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5.27.성령님이 하시는 일(사도행전10:38-48)
[성경본문] 사도행전10:38-48개역개정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 성령님이 하시는 일(사도행전10:38-48/2012.5.27.오전) 1. 일본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고, 언어의 영이 있다고 믿었습니다.그래서 좋은 말을 하면 행복이 찾아오고, 불길한 말을 하면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대화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웃음이 생기고, 어머니처럼 사람을 감싸주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있고, 낙심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 고난을 이기게 하는 이 같은 힘들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하다가, 언어 속에는 생명이 있고 영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연약한 생명체요 큰 자연 앞에서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언어 속에는 영이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연히 생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요한은 기록하기를「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하면서, 그「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창조의 능력과 생명력을 가진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늘 반복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지상에서 33년간의 생애를 보내셨는데, 그 생애 전체를 추적해 보면 예수님은 혼자 계시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늘 함께 하셨고, 늘 그분과 상의하시면서 사역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38절에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과 함께 하신 그 분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셨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셨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 분의 출생이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세례를 받으실 때에는 물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성령님이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마귀에게 시험받게 하셨고, 모든 사역에서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님과 함께 계셨고, 승천하실 때에도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고대로부터 언어에 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기독교의 핵심은 전통도 건물도 예전도 아니고 오직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시된 말씀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며, 말씀이 없이는 천국과 지옥도 깨달을 수 없으며, 스스로가 죄인인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도 청함을 받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순서대로 증거함으로, 듣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 받고 구원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시된 말씀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 말씀에 생명을 주고, 능력을 주고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구원이 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시면서 능력을 주셨던 그 성령님이 말씀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령님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말씀을 받으면서도 성령님을 무시하거나 아예 성령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셨는데, 그의 제자된 우리들은 도리어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믿고 내가 인정하고 내가 확증하고 내가 결론을 내리고 내가 스스로 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치 못한 신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에 내가 주인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로 하여금 전도자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으며, 누가 그 말씀을 깨닫도록 했으며 누가 우리로 믿고 확신하도록 했습니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것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인 것을 누가 알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죄와 허물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고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누가 우리를 세우셨습니까?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행하신 것은 성령님입니다. 3. 본문에서 성령에 관해서 4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한 것은 결코 우연의 역사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1장 전체를 읽어보면 베드로와 고넬료를 연결하여 그 집에 구원의 역사가 임하도록 인도하신 이가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에 임하신 성령께서 그와 그에게 속한 온 식구를 구원한 줄 믿습니다. 종말의 위기를 맞이한 이 지구촌의 현상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구원의 방주노릇을 하기 보다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 마치 중세의 기독교처럼 물질과 쾌락을 좇고 있습니다. 작금에 일어난 조계사의 중들이 추태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 시대의 종교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령님과 동행하시면서 그의 도우심을 입었습니다. 그 결과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는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나타났고, 십자가위에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와 흡사했던 패역한 노아시대는 어떠했습니까?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창6:3)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경건한 노아의 식구 이외에는 홍수로 심판을 받아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성령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실 때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지만, 성령님이 떠난 지구촌에는 고통과 저주와 진노의 심판뿐이었습니다. 또다시 노아의 시대와 같은 결과가 이 시대에 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고후6:2)이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웠던 사사시대에도 삼손이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당나귀 턱뼈로 불레셋 군사 1천명을 쳐 죽이며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이루었습니다. 4. 그렇다면 고넬료 집안에 임한 성령의 역사, 고넬료 집안을 구원으로 이끈 성령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임했습니까? 그 동기는 고넬료에게 있었습니다. 본문 30-31절을 보면 그는 평소에 기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표현은 잠시잠깐 생각나서 기도하는 그런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에게는 분명히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라고 함으로 그에게는 평소에 정해진 기도의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2절에도 보면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기도에 관한 교훈이 나오는데, 기도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구제하는 일을 말씀하신 후에「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고 했습니다. 왜냐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남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척 했기 때문에 바른 구제 바른 기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방인이었던 이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구제와 기도에 힘을 쓴 사람입니다. 원래 그가 구제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인 것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마태6장에 나오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순종하기를 힘쓴 것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사람에게 충만히 부어집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하는 일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루살렘의 성령강림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강림의 역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임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된 무리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임했습니다. 5.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상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태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 성령이 오셔서 그들과 동행하며 역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갓 태동한 교회로 하여금 신앙의 박해를 이기고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충만했습니까? 말씀을 증거하는 사도들을 가리며 대낮부터 술에 취했다고 조롱할 정도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이 사람들을 통해 귀신이 쫓겨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병든 자들이 치료받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행2:38) 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성령이 오시는 줄 믿습니다. 6.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 믿음을 주님 오실 때까지,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능력을 베푸시는 분도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일본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나 길거리에서나 시장에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처럼 담대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담대한 증거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어 회개케 하는 역사를 지금도 일으킬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고전12: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넬료 집안에 임한 구원의 역사는 다른 표현으로 하면 성령의 축제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라지 아니하고 성령의 물 붓듯 임하시는 충만의 역사가 이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44절을 보면「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하였습니다. 말씀 속에 성령이 계시고 말씀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목도한 베드로도 놀랐고, 성령 받는 자들도 함께 놀랐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바른 길을 갈 수 없으며, 복된 길로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면 롬8:26절에 보니「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생을 도우시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전문적인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생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가장 복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7. 고넬료 집안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은 이후에 제일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억지로 베드로를 붙잡아 며칠을 더 머물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령의 오심과 충만하심의 비결이 말씀에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하는 베드로를 강권하여 붙잡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사모하면 말씀 속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님이 고넬료 가정처럼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고, 이 지역과 일본 전체를 복음화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교회로 하여금 세속에 빠지지 아니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교회를 거룩하고 아름답고 강하게 하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생각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도우시고, 우리의 갈 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이 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