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7.참된 쉼을 원합니까(히브리서 4:4-11)

[성경본문] 히브리서4:4-11개역개정

4.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참된 쉼을 원합니까(히브리서 4:4-11/2011.8.7.오전)

1. 영국 비비씨 방송이 지난 5일 보도한 내용은, 경제협력 개발기구에 속한 회원 국가 중에서 한국인의 근로시간이 연간 2,193시간으로 최고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터키나 멕시코 만 해도 1,870여 시간이고, 부지런한 일본 사람들조차 연간 1,733시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루 7시간 노동력으로 생각하고 단순 계산을 해 보면,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에 비해 일 년에 66일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비비씨 방송은 한국을 가리켜 아시아의 일 중독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의사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당장 쉬고, 약을 먹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건강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사회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회 안의 많은 신자들이 일중독에 걸려 있고, 영육 간에 지쳐 피곤이 가중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는 물론, 봉사나 전도활동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쉼이 없습니까?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중독에 걸려 가정도 교회도 이웃도 내 팽개치고 살아야 합니까?

2. 과연 인생최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인생의 목적이 안식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주일이면 일본은 오봉(추석)이 됩니다.
벌써 햅쌀이 쏟아져 나오면서 너나할 것 없이 고향으로 고향으로 몰려갑니다.
그러다보면 일본의 전국 주요 고속도로들은 심각한 정체 현상을 일으키고, 어른 아이 할 것없이 길에서 신칸센에서 공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지쳐버립니다.
한국도 구정만 되면 사람들이 열 몇 시간 걸려서라도 고향을 찾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짧은 시간이라도 지치고 피곤해진 몸과 마음에 쉼을 얻기 위함입니다.
안식, 쉼이란 우리 인생 최대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비비씨 방송이 한국 사람들이 쉬지 못하고 일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휴가 가고 없는 자신의 빈 자리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자리로 인식될 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는 것을 뒤로 미루고 열심히 일하며, 그렇게 평생 일에 좇기며 살다가 나중에는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후회하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게 안식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어떻게 해야 쉼이 있는, 안식이 있는 인생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수고도 희생도 아닌,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안식을 얻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2절에,「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함」이라 하였고, 그 원인이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의사가 당장 쉬라고 처방했음에도 그 말을 무시하고 강행하다가 당장 그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마침내 더 큰 병을 얻고, 마침내 죽기도 하는 불상사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복된 인생이요 인생 자체를 즐기기 원한다면, 지금 당장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안식에 들어와 쉼을 얻어야 합니다.

3. 과연 당신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
헌금 적게 내도 좋으니 주일만이라도 쉬기 바랍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은 빨갛게 색칠하고 있고, 토요일은 파란 칠을 하고 있다.
파란 색은 빨간색을 칠한 날을 준비하라는 것이고, 빨간색은 주님의 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이날은 주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일이라고 했습니다.
쉰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테파우센>으로 멈추다, 쉬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사바트>로, 역시 멈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어떤 일도 행해서는 안되고 허락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기에도 안식일이 되면 밭의 모든 곡물을 그대로 놔두고, 짐승에게도 일체의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20:10절에,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안식일 하루 전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음식물을 만들거나 불을 피우는 것도 금지 되었습니다. 심지어 땅도 안식하도록 했습니다.

4. 내 방법으로는 다 실패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미국 정치용어에 <블로우 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후폭풍입니다.
이것은 대포나 총을 쏠 때 그 반동으로 뒤로 나오는 강력한 화력, 파워를 말합니다.
1953년 모하메드 모사데크 이란 민족주의 정권을 무너뜨릴 때부터 사용된 CIA의 용어를 미국 버클리 대학의 교수인 찰머스 존슨이 정치 용어로 정착시킨 것입니다.
그는, 「비밀리에 수행했던 미국의 군사, 외교 정책들이 낳은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2,983명의 희생자를 낸 9.11의 테러가 그 대표적인 블로우 백 현상입니다.
미국은 1980년 당시 아프가니스탄 내전 때 소련에 저항했던 텔레반에게 돈과 무기와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소련을 견제했는데, 그 때 고용하고 훈련시킨 사람들의 대표적인 존재가 오사마 빈 라덴이었습니다.
지난 5월2일에 미군에 의해 사살되었지만, 그는 미국의 최대 반란자였습니다.
또한 남미의 마약과 관련된 범죄자들을 이용해 남미의 정치를 움직였는데, 이제는 그들이 남미에서 정권을 잡고는 미국을 대항하여 싸우고, 남미에서 재배된 대부분의 마약들이 미국으로 밀반입되어 미국인을 좀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세계에도 이러한 블로우 백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쉬지도 못하고 나가서 일하고 사람 만나고, 하는 것들이 당장은 내게 유익이 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내 가정, 내 자녀들에게 그것이 고통과 실패, 질병으로 되돌아오는 블로우 백 현상이 교회마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살만 하다 싶었는데 병들고, 이제는 안정이 됐다 싶었는데 사기 당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한 번 손보시면 쉬지도 못하고 수고한 모든 것들이 다 날라가는 것입니다.
 
5. 제칠일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엿새는 힘써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칠일에는 하나님이 쉬심같이 나도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쉬시고, 하나님도 쉬셨는데 우리가 왜 쉬지 못합니까?
성경말씀에 쉬라는 것은 의사의 명령보다 더 강력한 강제적인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쉬지 못합니까? 우리가 쉬지 못하는 이유의 배경에는 영적인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가 아직 종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이 쉴 때도 쉬지 못하고 수발을 해야 합니다.
눅17:7-8에 보면,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고 곧 와서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쉬는 시간에 내가 쉬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곧 주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요, 세상 사람들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의 보험제도가 지금 어떻게 되었나하면, 보험 든 사람이나 해약한 사람이나 보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을 막론하고 똑 같이 손해 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쉬지 못하고 수고하는 만큼 내게 유익이 아니라 영육간에 손해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날 위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것을 누리라고 주셨는데, 우리는 그 물질의 노예가 되고, 세상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쉬지도 못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용서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 되고,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누리라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죄와 세상과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급의 종노릇 하는 것처럼,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습니까?
쉬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세상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일에 쉬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5절에,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쉰다는 것은 다 이루었다는 것이요, 쉬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종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10절에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고 했습니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466장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로 수고와 눈물, 고통과 실패 질병과 쉬지 못함이 온 인류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자신의 삶이요, 그것이 인생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쉼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쉼을 얻고, 가정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더불어 단란한 행복을 누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쉼을 얻지 못합니까?
7절에 보니, 그 마음이 강퍅케 되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세포가 딱딱하게 굳어 암세포가 되고 그것이 내 육체를 좀 먹고 마침내 생명 까지 앗아가듯이, 딱딱해지고 메말라버린 내 마음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복된 안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자는 지금 이 세상에서 먼저 쉼을 누려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출20:11절 하반부에도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안식일에도 쉬지 못한다면, 언제 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영원한 안식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주일, 곧 안식일은 주님의 집에 올라와 쉬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찬양과 교제로 내 자신을 새롭게 할 때, 지난 주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번 월요일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지난 한 주 동안에서는 깨닫지 못한 것들이 깨달아 지며, 지난 한 주간 동안에는 체험할 수 없었던 능력들과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성령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복된 주일날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히4장이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육신에는 쉼이 필요하고,
영혼에는 영원한 안식이 필요하며,
그것은 오직 날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주님만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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