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17.아버지의 집(마태복음 21:12-17)
[성경본문] 마태복음21:12-17개역개정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
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아버지의 집(마태복음 21:12-17/2013.2.17.오전)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방문하신 곳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요 어린아이들처럼 기쁜 마음으로 찬양하는 곳입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예수님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일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잘 하려면 교회를 자주 방문해야 합니다.
이것은 곧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에 열심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가신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이 기대하던 그런 아버지의 집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이라고 칭하는 성전 마당에는 수많은 장사꾼들과 그들이 끌고 온 온갖 짐승들과 유대전국은 물론이고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유대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사의 제물을 사고파는 일로 아우성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서 대표적인 장사꾼이라면 두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 유통되는 로마의 화폐를 성전의 은화로 바꾸어 주는 장사꾼들과,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위해 짐승을 끌고 와서 파는 장사꾼들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편리하고 합리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제물에 쓸 짐승을 끌고 오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깨끗하고 온전한 짐승을 끌고 오다가 도중에 상함을 입어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는 그런 불상사도 방지하고, 무엇보다도 일단 성전 뜰에서 산 짐승은 제사장들에게 퇴짜를 맞을 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2. 그러나 본문 12절에 보니 예수님은 이 광경을 보시고 대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장사치들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으시고 그들을 성전 뜰에서 좇아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보신 예루살렘 성전은 그야말로 "강도의 굴혈"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로마에 들러 교황이 있는 바티칸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이탈리아 화폐나 달러를 가지고 그곳에서만 사용하는 또 다른 화폐로 교환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 이 본문의 말씀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화폐를 교환하게 되면 수수료가 붙고, 환율에 따라 차액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바티칸도 이탈리아 로마 안에 있는 나라이니 요즘으로 하면 유로를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그들이 발행하는 또 다른 화폐로 교환하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튼 예수님 시대에는 집에서 끌고 온 짐승이나 성전 가까운 시장에서 구입한 짐승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제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퇴짜를 맞기가 일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중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성전 뜰에서 제사에 필요한 짐승을 구입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보신 예루살렘 성전은 한 마디로 강도의 소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장사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한 종교지도자들과 제사를 빙자해서 거룩한 성전에서 매매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3.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사람들이 신앙심을 가지고 열심히 헌신하여 지은 건물이라 도 이것은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당연히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니 성전은 당연히 거룩한 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루살렘 장터처럼 하나님의 집을 그런 수준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그들의 생각에 거룩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도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예수님의 눈에 얼마나 잘못된 행동으로 비쳐졌으며 강도의 소굴이라고 까지 표현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본문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행할 마땅한 행동지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4. 첫째로,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 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마가는 더욱 분명하게 표현하기를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막11:17) 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사56:6-7)이라 했습니다.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도 나아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곳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기도 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도가 죽어가는 곳은 더 이상 거룩한 곳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에 응답하시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고 선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전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의식은 매우 거창하고 경건해 보였지만 기도 소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5.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강도의 굴혈" 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언한 표현입니다.
렘7:11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선지자가 이렇게 까지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성전에서 기도하지 않는 그 행위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이미 하나님을 떠났거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는 마치 강도와 도적놈들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며 하신 말씀이 "강도의 굴혈"인 것입니다.
이미 그들의 예배는 형식적이고 그들의 기도는 위선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들의 삶은 강도나 도적놈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더 이상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평안도 빌지 말고 은혜도 구하지 말라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해도 모른 척 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렘11:11) 이라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일도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입으로 나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우리의 삶이나 하나님을 행한 태도가 너무 위선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염증이 나신 것입니다.
6. 우리가 기도는 왜 합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울수록, 내 힘과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을수록, 고통과 실패를 경험할수록 아버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살아계실 뿐 아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렘33:3) 고 하였고,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눅18:7) 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고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가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요, 넘치는 응답을 이루는 곳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있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기에 오늘의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응답입니다.
이 응답을 위해 하나님이 이곳 성전에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 기도하면, 우리가 모여 힘써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열리지 않던 문들이 열리고, 응답이 늦은 기도의 제목들이 차례로 응답될 줄 믿습니다.
7. 둘째는, 내 아버지 집에는 자비가 풍성한 곳입니다.
성전 마당을 점령하고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다 엎어버리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14절에 보니,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 셨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찾아와 회개하고 예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새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을 찾는 이유가 이곳에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한하신 자비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병들고 고통당하는 자들이 치료받고 자유함을 누리고 영과 육신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 마다 늘 병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귀신을 좇아내시고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오늘 본문은 유일하게 성전에서 병자를 고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전무후무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 일어날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집인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구원받고, 육신이 복을 받아 건강하고 형통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과 축복을 위해 크게 들어 사용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처럼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8. 요즘 레 미제라블(불쌍한 자들) 이라는 영화가 인기라고 합니다.
장발장이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가 5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갔지만 거듭된 탈옥을 시도한 죄로 19년 만에 석방됩니다. 전과자에게는 갈 곳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지만 미리엘 신부의 은혜로 하룻밤 신세를 졌지만 은수저를 훔쳐 달아나다 다시 경찰에 잡히고, 그러나 신부는 은촛대까지 주면서 그를 용서합니다.
처음 받아본 용서와 사랑에 충격을 받은 장발장은 그 때부터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내용입니다.
아버지 집에 오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의 입이 열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내 아버지 집에는 기쁨의 찬양이 있는 곳입니다.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어린아이들까지 하나님께 찬미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찬송이 있다는 것은 기쁨이 넘치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사람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어찌 감사의 찬송이 없겠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있으면 찬송이 나오고, 그 찬송이 뜨겁고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찬송으로 질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고, 구원의 확신으로 충만한 줄 믿습니다.
그래서 16절에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까지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9. 그리고 23절에 보니 아버지 집인 성전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이 활동하며 살아 있는 교회가 은혜와 힘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행하신 능력의 역사가 선포되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능력이 확실하게 증거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요, 진정한 아버지의 집인 줄 믿습니다.
유대인들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위해서 길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시장하고 힘들 때 그 열매를 먹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무화과나무 하면 유대인들의 상징인데, 예수님이 그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기를 원하셨지만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아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한 마디에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를 보고 놀랐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유대인이라도 이 무화과나무처럼 심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이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처럼 열매 없는 이스라엘이 저주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형식적인 신앙, 세월이 가도 여전히 힘없고 열매도 없는 신앙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10.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찬송이 없다면 이 무화과나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랑과 자비로 주님을 따라 행하기보다는 나만 알고 내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신앙은 늘 형식적으로 흘러버린다면 우리도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21절에 밝히기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심판받고, 이스라엘이 이 감람나무처럼 되었다면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힘써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찬양과 말씀으로 죽어가는 신앙이 되살아나고 능력 있는 축복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증인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집인 이 교회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안식처가 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