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13.깨어 있어야 합니다(마가복음13:7-8)
[성경본문] 마가복음13:7-8개역개정
7.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깨어 있어야 합니다(마가복음13:7-8/2011.3.13.오전)
1. 지난 11일 오후 2시46분경, 일본 동북부 지방인 후꾸시마껜(福島県)의 태평양 해저에서 M8.8의 세계 최대급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동경에서 태평양쪽으로 북상하는 전 지역에 큰 피해가 나타났고, 오사카의 경우도 M3을 기록하는 등, 북해도에서 오끼나와에 이르는 일본의 전 국토가 흔들렸습니다.
아직은 정확한 피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가 TV나 라디오 등에서 보고 듣는 것은 피해가 확인된 지역만 알 수 있기 때문에 확인이 안 된 지역을 포함하면 이번 지진으로 입은 그 피해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크게 흔들고 지나간 지진이 계속해서 2차 3차 4차로 반복하면서 흔들고 지나갔고, 수분도 되지 않아서 거대한 쓰나미가 피해 지역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바다에 떠 있던 배들이며 해안의 산더미 같이 쌓아 놓은 컨테이너와 자동차들과 각종 시설물들이 내륙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도시나 마을을 일순간에 파괴하고 물바다로 만들더니, 다시 썰물이 되어 빠져 나가면서 지상의 모든 것들을 바다로 바다로 쓸어가고 말았습니다.
깨지고 넘어지는 건물들, 쓰러지는 나무들, 수많은 자동차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쓸려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입은 수많은 인명피해는 사망과 행방불명, 부상 등의 상태가 아직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진과 쓰나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을 전체가 사라지고, 도시가 궤멸 상태에 빠져, 통신은 물론, 전기, 수도, 가스, 도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고립되어 두려운 밤을 눈보라의 추위 속에서 떨어야 했습니다.
헬기가 동원되어 구조 작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구조의 손길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 또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 되고 있습니다.
하루 밤을 지나고 나니 더 두렵고도 무서운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2차 3차의 대형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하며, 그래서 해안의 지역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으며, 지금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도 하고, 댐의 붕궤가 우려되고, 각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의 징조가 심상치 않아 10키로 이내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이 패전 한 이후로 최대의 위기를 만난 것 같습니다.
2. 지진이 일어난 당일 저녁에는 동경 지역의 모든 전철과 전국을 잇는 신간센들이 운행을 중단함으로 650만명의 직장인들이 걸어서 귀가하거나 피난소로 대피하고, 일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수도권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중동으로 쏠리고 있던 세계의 눈들도 재난 당한 일본으로 일제히 쏠리고 있습니다.
이런 천재지변 속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역과 계층을 넘어 일본 전체가 거국적인 구조 및 원조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1995년도의 한신대지진을 경험했기 때문에 광역지역의 재해에 대한 준비는 국가와 각 지역의 공공기관들이 만전을 다해 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도 여러 모양으로 협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먼저 주위의 친척이나 지인들, 그리고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재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며,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오사카는 거의 피해가 없지만, 후폭풍으로 몰려오는 쓰나미와 혹시 모를 이 지역을 강타하는 새로운 지진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을 대비한 피난 장소를 알아두고, 비상식량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후로 한국 교회와 더불어 일본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모색입니다.
환란 당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선교적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가 질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으며, 특히 오사카의 경우는 일본에서도 생활보호 대상자로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이고, 관서이역의 경제적인 침하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이번의 동일본 대지진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오늘의 제목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6: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 책망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책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마24:32절 이하에도「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징조를 보고 시기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시대의 징조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시대의 징조란 무엇입니까?
미래에 되어질 일, 즉 이 지구촌의 종말을 미리 예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볼 수는 없고, 누구나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여주시는 시대적 징조는 믿음의 사람, 지혜의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 몸이 나이를 먹다보면 여기저기서 전에 없는 징조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내 몸이 정상이 아니구나,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합니다.
저는 지진이 나던 그날이 제 생일이고, 오후 2시에 미야꼬지마 종합병원에서 MRI를 촬영했습니다.
耳鳴으로 몇 달을 지내다가 검사를 한 것입니다.
