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25.종말 시대의 택자가 받을 은총(마태복음24:15-28)

[성경본문] 마태복음24:15-28개역개정

15.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종말 시대의 택자가 받을 은총(마태복음24:15-28/2013.8.25.오전)
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 중에 가장 접합하다고 느끼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혼돈입니다.
종교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종말 현상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문제는 종말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시대를 보는 진단은 있는데 올바른 처방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은 마치 사사시대처럼 법을 떠나 각각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이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시대적인 사명감을 상실한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십자가는 보이는데 말씀에 기초한 교회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은 들려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목마른 심령을 생수로 채우고 사죄의 은총을 입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슴이 벅차 올라와야 하는데 이것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여리고의 소경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였더라면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이고, 소리를 높여 예수님을 찾았을 것이고,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에 보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갈급함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혼자 힘으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었는데, 이제는 내 심령의 목마름이 사라지고 나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 힘이요 내 능력이요 내 잘난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거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그렇게 살았고 우리들처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매주 수요일에 아모스 강해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곳에 나타나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받은 저주와 재앙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해 쏟아 붙는 여호와의 심판은 그렇게 처참할 수가 없습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그토록 이스라엘을 고통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부들이 시장에 가서 쇠고기를 사오면 날카로운 식칼을 들고 살코기에 엉긴 기름을 발라내듯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속에 엉긴 그들의 죄악을 분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찢기는 아픔과 감당할 수 없는 수치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파괴를 맛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타협이 있고 양보가 있고 상대방과 함께 이기는 윈윈이라는 방법이 있지만, 신앙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직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것뿐입니다.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 이외에는 다시 사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매 맞기 전에 고난당하기 전에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매를 맞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늦은 것은 아닙니다.
그 때라도 우리가 집을 나간 탕자처럼 회개의 눈물로 돌아가면 하나님 아버지도 기쁨의 눈물로 우리를 맞이하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받은 택자가 받는 은총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환란과 혼란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15절 이하의 말씀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고 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이고 거룩한 곳은 어디이며 왜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까?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다니엘11:31절의 말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곳에 보면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 라 했습니다.
이것은 우상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모욕을 받는 것으로, 기원전 167년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 안에 이방종교의 우상을 세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산으로 도망해야 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원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함락될 때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7만 여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죽은 목숨의 숫자가 아니라 그 당시 예루살렘의 교회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산으로 피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사수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난한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피신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피난했던 것입니다.

4. 오늘날에도 거룩한 곳이 이같이 더럽힘을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고는 결코 바른 교회관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면 사도바울이 말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또한 우리의 몸도 그가 자신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와 우리의 몸을 온갖 더러움과 유혹에서 지키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받은 택자가 받을 특별한 은총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20절에 기록된 대로 기도의 응답입니다.
둘째로 22절의 내용대로 환란의 때를 감해 주시는 은총입니다.
셋째는 26절의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으로부터 보호받는 은총입니다.
이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15절의 마지막에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고 주석을 달아 놓을 만큼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보거든 즉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지체할 수 없는 분명하고도 임박한 환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은 환란 속에서 생명을 위해 도망하는 도중에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서 환란의 날을 감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22절).
이것은 성도들이 환란 속에 있든지 핍박을 받고 있든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로 기도의 응답을 통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렵다고 낙심하고 한숨 쉬고, 세상 사람들 눈치나 본다면 세상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이런 연약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마치 애굽의 바로처럼 자신들이 더 똑똑하고 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5. 17-18절의 말씀은 세상 종말이 다가오는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온갖 욕심 부리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환란을 이기고 우리 믿음을 완성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야 합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재물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욕심을 부리다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유다 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이 아이성에 패배하고, 그 가족은 재물과 함께 돌에 맞고 불에 타 죽었습니다(수7:24-26).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선물에 욕심이 생겨 거짓말을 하고 결국 문둥병의 저주를 받았습니다(왕하5:20-27).
가롯유다도 그렇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재물의 욕심 때문에 저주받은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서 이런 사건을 보면서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재물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견고한 믿음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사랑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또한 19-20절의 말씀은 아이 배고 젖먹이를 데리고 도망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했는데, 이것은 어떤 해석에 의하면 세상 정욕과 쾌락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잠시잠깐의 재물이 주는 만족감과 잠시잠깐의 쾌락의 유혹에 빠져 영혼가지 팔아먹는 영원한 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하고,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주님이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6.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고통이 가중되고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약해질 수 있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 질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의해 보이고 미래를 위해 아무런 보장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결코 낙심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환란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유일한 소망이요 큰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잘 흔들리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 재림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앞세워 이 같은 성도들의 소망과 위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흔드는 것이요 우리의 위로와 소망을 빼앗기 위함입니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며, 지진과 박해와 많은 혼란 속에서 성도들은 자꾸 실망하는데 마귀는 점점 기세를 올리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까지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1:10) 고 하였고, 또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1-12) 고 했으니, 종말의 위기에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일한 위로와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에게 죽음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장래에 반드시 나타나야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러나 우리의 죽음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또한 하늘 아버지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는 사실입니다(마24:36).
그런데 적그리스도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빼거나 없는 것을 더하여 잘못된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요일2:19절을 보면 그들의 원래 정체가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교회의 일원이었고, 그들로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예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고 자신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고 고백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이다"(갈1:8) 고 하였고, 고후11:4절에 보면 그들이 전하는 것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못 가르치면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미혹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고 하였고, 27절에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고 하였고, 눅21:27절에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고 하였으니, 그 분의 재림은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리지 아니하고 일시에 시간의 차이가 없이 모두가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나팔소리가 나매"(고전15:52) 라고 하였고, 또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신"(살전 4:16) 다고 하였으니, 이미 재림하였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분명한 날짜를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재림을 가지고 성도들을 위협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는 택자를 위한 분명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분명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고 약속하셨습니다.

9. 눅21장은 마24장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21:28절에 보면 예수님이 친히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머리를 들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힘들어 하고 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의심과 불평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머리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택함 받은 하나님 자녀들은 다릅니다.
종말의 징조로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는 도리어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짐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아니라 기뻐하고 기대를 가지며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온갖 기적과 능력을 동원하여 우리들을 미혹한다고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는 환란 속에서도 많은 기도의 응답이 쏟아지고 적그리스도의 미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과 풍성한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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