을 졸라 죽였는데 충격적인 것은 어린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테이프로 아이의 손발을 묶고, 입을 막고 학대를 한 것입니다.
학대가 지속되면 결국 살인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죄의 세력입니다.
죄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깨트리고, 죄가 가정에 있는 온갖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을 파괴하고, 죄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NHK밤 9시 뉴스에 강상중씨가 출연해 인터뷰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동경대학 교수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가정은 너무 불행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모친이 돌아가시고,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겪고 일본사람들이 존경하는 그런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태어나면서 지병을 가지고 고생하던 아들이 4년 전에 자살하고, 자신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감사하게도 예수 믿고 구원받고 지금은 동경대학을 그만두고 기독교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죄는 순간적인 쾌락을 줄 수는 있어도 사람을 행복하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지 못합니다.
가정도 망가뜨리고 자식도 죽이고 부모 자식이 원수 되도록 만듭니다.
죄는 만신창이로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멸망시킬 뿐입니다.

4. 그러나 감사하게도,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죄로 죽어갈 때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영원히 살려 주셨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죄 때문에 죽었는데 무덤 속의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였고, 세상이 주지 못했던 기쁨과 만족을 얻게 하셨고, 놀라운 평안을 얻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죄가 얼마나 비참하며, 세상이 얼마나 간교하게 사람을 속이고 고통을 주었는가를 구원받은 사람은 압니다.
시드기야 임금처럼 그렇게 비참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죄 많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살리셨습니다.

5.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기쁨이요 감격입니다.
이 구원을, 이 새롭게 됨을, 이 다시 살되 영원히 사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완벽한 것입니다.
찬송가 318장에,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제 마음대로 살다가 육신의 쾌락이 끝날 때, 바로 그 때가 사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 늙어가고 점점 추해지며, 세상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고, 날이 갈수록 그 생명의 능력이 꺼져가고, 어디 그것뿐입니까?
날이 갈수록 죗값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이 더해가는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 믿음 안에서 새로 태어난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더해가며, 육체가 늙어갈수록 생명력이 더욱 넘치며, 세상 소망이 꺼져갈수록 하늘나라에 대한 더욱 확실한 소망으로 넘치게 된 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고통에서 기쁨으로 우리를 옮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값없이 거저 누리는 구원의 선물을 위해 너무도 많은 아픔과 고통과 희생을 치러 주신 분이 있습니다.
곧 본문에서도 거듭 반복되고 있는 이름인 「그리스도 예수」그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죄와 사단의 지배로 고통하며 신음하던 우리를 위해 기꺼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화육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희생하사 우리의 죄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감사와 감격이 늘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위해 아들을 아낌없이 희생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4절에,「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하였습니다.
죄인을 보면 불쌍히 여기시며, 저주로 죽어가는 자를 그냥 보실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자발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되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심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에,「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에 능력 많은 천사를 동원하지 않으시고, 죄인 되었다가 구원받은 나 같은 사람을 통하여 또 다른 불쌍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강상중씨는 자식의 죽음을 통해 고민의 힘「悩む力」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100만부가 돌파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죽은 아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많은 것을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죽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습니다.
이 고통은 우리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존재인 이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가치를 회복함에 있습니다.
다시 살되 영원히 살게 하시는 이 은혜에 감격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다시 살게 하시되 영원히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찬양합시다.
나 같은 죄인 중의 괴수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희생케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들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고통 하는데 그들에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힘 있게 증거 하기를 소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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