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3.신앙도 전쟁이다(디모데전서6:11-12)
[성경본문] 디모데전서6:11-12개역개정
11.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 신앙도 전쟁이다(디모데전서6:11-12/2013.1.13.오전) 1. 일본은 재작년도의 1년 동안의 자살자 수가 30,651명이라고 합니다. 숫자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3만 명의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OECD, 경제협력 개발기구 30개국 가운데 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야만 할 정도의 절박함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인생이, 하루하루의 삶이 전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칼을 들고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피를 흘리는 것만이 전쟁이 아닙니다. 한국의 경우는 구정만 되면 귀성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60, 70년대에는 서울역에서 서로 밀고 밀리면서 밟혀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물가는 하루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상대적 가난에서 오는 박탈감, 소외감이 남아 있는 힘 마저 빼앗아 갑니다. 잘 다니던 직장도 한 번 떨어지면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고, 다시 직장을 찾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같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는 것이 서민의 현실입니다. 자녀들에게 기대를 걸어보지만, 당장 등록금 마련할 길도 없고 먹여 살릴 힘도 없습니다. 지금도 서민들의 삶은 그 자체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전쟁이요 몸부림입니다. 이 전쟁은 재산이나 학식이나 건강이나 지위의 상하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싸움에서 밀려난 희생자들이 더 이상 생명에 대한 애착이 사라질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총칼로 무장한 전쟁터보다 더 치열하고 살벌하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때로는 양심과 윤리마저 버리고 짐승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권투나 레슬링처럼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두 번 다시 사각의 링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처럼 삶의 현장도 그런 곳입니다. 세상은 모든 면에서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곳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2. 오늘 본문에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는 말씀입니다. 11절에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 고 하였는데, 이것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돈과 정욕에 사로잡혀 영과 육신이 패가망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10절이 강조하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돈과 믿음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많은 근심을 가져오게 되고 마침내 믿음에서 떠나게 되지만, 믿음을 지키면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어찌 돈의 유혹과 물질의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도바울은 세상 욕심과 유혹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이 일을 가리켜 "선한 싸움" 이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이 선한 싸움입니까? 죄와 싸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딤후4:7)다고 함으로 자신의 생애를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싸움" 과 오늘의 본문 12절의 "싸움" 이란 단어의 원어는 "아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흔히 운동 경기를 할 때의 경쟁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군대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훨씬 강력한 의미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단순히 경기장에 모여 있는 스포츠 선수들처럼 그런 자세와 각오를 가지고는 결코 이 영적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아곤" 이라는 단어를 군대적인 용어로도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싸움은 스포츠맨십을 가진 선의의 경쟁적인 싸움이 아니라 대적 마귀와의 싸움이고 우리를 다시 사로잡아 지옥에 멸하고자 하는 죄의 세력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3. 싸움이나 전쟁은 악한 자들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선하게 살고자 하면 악한 세력과 반드시 싸우지 않으면 선을 이룰 수 없으며 공의를 이룰 수도 없습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믿음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대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마귀의 시험이 많은 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분을 받고 믿음의 본을 보이려고 하면 몇 배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고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전투적인 자세가 없는 것입니다. 선하고 착한 신앙심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내가 착하고 조용하게 살기만 하면 그것이 곧 선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착하고 조용히 사는 것은 결코 기독자의 삶이 아닙니다. 절간의 중은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히12: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한" 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싸운다는 단어는 원반던지기나 달리기 같은 그런 점잖은 경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링에서 권투 선수들이 피 흘리고 깨지거나 피부가 터지기 까지 싸우는 전투적인 모습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1982년 11월14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WBA 라이트급 경기에서 한국의 김득구 선수가 맨시니의 공격으로 다운 당하고 의식을 잃은 채 27살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처럼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3개월 후에는 김득구 모친이 자살하고, 7개월 후에는 심판도 자살할 정도로충격적인 시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비운의 복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권투 경기의 룰도 바꾸었습니다. 특히 바울 시대는 경기의 룰이나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글로버니 하는 것들이 없이 맨주먹으로 상대방을 치는 경기로 그야말로 이것은 생명을 건 군대의 전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겠다는 각오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4. 신앙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고 힘든 전쟁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정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그 어느 것 하나 지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일제 36년간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 중심의 이 신앙을 지키려고 할 때 일제 군국주의는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옥고를 치루면서 온갖 고문과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순교로 신앙의 정절과 교회를 지켜내었지만, 일부는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신사참배를 총회에서 가결하고 일본의 총칼을 앞세운 탄압에 굴복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 교회는 최초의 분열을 겪는 아픔도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대적자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교회 안에서는 지금도 마귀를 자기편에 두고 도리어 사람들을 공격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공격하여 그 믿음을 파괴하려고 미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의 신앙을 파괴하여 그 영혼을 지옥에 멸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에덴에서 추방당하게 만들고 삶 자체가 주는 고통을 평생에 맛보다가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3번씩이나 시험하고 마지막에는 군중들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소리치게 만들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하던 장본인이 마귀입니다. 이 마귀가 지금 우리를 같은 방법으로 같은 목적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달리기 선수나 수영 선수처럼, 탁구나 축구 선수들처럼 그렇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싸움이 단순한 스포츠 경기 같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영원히 죽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문제는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겠습니까? 하루를 살아가는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무슨 수로 마귀를 이길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기에 흉년으로 큰 기근까지 겹쳐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남은 양식을 먹고 자살하려고 하는 사르밧 과부에게 신세를 지면서 생명을 연명할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갈멜산의 영적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도 도망자가 되어 광야의 로뎀나무 그늘에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요청하였고, 왕상19:14절에 보면 이 땅의 선지자들은 아합의 칼에 다 죽고 제 혼자 남았다고 크게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선지자의 모습은커녕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만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엘리야는 다시 선지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남은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았고 그 하나님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40일을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산 호렙을 향해 나아갔고 그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소유한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이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오직 자기를 찾는 자에게 가까이 오시고 자기를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낙심한 엘리야에게 도리어 새 힘을 주셔서 왕들에게 기름을 부어 통치자가 되게 하였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6. 엘리야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훼 곧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돈에서 힘을 구하는 자들이 많고, 지식이나 권력에서 힘을 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곳에서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하는 힘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의 결과가 영원한 멸망의 도구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알았더라면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부가 어렵다고 서로 싸우면 끝장입니다. 어려울수록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물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분의 공급하시는 은혜와 사랑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자는 힘써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물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분의 공급하시는 은혜와 사랑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줄 믿습니다. 낙심한 엘리야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까지 떨어졌던 밑바닥 인생이었던 욥이 고난당하기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누린 비결이 무엇입니까?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찾았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7. 세상만사가 싸움이고 경쟁이고 전쟁이라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도 예외 없이 영적 싸움이요 전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싸우지 아니하고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미 시작한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고 말하면서 뒤이어서 "영생을 취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생을 취하라는 것은 이미 선물로 받은 영원한 생명을 흔들림이 없는 우리 자신의 것으로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하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의 신앙적인 가치관에서 모순과 결점과 틈새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믿음대로 살지 않는 것이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고 대강대강 신앙 생활하는 것이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으며 그 분을 가까이 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선한 싸움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정욕을 이기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이룰 수 없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고 역사하는 힘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어렵고 힘이 들수록, 사방이 막혀 있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어질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고 했습니다. 내게 새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자는 내가 가까이 하는 하나님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요 능력이니 모든 환란과 시험과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