이런 이상 징후를 방치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려면 육체의 징조에 민감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남다른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 민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주어진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시대의 징조에 민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했습니다.
재난의 시작이라면 앞으로 더 큰 재난들이 이 지구촌을 엄습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재난들이 전부 이 지구촌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종말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의 공격입니다.
5. 1970년대부터 우리 주위에는 미래학자 아무개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지구촌의 미래를 예측하며 시대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을 신문이나 TV에서 흔히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사람들이 과연 지구촌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과 혜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학입니까? 의술입니까? 복지사회의 시스템입니까? 아니면 교육이나 경제적인 힘입니까?
아닙니다. 인류학자들과 그와 유사한 저명인사들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고 진단할 때 동원하는 것이 고작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통계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처방할 뿐입니다.
그래서 늘 똑똑하고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는데 그 결과는 언제나 빗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인류가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바른 답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위기를 만난 이 인류로 하여금 정확한 미래를 내다보고 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하는 줄 믿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인류에게 참다운 의미로서의 미래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과 재난의 징조들이, 전부 한결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이 인류의 미래를 황금빛 나는 유토피아를 예측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지구촌의 대재앙을 보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7절에「끝은 아직 아니니라」와, 8절의「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임박함입니다.
6. 그래서 주님은 7절에서 두렵고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나 이사야에게 하셨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하고 전연 다른 의도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더 두렵고 떨리고 몸서리치는 대 재앙과 사건과 고통이 따라 올 것이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더 큰 쓰나미와 더 큰 지진이 일본열도를 강타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토요일 아침에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잠시 차를 몰고 나갔는데, 그제 낮부터 밤늦게 까지, 그리고 어제 아침에 TV를 통해서 본 그 참혹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광경을 목격하다가 길을 달리는데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내가 사는 이 도시가 지진의 흔들림에서 보호받은 것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내 차가 쓰나미에 떠내려가지 않은 것이 감사했고, 달릴 수 있는 깨끗한 도로가 있어 감사했고, 자동차들, 사람들,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여전한 것에 새삼 반갑고 감사가 나왔습니다.
믿음의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시대의 징조에 민감한 줄 믿습니다.
7. 문제는 미래가 없는 인류의 장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중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깨어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소망의 닻줄을 끊어버리고, 장차 들어갈 영원한 천국에만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루 하루의 나의 삶을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세상을 표현하기를 一場春夢이라고 하고, 그림자요 나그네 인생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이 세상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그렇게 바동대며 몸부림친다면 이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적인 징조가 세상 가운데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회 안에도 종말 시대의 영적 징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그 징조입니다.
그래서 이름뿐인 무능력한 교인들이 교회 안에 넘치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그 징조입니다.
지금의 넘치는 감사는 장차 당할 종말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줄 믿습니다.
말씀에 붙들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정욕에 붙들린 것이 그 징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삶을 살지 못하면 환란이 올 때 반드시 영적인 쓰나미에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8. 지금 교회 안에서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보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인들은 목사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 모두가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눅19:41절 이하에 보면,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워졌도다」고 했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예루살렘이 장차 당할 그 고통과 재앙을 내다보시고 주님은 가슴 아파 우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의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을 보고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의 가정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화를 면한 이 재앙을 보고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주님은 이 교회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9. 남편이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문병을 간 사이에 지진과 쓰나미가 덮쳐 살던 곳에 가보니 아무것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이들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한 일본 중년 여성의 인터뷰를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사람 같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텐데 이 사람은 울지도 않았습니다.
넋을 놓고 우는 시간에 아이들을 찾아내고 이제부터 살아야할 방도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에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대응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일본의 동북부 지역은 일본의 곡창지대인데, 바닷물에 잠기고 말았으니 앞으로의 쌀농사나 다른 농사일에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일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시대의 징조를 보고 바로 깨닫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이 오사카도 이번 대지진에 함께 흔들렸지만, 하나님이 붙드셔서 재앙을 면한 줄 믿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他山之石으로 삼아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것과, 환란 당한 자들의 진정한 이웃이 됨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 이 땅 이 민족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한편으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일본을 품에 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