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23.둘 중에 하나(마태복음27:11-26)
[성경본문] 마태복음27:11-26개역개정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둘 중에 하나(마태복음27:11-26/2014.2.23.오전)
1. 제 22회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지난 20일,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에 대한 은메달 판정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심판진의 부당한 채점으로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전문가인 제 개인으로 보면, 김연아가 금메달 이탈리아의 코스터너가 은메달, 그리고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동메달을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결과에 대한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해서 둘 중에 한 사람은 예상이외의 점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또 다른 하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포츠도 사람이 판단하기 때문에 잘못된 판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올림픽의 잘못된 판정은 많은 사람들의 꿈과 용기를 꺾어 버리고, 새순 같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병들게 만드는 지구촌의 또 다른 재앙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올림픽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인한 억울함으로 흥분을 한다면, 우리 자신들도 또 다른 일에 그들처럼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외적인 환경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정자들과 국민들이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면, 국가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오늘 본문에서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고자 합니다.
2. 지난주에는 가롯 유다의 잘못된 선택이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자신은 파멸의 길을 걷고 말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군중들, 곧 유대인들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또 다른 불법을 저질렀고, 그 결과로 끔찍한 살인을 불러 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살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소위 산헤드린 공회에서부터 시작한 빌라도 총독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한마디로 불법이요, 예수를 죽이기 위한 음모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끼리는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처형하는데 이의가 없었지만, 총독 빌라도에게 제동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시기심 때문에 잡혀서 심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18절에서 잘 알고 있었고, 19절에서는 그 부인까지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꿈 이야기로 설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와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 중에 두 사람의 이름이 반드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나셨다는 것과 그 다음에는 그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여러모로 애를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막무가내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난 군중들은 법이고 재판이고 총독이고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24절에 보면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험악하고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그런데 빌라도가 성난 군중들을 향해 제시한 대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라바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16절에 보니 이 사람은 유명한 죄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 누가는 기록하기를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눅23:19) 라 했습니다.
빌라도의 대안은 이 살인자 바라바와 예수 중에 한 사람을 명절의 특사로 석방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대안이 폭동이 날 것 같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바라바를 석방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무죄하다고 생각되는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는지 여러 가지 추측은 있지만, 본문의 흐름을 보면 무죄한 예수님을 방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유대인보다 이 빌라도를 예수님을 죽인 원흉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유대인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법으로 차단할 수 있는 권력과 지위가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의 이 말은 본문 24절에서 빌라도가 손을 씻은 행위와 더불어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죽이려는 유대인의 흉계를 용인 내지는 묵인하는 것이고, 그들의 예수를 죽이려는 그들의 불법재판과 살인 행위를 법으로 다스리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이것은 통치권과 사법권을 방치하는 것이요, 이것은 모든 죄책으로부터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법으로, 역사의 심판 앞에서 영원한 죄인으로 남은 것입니다.
4.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유대인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제시한 대안은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21) 고 했을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흉악한 죄인 바라바였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놀란 총독 빌라도는 다시 묻기를,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22)고 물었고,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살인강도 바라바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총독 빌라도와 성난 유대인의 군중들 사이에서 오고 간 이 대화는 물론이고 그들이 내린 결정은 너무도 잘못된 결정이요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버릴 수 있는 권한도 있었지만, 죄인 된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선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그 어떤 권한도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분에 의해 만들어 졌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가 토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볼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곳에서 선지자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 때,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렘18:4)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만들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폐기처분하고, 토기장이의 생각에 좋은 것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쓰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통해 교만한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제 마음대로 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롬9:21) 고 했습니다.
5.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선택하시고 또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권한과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일 뿐입니다.
또한 잠언16:9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고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 나아가는 길은 험난하고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나가면 반드시 복된 길로 가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엇입니까?
우리는 원래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였지만, 인간의 욕심과 마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떨어진 잃어버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된 우리 인간을 되찾기를 원하셨고, 계속해서 자신의 뜻과 영광을 위해 거룩한 도구로서 쓰임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우리 대신 희생당하심으로 죗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갈보리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 자신의 잃어버린 소유를 정당한 방법으로 되찾는 사건이었고, 자신의 소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예수님을 버릴 수도 있고 택할 권한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이 마치 창조주처럼 행세하고 교만으로 목을 세우는 것입니다.
6. 성난 군중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매수되었고, 어떤 세력들이 자신들을 조종하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난 군중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이 옳다고 여겼고, 이 의롭다고 생각되는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에는 폭동이라도 일으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빌라도의 태도도 군중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들을 더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며, 외부의 위험과 많은 문제들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국회에서는 법을 만들고 고치며, 장관들을 세워서 만들어진 이 법을 시행하게 하며, 이 일을 위해서 백성들 가운데서 공무원을 뽑아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를 보면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환상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치가들에게 기대를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기대를 거는 만큼 관심이 있었고, 좋은 정치를 위해서 분노하고 비판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애초부터 백성이나 군중들을 바른 길로 이끌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공부는 많이 하고 경험도 많지만 공의와 불의, 빛과 어두움에 대한 훈련이 없기 때문이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처럼 고함지르고 떼를 쓰면 빌라도처럼 굴복하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없는 지도자들일수록 사리사욕에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가 세상 정치와 지도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만큼 하나님께 매달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사모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에 주목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해 졌을 것입니다.
7. 의로운 자를 지키고 무죄한 자를 억울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 빌라도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내세운 대안이 아무런 효험도 없고 오히려 민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나는 이 일에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함도 알았고, 바라바의 죄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절에서, 빌라도는 그 누구도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능한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공의나 정의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민심이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의 고함소리에 깡통 찌그러지듯이 찌그러지는 빌라도를 보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와 불의를 분별할 줄 알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 속에서 소신을 가지고 이 사명을 완수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예수님을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제 목숨을 희생하지 않으면 온 인류를 영원한 사명과 고통 속에서 건져낼 수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잘못된 결정이나 잘못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택함으로 존재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일방적으로 선택함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8. 잘못된 선택은 반드시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오기 마련입니다.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하면서, 바깥이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1-13).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의 고난당하신 십자가가 성문 밖에 있으니 바깥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버림받은 것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짐승이나 노예처럼 팔아먹었고, 유대인들도 예수님 보다는 강도 바라바를 선택하고 말았지만, 예수님 스스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정되어진 자신의 길을 순종하심으로 가셨습니다.
참 믿음의 세계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시고, 그 가운데서 또 우리를 성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사명자로 세워 주셨다는 이 사실에 감사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