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3.감사할 일이 많습니다(시편116:12-19)

[성경본문] 시편116:12-19개역개정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시편116:12-19/2011.11.13.오전)
1. 제가 여행용 가방을 사서 두 번 정도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바퀴에 붙은 고무들이 떨어져 나가 끌고 다닐 때 마다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오사카에서 수리를 하려고 차에 싣고 몇 군데 돌아 다녀 보았지만 고칠 수 없다고 하거나 고치는 값으로 새 것을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조사하여 여기 저기 연락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물건이 고장나면 고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에 물건을 수리해 주는 곳도 없을뿐더러 수리비도 비싸기 때문에 차라리 새 것을 사는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물건에 대한 이런 생각이 반복되고 세월이 가면서 쌓이다 보면 결국에는 사람을 대하는 생각이나 태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 있는 성격이나 잘못된 가치관로 왜곡된 삶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도 상대방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나 살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인내하면서 서로가 보완하고 해결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쉽게 갈라서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에도 직장을 찾는 사람은 보다 좋은 대우와 환경을 제공해 주는 회사를 찾기 마련이고, 회사 쪽에서는 값싸고 유능한 인재를 구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이러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가고, 사람이던 물건이든지 일단 망가지고 연약한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은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망가진 인생을 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십자가의 은혜로 품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병든 자나, 버림받은 자나, 가난한 자는 물론 고통하는 자나 심지어 귀신들려 다 망가진 인생조차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셔서 고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 인생의 감사가 있습니다.
세상으로 치면, 벌써 수십 번도 더 버림받아야 할 우리를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납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날마다 귀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실수와 실패 같은 깨어짐 속에서도 도리어 성장이 있고, 날마다 놀라운 새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감사는 결코 강요나 선동이나 일시적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감사요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한 주일 앞두고 생각해 볼 때, 2011년의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걸어온 길이 인간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걸어 온 한 해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면 내 뜻대로 된 일이 별로 없고, 도리어 고통과 위기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목자 되신 주님의 위로하심과 도우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체험한 줄 믿습니다.
개척교회의 사모님이 남편 몰래 통장을 3개나 만들었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목사님이 물었더니 아이들이 장가, 시집가게 되면 아파트나 하나씩 장만해 주려고 매달 각각 1만원씩 주택부금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1년 넣으면 12만원이고 10년 넣으면 120만원, 20년이면 240만원인데, 아파트 한 평에 천만 원씩이나 하는데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모님이 그 통장들을 다 해약하고 그 다음주일에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님,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고, 마음이 간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소원을 가진다고 이 세상의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시편 내용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겪은 후에 기록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왕권을 빼앗으려고 아버지 신하들을 회유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리라고 누가 생각인들 했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빠진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베푸시는 은혜로 인하여 다시 제자리로 모든 것이 돌아온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았고, 지나고 보니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알았습니다.

3. 그래서 시편기자가 구체적으로 행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을 통해 나타나는 3가지의 내용을 가지고 감사를 회복했으면 합니다.
첫째로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만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것을 찬양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환란 속에서 부르짖는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였습니다.
그가 만났던 환란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 다고 했으니 이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인생의 모든 것을 체념하지 않으면 안될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는 기도, 구원을 요청하는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8절에,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오, 우리 하나님은 환란과 고통 속에 빠진 자를 위한 구원의 하나님이오, 기도하는 자에게 구원으로 응답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 구원의 노래, 이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이야 말로 사람의 심령 속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의 문제며, 교회의 어려움이며,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며, 지진과 해일과 태풍과 홍수, 그리고 원전사고로 말미암은 이 땅 이 민족이 당한 어려움이며, 우리 신앙의 영적인 위기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넉넉히 건지시고 오늘에 이르게 하신 줄 믿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자발적인 감사가 있고, 심령 속에서 울려 나오는 기쁨의 찬양이 있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 자신이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며 서원했던 모든 것을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14절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빚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빚이란 갚지 못한다고 원수가 되거나 영원토록 빚 독촉에 시달리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랑의 빚이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지는 빚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빚은 법적인 구속력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갚지 아니하면 안 될 빚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 가기 전에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우리 스스로가 약속한 맹세의 빚이요 서원의 빚을 말합니다.
다른 빚은 몰라도 하나님을 향한 맹세, 혹은 서원은 반드시 갚지 않으면 안 될 빚입니다.
삼손의 부모도 아들 삼손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환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자마자, 지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서원을 실행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행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심해야 할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서원하고도 그 약속을 갚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평생을 통하여 채권자처럼 우리에게 자신이 받으셔야만 하는 그 권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맹세하고 서원하고 약속한 것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27년을 목회하다보니 하나님께 약속 한 것을 갚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두려운 마음으로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베푸신 구원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에 이른 것을 갚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제 스스로 자기 입으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약속한 것들, 곤란 중에, 고통 중에 부르짖으며 약속한 것들, 나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서원한 것들은 반드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저가 하나님 앞에 서원 갚았다고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14절에 이어서 18절에도 똑같은 말로 반복하고 있으며 심지어 19절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 서원 갚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5. 셋째는 감사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17절에서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고 했습니다.
예배의 형식을 가진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준비한 제물을 올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을 또한 하나님의 제단에 산 제물로 드리는 감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늘 불평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고난 중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평은 반감, 시기, 질투, 미움, 원망, 다툼, 분노를 가져오고 여기서 더 많은 고통을 느끼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통해 감동이 일어나고, 감사를 통해 용서가 시작되고, 감사를 통해 우리 자신은 겸손해 지며, 감사를 통해 우리의 즐거움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귀면서 어떤 사람은 자꾸 가까이 하고 싶은데, 어떤 사람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불평하는 사람은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남에게 빛과 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사람 대하는 감정이 그렇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불평, 원망, 낙심하는 사람보다는 어려움 중에라도 감사할 줄 알고, 그 감사 속에서 기쁨을 찾고, 또 자른 감사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가까이 오셔서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감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배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우리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사를 올려 드리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찬송을 불러도 신이 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는 모임에는 하나님도 찾아오지 않으며, 성령님의 역사도 없는 줄 믿습니다.
 
6.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가 나옵니다.
이 사람들을 보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는 인생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멀리 있어도 침 뱉고 돌 던지고 온갖 저주를 퍼붓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처한 형편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당한 존재가 바로 이 문둥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이 사람들을 돌아보시고 그들 가까이 오셨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의 깨끗해진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달려가는 도중에 자신들의 몸이 치료된 것을 알았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해 버린 그들이고, 이 문둥병 고침을 받았다는 이 사실이 이 사람들에게는 기적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천지개벽할 일이었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고통에서 평안으로 묶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9명은 그 달려가는 길을 계속 달려갔지만,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께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축복, 감사가 없는 능력, 감사가 없는 기적, 감사가 없는 소원성취는 미완성의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집의 겉모양은 번듯하지만 속은 아직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미완성의 축복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언제 없어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되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감사드린 그 사람에게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입니다.
돌아와서 엎드려 감사하는 너의 그 믿음이 너를 모든 질병의 고통에서 구원했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너의 그 믿음이 너를 모든 저주와 가난에서 구원했다는 말입니다.
너의 감사하는 이 믿음이 너를 새 사람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7. 늘 바쁘게 살다보니 잊어버리지만, 생각해보고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감사를 배우는 것과 이 배운 감사를 가지고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삶이 어떤 것이며, 감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복을 받으며, 감사를 통하여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서두인 12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는 이 마음으로 가지고 주님 앞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본문 마지막 19절에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정에서 내가 갚으리라」는 말씀처럼 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를 예배의 제물로 드리는 은혜와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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