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15.주여, 나로 오라 하소서(마태복음 14:22-36)

[성경본문] 마태복음14:22-36개역개정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4.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여, 나로 오라 하소서(마태복음 14:22-36/2012.7.15.오전)
1. 지난 주간에 규수지방에 내린 비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무서운 폭우였다고 했습니다. 어떤 가족은 차를 타고 피난 가는 중에 모두 실종이 되기도 했습니다.시간 당 100미리를 초과하는 폭우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했는데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서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고 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가 전하는 영상을 보니 규모는 작지만 작년 지진 때에 일어났던 쯔나미를 연상할 정도였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상정보가 아무리 정확해도 일단 닥친 자연의 재앙은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힘든 것입니다.
뉴스를 통해 미국에서만 보던 토네이드가 지난 5월에 동경의 인근인 이바리기와 도치기껜을 강타하여 900여 채의 집들과 시설들을 폐허처럼 만들고 말았습니다.
피해를 입은 82살의 노인은 평생에 이런 것은 처음이고 너무 겁이 나서 구체적으로 기억도 안난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경제가 어려운데 자연 마저도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점점 우리 가까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불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도 한 밤중의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물결은 당장 배를 삼키려듯 달려들고 작은 배는 나뭇잎처럼 파도를 따라 솟구치고 내려앉으며 흔들릴 때 무섭고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 저는 오래 전에 시칠리아에서 저녁에 떠나는 배를 타고 몰타 공화국으로 가던 중, 밤이 되면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수백 명을 태우는 그렇게 큰 배도 바다에 던져진 성냥갑 처럼 느껴졌습니다.
배가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가 또 순식간에 내려앉으면서 선창에는 사방으로 바닷물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토하고 뒹굴며 고통 했는데 나중에는 뱃속에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계속 토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사도바울도 태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기 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생각했고, 그리고 아마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파도를 뚫고 건너편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사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있는 힘까지 다 빠져 탈진한 상태에서 바람이 부는대로 파도가 치는대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물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가4:38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는데 그 때도 큰 풍랑이 일어났고 배에 물까지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작은 곳이라도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고 그 때마다 숙련된 어부들이라도 많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 단순히 예수님의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도 세상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고, 자연 재해를 포함한 많은 고통과 위기에 봉착한다는 사실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특이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고 예수님 자신은 산으로 가셔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늘 제자들과 함께 하시던 예수님이 왜 그들만이 배를 타고 떠나라고 했습니까?
함께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나중에 함께 배타고 가시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만 보내신 것은 고난 중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방금 인용한 마가4장의 경우에도 풍랑을 만나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께 도움을 구할 때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고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입니다.
물론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험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하고 그 믿음을 성장시킴으로 영육간에 축복하시기 위해 시험하시는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도 제 스스로 걷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제 스스로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많은 넘어짐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에는 세상 모든 것이 한정적이고 눈에 보이는 이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 걸어 다니면 지금까지 갈 수 없었던 곳을 갈 수 있고,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함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점점 세상이 넓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4. 문제는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물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제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유령이라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승도 몰라보고 귀신이라고 무서워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두려워해야만 합니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바다가 악령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유령이라는 존재는 사람에게 해악한 존재라는 인식과 함께, 밤중에 바다에서 유령을 만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미신이 그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많은 기계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데 어느 날 신문 기자가 와서 인터뷰 하면서 이 방에서 제일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 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기 놓여 있는 쓰레기통이 이곳에서 제일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연구하고 만들고 실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미 쓸모없는 것들, 지난 데이터들을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이고 진실인 것처럼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고통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잘못 알려진 지식이나 경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속아 넘어갑니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해서 이것들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속아 넘어지고 이것들을 지고 가다가 깔려 압사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생각의 문제입니다.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라도 내가 그렇다고 동의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생각과 의지와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잘못된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잘못된 믿음도 믿음이기 때문에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의 영웅들은 여기에 속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그 분의 손에 던졌습니다.

5. 참으로 기가 막힌 사실 한 가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고 했음에도 제자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령이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이 물 위로 걸어 다닐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늘 말씀을 통해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며 하늘에서 만나가 쏟아진 출애급의 사건들을 배우고 듣고도 막상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기적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없는 인간의 한계라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믿음으로 산다고 큰소리치면서도 막상 제 앞에 위기를 만나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두려워하고 연약해지고 불안에 떠는 것이 인간입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유령인지 선생님인지 아직 확인도 안된 상황에서 그를 향하여 던진 말이 무엇입니까?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그랬더니 그 분은 당장 베드로를 향하여 「오라」 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한 마디에 29절에 보니 베드로는 겁도 없이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입니까?
아마 어떤 제자들은 이런 베드로의 행동을 보고 팔을 붙잡고 말렸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들은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이 더욱 무서워서 더디어 귀신에게 홀렸구나 생각하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6.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이 일이 잘 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시작한 것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때로는 염려가 두려움이 되고 공포가 되면서 일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사방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면 가졌던 확신도 사라지고 그야말로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 같은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되는 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길은 열리게 마련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은 한결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풍랑 만난 것 위에 이제는 유령까지 만났으니 이것은 100% 죽는 일만 남았구나 하고, 그 때 이런 난관을 돌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리기 전에 예수님을 향하여 던진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입니다.
베드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는 이 말에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던지는 말이지 귀신이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용기를 주고 확신과 힘을 주는 말이지 우리를 향해 미워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말도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에 차서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물 위로라도 걸어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7.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소망을 주고 힘 주는 말을 던지는 사람은 내게 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했느냐 조심하라고 그랬지! 안된다고 했는데 내 말 안 듣다가 꼴 사납게 됬구나! 이런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과 베드로가 나눈 이 대화가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입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한 것은 그 분에게 그만한 능력과 힘이 있기 때문에 명령하신 것이고,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베드로는 당신의 명령 한 마디면 물 위로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 힘과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그 분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비록 도중에 갑자기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바다 속에 빠졌지만 그것도 주님이 붙잡아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이에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 분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다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했습니다.

8.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의심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바다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지만 선창에 처 박혀 벌벌 떨고 있는 것은 마귀가 주는 불신앙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평소에는 잘 믿는 것 같은데 내게 문제가 생기면 세상 사람보다 못한 모습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시편기자는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94:18-19) 고했습니다.
눈만 뜨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주님을 향하여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이 믿음이 내 안에 있는 연약함과 두려움과 불안을 이기고, 또한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을 이기게 하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위기 만난 인생이 사는 길이고, 바로 이것이 풍랑 만난 인생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구원받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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