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1.사람의 가치(로마서 1:1-7)
[성경본문] 로마서1:1-7개역개정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람의 가치(로마서 1:1-7/2013.4.21.오전)
1. 어떤 훌륭한 사람이 열심히 살다가 죽어 천국 문에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생명책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잘 찾아보시오, 내가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좋은 일하느라고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나도 너무 바빠서 당신 이름을 미처 생명책에 기록하지 못했으니 미안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사람들은 바쁘게 살면 훌륭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정직하게 살면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도 급한 일이나 중요한 일 때문에 예배에 빠지고 기도와 말씀 생활을 좀 걸러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유가 많아지거나 남이 올라가지 못하는 지위에 올라가면 특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소유나 지위나 출신에 따라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들보다 결코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래 이런 세상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존재인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가치는 소유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
누가 내 속에서 나를 주장하는가 이것이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라고 직분과 사명까지 받았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인생이며 어떻게 해야 영원히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2. 첫째로 우리는 누구든지 예외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라는 종교적인 지위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학문의 경지와 로마 시민으로 출생한 최고가는 엘리트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사회와 로마사회, 그리고 로마의 속국에 해당하는 모든 나라에서 당당하게 행세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당시 사회에서는 엄청난 충격을 가지고 온 고백입니다.
당시 로마의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노예들입니다.
노예라는 신분은 전쟁의 포로와 부채의 대가로, 그리고 노예의 자녀로 태어남으로 주어집니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 자녀, 이름, 생명,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의 생명을 주인의 손에 의탁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노예를 가구나 짐승처럼 취급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바울은 난폭하며 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사상에 맞지 않는 사람은 제거해 버리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초대교회의 핍박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 사람을 변화시켰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3. 사람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결혼도 그렇고, 부모와 자녀의 만남, 선생과의 만남, 친구의 만남, 그리고 목회자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람, 완벽한 만남을 반복한다 해도, 한 가지 만남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없이는 우리의 인생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인생에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까?
마릴린 몬로는 뛰어난 미모에 케네디 대통령이 절친한 친구이고, 주위에는 명망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을 때에도 1,600억원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미모에 돈과 명성에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모두 가졌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일주일 후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이렇게 인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들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창조의 목적을 벗어나는 순간에 인간은 예외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기 때문에 살아갈수록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릴수록 비참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이 모든 것을 누리고 소유하는 중에도 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성이나 문명이 해결할 수 없으며,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4.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목적 잃고 방황하며 고통하는 인생들에게 생명의 길을 주셨고,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참 가치와 능력을 주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종교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만하면 인생은 완전하고 행복하며 그것으로 인생의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인간의 내면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지울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비참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남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 있었지만 고통스러웠고 늘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더 놀랍고 더 위대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출생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그 분의 부활의 영광,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 같은 비천하고 불쌍한 인생을 위해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실 정도로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보니, 지금까지 혈기왕성하게 앞을 향하여 열심히 좇아가던 삶의 모든 목적과 방법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자신이 자랑하고 의지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배설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니 만 세 전 부터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그릇으로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꺼이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되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드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그 사람의 삶의 목적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며칠 전의 미국 보스톤 마라톤에서 폭탄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체첸공화국 출신의 형제의 범행으로 드러났는데 폭탄 테러의 특징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은 물론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과 영원한 축복을 입습니다.
그 증거가 가나 혼인잔치에서 허드렛물이 변하여 향기롭고 맛나는 포도주 된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그 목적을 따라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고 선언하였습니다.
둘째로 받은 직분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입니다.
5절에,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믿는 자를 핍박하고 복음을 혈기로 막던 살인기계와 같은 자신이 도리어 그 복음을 위한 사도가 되었으니 감격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직분을 주심에는 분명한 목적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자랑이나 자기 영광이나 또 혹은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된 순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6.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6절에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란 소유개념을 말하는데, 이것은 연합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15:5절에서,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내 힘과 내 형편으로는 그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지만, 예수 믿어 주님의 소유가 되면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모든 선교활동과 열매들은 그가 스스로 맺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과 연합하여 바울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결과입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해보겠다는 식으로 덤비면 다 실패할 뿐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시도록 우리는 기도하고 준비하며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하기 시작하면 모든 결과는 주님이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라는 이 단어 즉 히브리어로 “하기오스”라는 이 말의 의미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 곧 구별된 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스스로의 행함을 통해서 완전하고 깨끗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로 세상에서 구별되고 하나님께 속함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7. 오늘 우리시대의 불행은 기독자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잘 안되는데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 주인처럼 살고, 내가 아닌 예수님을 내 종처럼 데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가서 봉수대교회서 예배를 본 후 그것을 지켜본 북한 간부가 “당신들 가끔 봉수대교회서 예배 하는 것 보았는데 김일성 사상으로 무장된 우리보다 나은 것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김일성에게 하는 것보다 영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나 교회에서 성도로서의 생활이 영 글러먹은 사실을 전연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종으로 예수님의 소유로서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 미래에는 더 큰 불행,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사는 복음의 종이 된 것을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6:19,20절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자기의 모든 신분과 지위와 능력도 포기하셨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몸인 이 교회를 남기셨습니다.
8. 사람의 가치는 제 스스로가 지닌 어떤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을 때 가장 귀한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지위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달려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사명받은 자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어떤 사람들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 교회에 우리를 불러 거룩한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성된 일꾼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