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30.돈 이야기하는 교회(마태복음17:22-27)
[성경본문] 마태복음17:22-27개역개정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돈 이야기하는 교회(마태복음17:22-27/2012.9.30.오전)
1. 영국에 갔더니 물건을 살 때 50파운드나 100파운드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이 위조지폐가 아닌가하고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약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영국에서는 그런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5만 원권 지폐가 나오자 5만 원권 위조지폐가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위조지폐를 즉석에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불빛에 비춰보고, 기울여서 보고, 만져 보면 누구나 쉽게 위폐를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비춰보면 숨겨진 신사임당의 초상화와 오각형 무늬 안에 5자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한 초상화 오른쪽에 숨겨진 한국은행과 5만 숫자와 오른쪽에는 태극무늬가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기울여 보면 앞면 왼쪽에 홀로그램이 각도에 따라 태극 모양과 우리나라 지도와 4괘가 번갈아 나타나고, 안쪽으로 태극무늬가 나타나는데 각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뒷면 오른쪽 아랫부분의 5만이라는 숫자의 색깔이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앞면 초상화의 오른쪽 어깨에 숨겨진 5자가 나타납니다.
세 번째로 만져 보면 그림이나 숫자나 문자들이 요철 인쇄로 인해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듯이 지나쳐 버리는 지폐 속에도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많은 과학적인 기술을 동원하여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된 많은 증거물을 우리 안에 숨겨 놓으셨습니다.
사단이 불신자들에게 짐승의 인을 치듯이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성령으로 인치시고 믿음으로 인치시고 하나님 사랑으로 인을 쳐서 마지막 때 까지 보호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2. 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영국의 50파운드는 일본 돈으로 6,300엔 정도이고, 한국의 5만 원권은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3,500엔이 안됩니다.
화폐는 만들어 질 때부터 이미 각각의 고유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위조지폐는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화폐로서 인정할 수 없으며, 도리어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중대한 범죄가 됩니다마는, 국가가 정식으로 발행하는 화폐는 그것이 조금 찢겨지거나 심하게 구겨지거나 때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할지라도 화폐가 지닌 고유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일본 돈 만 엔이라면 그것을 누가 소유하고 있던지 어느 지역에 가 있다고 해도 고유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한 것이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입었다는 이것은 스스로 이 사실을 부인하고 거부하지 않는 이상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는 틀림이 없는 줄 믿습니다.
화폐가 구겨지고 때 묻고 한쪽 귀퉁이가 잘라져 나가도 그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아니함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서 죄와 허물과 연약함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하나님 자녀임에는 변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는 구원받은 자의 선물인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통한 약속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의 보증은 내 안에 있는 감정이나 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사랑과 약속에 있는 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들은 교회에서 돈 이야기 하는 것을 대체로 싫어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체적으로 거룩한 신앙과 세속적인 물질을 결부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사랑보다는 내가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돈에 우리의 관심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돈 이야기를 하면 그것 때문에 내가 소유한 물질에 손실을 입거나 내 자신이 돈에 매우 인색한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돈 때문에 인격이나 신앙에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에서 특히 설교를 통해서 돈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예수님은 돈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이나, 달란트 비유나, 빚을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며, 어느 청년이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 먼저 너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나를 좇으라는 것이나, 부자와 과부의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과부가 더 많이 헌금했다는 이야기며 돈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며, 돈의 단위인 세겔이며 데나리온이며 드라크마며 두 렙돈이며 오늘 본문에서도 세금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한 세겔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이 돈에 관심이 많고 돈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남다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돈에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 못지않게 돈에 관해서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 욕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예수님 자신의 관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에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를 생각하시고 그기에 맞춰 설교하신 것입니다.
4.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적어도 예수님에게는 돈 주머니나 저금통장이나 꿍쳐둔 비자금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겠습니까?
전도 나가는 제자들에게도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막6:8-9)고 하신 분이 무슨 돈이 있으며 재산이나 가진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가진 주머니가 얼마나 많으며 의복이나 신발이나 장신구나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좀 있으면 교만하고 돈 떨어지면 염려 근심에 충만하고 돈 때문에 얼마나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며 살았습니까?
