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12.두 가지 문제점(마태복음 16:1-12)

[성경본문] 마태복음16:1-12개역개정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 가지 문제점(마태복음 16:1-12/2012.8.12.오전)
1.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0개로 종합 10위라는 목표를 세우고 선수단을 파견했는데, 예상 이외의 선전으로 폐막 하루를 앞두고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한일의 자존심이 걸린 올림픽 축구의 동메달을 놓고 토요일 새벽에 붙은 경기는 한국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일본을 2-0으로 이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번 올림픽에서 예상 이상의 부진으로 금메달 두 개와 은, 동메달만 수두룩하게 모아 놓은 형국이 되었고, 종반전에 금메달을 5개로 추가해서 종합 13위로 겨우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금메달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일본 보다 국력이나 체력이나 모든 것이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이 그 나라 그 국민을 전부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번 여름 더위는 한국도 일본 이상 가도록 더웠고 열대야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의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력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어려운 형편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자세는 올림픽 금메달의 결과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원자력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정부가 절전을 호소했더니 국민들은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인내했고, 회사들은 전기 수요가 많은 시간대를 피해서 공장을 가동함으로 어려운 전력 수급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위를 먹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일 몇 명씩 나타났고, 정부는 도리어 적당하게 에어컨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실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전보다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가게들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에어컨을 풀가동 하고 있으며, 회사들은 한국전력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절전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 보조금의 금액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양쪽 나라가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 방법이나 국민들의 대응이 지척간에 서로 이웃하면서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절전하는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는데 반해서 한국은 규제에 마지못해서 응하거나 국가로부터 보조금이나 받아가면서 절전하는 것은 동메달 감도 안되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고 나면 한국이 금메달 몇 개나 땄는지 궁금했지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금메달은 올림픽의 금메달 보다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양과 상식,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금메달 감이 되어야 이것이 정말 전 세계에 자랑이 되고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계십니다.
그 첫째 문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즉 그들의 교훈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조심할 것이 많지만 특히 이 사람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교훈대로 살지 않는 위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많고,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해도 가르침대로 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마는, 이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지적하고 책망한 대로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세례요한이 그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마3:7)이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마23:27)이라고 했겠습니까?
만일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가르치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위선자가 된다면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독사가 되고 회칠한 무덤이 될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로 살 것을 가르치면서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자식들에게 독사가 되고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니 회칠한 무덤 같은 목사에게 회칠한 무덤 같은 신자가 나오고, 독사 같은 부모에게는 독사 같은 자녀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사 같은 사람이 안 되려고 독사 같은 자식 만들지 않으려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나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는데 힘쓰는 줄 믿습니다.

3. 그런데 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찾아왔습니까? 1절에 보니 예수님 만나는 목적이 「예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가 시험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귀가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함으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 첫 걸음에 마귀는 시험했습니다.
저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하는 짓이 바로 마귀가 하던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짝이 되어 잘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사두개인들과 짝을 지어 나타난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은 종교나 정치에 있어서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는 데는 한 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는 데는 일치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악의 정체요 수법입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물로 헐뜯다가도 공의와 정의와 진리 앞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사단의 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한가지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날씨의 좋고 나쁨은 구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줄 모른다면서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만한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의 표적」이란 무엇이며  「요나의 표적」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종교지도자들은 성경과 지식에 대한 능력은 뛰어났지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대해서는 완전히 깡통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시대의 표적」 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 죄악과 저주에 빠져 고통 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전연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예수님을 시험에 걸어 올무에 빠지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고 동시에 그들의 한계점이었습니다.
 「시대의 표적」 이란 성경을 많이 아는 지식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나 권위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의 표적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들로 믿고 받아들일 때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그 어떤 기적이나 능력을 보여 주어도 그 완고한 마음과 불신앙적인 요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앙은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마음의 눈, 영의 눈까지 어둡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와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경치와 좋은 시설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미인 아내를 데리고 살아도 얼굴 한 번 볼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주기를 원했는데,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이 너무 부족하고 시원찮아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표적이나 기적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불신앙의 마음이 문제이고, 불순종하는 그 태도가 문제입니다.
오늘날도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이중적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안하무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그렇다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5.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요나의 표적」뿐이라 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향한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세운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싫어,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졌고, 빠진 요나를 큰 물고기가 와서 삼켜 버렸는데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갇혀 있다가(욘1:17) 살아났습니다.
이 요나의 기적처럼 예수님 자신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사건을 두고 「요나의 표적」 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이외에는 너희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장차 일어날 이 사건을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들을 포함하여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4)라고 하셨습니다.
악하다는 것은 그들의 위선적인 삶과 가르침은 물론이고 그들의 독단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마음이 악하다는 것이고, 음란하다는 것은 그들이 신앙적인 순결성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표적을 구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악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구한 것입니다.
  
6. 두 번째 문제는 제자들 자신들의 문제였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 한적한 곳으로 가면서 제자들은 미리 떡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이 복잡했고 서로가 다투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시던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했고, 제자들은 떡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수 때문에 예수님이 화가 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8)고 했지만, 같은 사건을 마가복음에서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막8:17-18)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뿐만이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마음이 완고하고 어리석음으로 당연히 볼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미 들은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흘러 보내고 만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단순히 믿음이 적다고 표현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 못합니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도 왜 예수님의 말씀을 모릅니까?
그것은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먹을 떡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교훈을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예수님이 떡 때문에 화가 나셨다고 오해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7. 그러나 예수님은 떡이 없어서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마귀도 예수님은 돌멩이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마4:3).
문제는 본문의 9-10절에서 밝힌 대로 오천 명을 먹이고 또 사천 명을 먹인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떡이 전연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먹이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한 공급하시는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사이에 이런 사건들을 새카맣게 잊고는 또 떡 때문에 고민하고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은 영혼의 문제 뿐 만이 아니라 육신의 문제까지도 해결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두 번의 기적 체험을 모조리 잊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의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오염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떡이 아무리 모자라도 예수님은 그 때마다 다 채워주셨고, 모인 모든 사람을 만족 시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떡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이 큰 능력과 기적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8.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즉, 위선적인 삶과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그 능력 한 가운데 살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작은 문제 앞에서 도 낙심하고 방황하는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문제를 만나면 제일 먼저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불신이고 의심이고 낙심입니다.
결국 내 신앙과 교회의 걸림돌은 우리 자신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내 안에도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문제가 있고 제자들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니 나중에야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나면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우리의 영과 육신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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