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2.하나님의 일(마태복음 16:21-28)

[성경본문] 마태복음16:21-28개역개정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일(마태복음 16:21-28/2012.9.2.오전)
1. 스위스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영세중립 국가란 것과 세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나라가 생각납니다.
스위스 사람들의 시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난 것은 그들의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 손재주의 퇴화를 막기 위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시간만 나면 뜨개질 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고, 그래서 스위스에 가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면서 뜨개질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손쓰는 일이 시계라는 정밀산업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1997년 IMF의 위기를 만났을 때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국내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을, 해외에서는 달러를 모아 한국에 보내는 등의 일을 통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유감 없이 발휘함으로 넘기 어려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자에게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두 가지의 조국이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신학자였던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三)는 말하기를 자신에게는 두 개의 J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Japan이라고 하는 조국이고 다른 하나는 Jesus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이 있고, 장차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만큼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자들이 흔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일, 주님의 일이라고 말 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고, 또 무엇을 가리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일인지 살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본문의 말씀은 21절에서 「이 때로부터」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큰 분기점이 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는 예수님의 질문에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만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통해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셔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결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요,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베드로 자신이 결사적으로 막아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모범적이며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3절에 보니,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는 제자가 스승의 고난과 죽음을 염려해서 그를 보호하겠다고 하는 말인데, 예수님은 도리어 크게 호통을 치시면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이라고 까지 말했으니 이것은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만일 어떤 목사님에게 성도들이 무엇인가 잘못할 때 그 사람을 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더 이상 그곳에서 목회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목사가 성도를 사단이라고 하는 것이나,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사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3. 그런데 23절을 보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예수님이 이렇게 엄하게 꾸짖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다름 아닌 21절에 기록된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가운데 빠져 고통하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21절에 기록된 내용의 일이 방해 받을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해꾼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제일 많은 방해하는 것이 첫째는 사단의 세력이고 그 다음이 일하는 사람 자기 자신입니다.
사단이 거짓말쟁이고 방해꾼인 것을 우리는 잘 알지만, 어째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당사자가 도리어 방해꾼이 되는지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답이 바로 23절 마지막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정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염려하고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22절에서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하였고,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에게 베드로만한 제자가 없습니다.
감성이 뛰어나고 매사에 앞장서서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예수님의 일이라면 몸으로라도 때우려는 것은 매우 귀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사람의 생각의 한계점, 인정의 한계점을 보게됩니다.

4. 사람의 생각은 겉으로는 감동을 주고 매사에 옳은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하는 일을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그런 일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하면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베드로는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사람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 의리 있는 사람, 스승을 잘 섬기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데는 빵점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심각한 자기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큰 칭찬과 축복을 받을 만한 신앙고백까지 해 놓고는 정작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자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말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고 말한 것은 인정에 넘치는 인간미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인 것을 깨닫지 못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하셨는지, 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셔야만 하는지 전연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생각을 버리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인정이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일의 방해꾼으로 만들고, 한 영혼 구원하는 일의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심하게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려면 바로 이것, 사람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4)고 말씀하셨습니다.

5.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란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것이요, 십자가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희생도 거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살이 찢어지고 뜯기고, 그의 피와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아니하고 다 쏟아진다 하여도 이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참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참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명도 초개와 같이 던져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젊음도 희생하고 재물도 아끼지 아니하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수치와 멸시를 받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육신이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제 먹을 것 제 입을 것 쓸 것 다 희생해가면서 땅 끝까지 찾아가서 수집해 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 인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어찌 희생이 없겠습니까?
그분은 십자가에서 죄 가운데 빠진 우리를 살리시려고 대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바로 이것이 아버지께 버림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요, 또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 답이 24-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첫째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곧 하나님의 일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우습게 여기면 신앙생활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예배 중에 우리를 실패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일 보다는 육체의 일을 우선하도록 유혹합니다.
사람의 생각의 결과는 영생이 아니라 영벌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 받은 것도 바로 이 사람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는 이 일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7.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기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단순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곧 버림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버림당하는 것은 남에게 버림당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까지 버림 당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십자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어려움을 당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진다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본문은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닙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미완성이 아니라「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심으로 완성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신 지고 말고 할 그런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며,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 십자가만 붙들면 마귀는 물러가고 모든 질병과 저주에서 영원히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질 때, 그 때부터 내 삶과 내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물론 십자가 지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그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가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주시고 끝까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7. 셋째는 내 목숨이 아니라 남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자신을 희생할 때, 하나님의 일은 내 안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 목숨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면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지만, 죄인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내 목숨을 걸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보장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약하여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6절에서「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해도 제 한 목숨은 구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목숨 걸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얻었지만 정작 내 생명이 위태로울 때 그것들을 주고 내 목숨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라는 이 말은 도무지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내 생명을 걸고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 지는 삶을 살면 반드시 「행한 대로 값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고난을 당하셨고 죄도 없이 무고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일은 곧 죄인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고 영원토록 사랑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고난 당 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뒤를 잇는 영광의 길이요, 그가 고난과 죽임을 당한 후에 받은 영광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같은 상급과 영광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젊음과 삶을 온전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고난을 잊어버릴 만큼 풍성한 축복과 영광으로 우리의 현세와 내세에도 넘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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