과연 주님이 이런 우리의 겉과 속을 훤히 살피고 계시는데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돈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돈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도 솔직히 용기가 없고 제 자신부터 부끄럽기 때문에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하기 싫어서 교회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고 떠도는 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교회가 돈에 관해서 바른 말씀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가 무엇이고 감사가 무엇이며 왜 선교헌금이나 건축헌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가치와 목적을 부여해 줄만한 말씀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향하여 강조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삶의 원리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것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을 교회가 말라고 또 강조하고 가르쳐야만 합니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원리가 있고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뜻을 따라 창조하셨고, 그 하나님의 뜻이 온 우주만물의 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원리가 신구약 성경 66권에 기록되어 있으며 바로 이 원리를 따라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육간에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바로 앞부분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먹을 것, 입을 것, 머물 집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표현하면 우리들에게도 돈이 필요한 줄 하나님이 너무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생이란 평생 돈에 궁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 열심히 믿으면 무조건 잘 먹고 잘 사는 줄 생각하고 교회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돈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어렵지만 없으면 당장 큰일 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는 너무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아버지답게 우리에게 넉넉하게 베풀지 않습니까?
6. 그 사실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가셨을 때에 성전세를 받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적은 유대인 성인 남자면 누구나 지불해야만 하는 성전세인 반 세겔을 징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돈주머니가 없습니다. 이 말은 가진 돈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쓸 곳은 많은데 가진 돈이 적으면 제일 먼저 소비지출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줄이는 부분이 교회에 내는 헌금을 줄입니다.
그리고 세금도 내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사실 세금이라는 것이 소득이 적고 많은 것에 관계없이 굉장히 고약한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만 하여도 소비세가 5%였는데 이제는 곧 10%로 인상이 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나라 살림하는 국가의 국고에 돈이 말랐으니 국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워야겠다고 국회에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국가가 법을 그렇게 만들고 공포를 했으니 개인적으로는 싫어도 따라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국가가 어려우면 백성이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국가재정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도록 만든 정치하는 사람들이 손해배상은 하지 못할망정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갈 줄은 모르고 도리어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후안무치(낯가죽이 두껍고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이라는 것이 고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제자들에게 성전에 내는 이 세금을 내가 내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7.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전의 주인이시니 세상 순리로 따져보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27절에 보니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세금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세금을 내기로 했지만 예수님에게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포함하여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빌려서 융통을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택하신 방법이 베드로에게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제일 먼저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의 입을 벌려 보면 돈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가져다나 나와 베드로 자신의 성전세를 지불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그만한 능력과 예지력이 있으니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분입니다.
그분이 비록 육신을 입으셨지만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왜 오늘 본문에서 물고기 입 속에서 돈을 건져 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느냐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함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 스스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8. 사람들이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돈이 필요한데 왜 하나님은 풍성하신 아버지가 되지 못하느냐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하라 구하면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잘못된 곳에 쓰려고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잘못되면 아버지라도 자식의 요구를 거절하기 마련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인생을 위해 하나님이 항상 예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보다는 내가 미리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해야 안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직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만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연약한 만큼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면 그 때 그 때 마다 예비하신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돈 걱정하는 것만큼 돈에 관심을 쏟는 것만큼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분의 은혜를 사모한다면 우리 인생은 무엇에든지 부족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돈을 쌓아놓고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더 많은 것과 더 귀한 것으로 우리의 삶에 채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서 돈이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물질관계도 고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빈 잔을 채우시고 맑은 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9. 멀리 구약 성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은 많은 영육간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입니다.
마 6장에 구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구제하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제하는 자에게 무엇을 약속했습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가 갚으시리라」(6:4) 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이 말씀이 내가 행한 대로 내가 사용한 그것으로 갚으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구제를 위해 내가 소유한 돈이 희생되었으면 하나님은 기쁨과 감사로 우리의 마음만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필요한 돈으로도 채우실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야 또 구제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받아야 또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된 부모라면 그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희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인 줄 믿습니다.
10. 마지막으로 본문을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지만 베드로를 시켜 반 세겔을 지불하도록 하신 것은 사람들로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을 조금이라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서 돈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돈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과 관련해서 많은 약속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특히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는 이 말씀은, 우리의 형편을 잘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고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늘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의미인 줄 믿습니다.
돈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걱정하는 대신에 기도하고 아버지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돈 때문에 힘들고 어렵더라도 믿음으로 살면 이 어려움은 주님이 반드시 갚아주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