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가장 큰 자(마태복음 11:7-19)

[성경본문] 마태복음11:7-19개역개정

7.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가장 큰 자(마태복음 11:7-19/2012.2.5.오전)


1. 지난 3.11의 대 지진이 있고 벌써 일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일본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민주당 정권의 1년 짜리 수상들이 차례로 바뀌면서 장관들도 바뀌는데 아무리 보아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쓸만한 정치 지도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국회에서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아프리카에 파견된 일본의 자위대가 무슨 목적으로 그곳에 파견된 것도 모른 채 국회 질문에 대답을 한다고 나와서는 허둥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십 수년 전에 자민당의 오부치(小渕恵三)가 수상이 되었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오부찌는 뛰어난 지도력과 덕망으로 일본의 수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다께시다(竹下登) 라는 인물의 정치적인 공작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수상으로 국가의 지도자로 배출 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 어느 정당 어느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력이 부족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단체는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이 시대의 불행은 경제위기도, 문명의 혼란도, 지식이나 정보의 부재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불행과 위기는 큰 인물,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위기를 만나도 정작 교회를 위기에서 건져내기 위해 몸 바쳐 충성하고 헌신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국가가 위기라고 말하면서도 이 위기 속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백성을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한국도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외부의 세력에 의해 무너지기보다는 내부에서 먼저 붕괴되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 나꼼수가 내 뱉는 막말이며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보면서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소리보다는 도리어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은 잘못 사용하면 언어 폭력이 되고, 아름답지 못한 언어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독버섯과 같은 것이며, 잘못된 말과 비판에 열광하며 그곳에 빠져 버린 사람들이 나중에 이 사회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꼼수는 말 그대로 꼼수의 수준 그 이상을 넘어갈 수 없으며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존경 받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검사라는 사람이 이런데 쉽게 물들어 뱉어내는 말을 신문에서 읽으면서 가슴이 담답했습니다.

2.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시대에 중요한 지도자 한 사람을 목격하게 됩니다.
곧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7절에 보니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험한 광야로 나가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일부러 험한 광야로 나가는 이유는 경치를 즐기는 것도,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세례 요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아니하고 말씀으로 백성들의 죄를 질타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순수한 세례 요한이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그에게로 간 것입니다.
7절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무엇입니까?
지조가 없는 사람, 신념도 소신도 없는 사람, 세상의 바람이 부는 대로 그곳에 영합하고 흔들리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선지자로 부르신 그 소명과 말씀 속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선포했습니다.
주님의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명예와 미래를 아낌없이 희생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영합하지 아니하는 변하지 않는 신념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를 맞아 누가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말을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신앙과 자기의 의를 굽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옥에 갇히고 나중에는 목이 떨어지기까지 세례 요한의 변하지 않는 신념, 확신, 그의 태도가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3. 작은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 안에서 왕따 당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신임과 인정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흔들릴 것 같지 않는 땅이 흔들리면서 지진으로 사람들이 평생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경계선을 넘어 올 것 같지 않은 바다가 넘쳐흘러 해일을 일으키고, 사랑과 화평 속에서 늘 행복한 모습만 보여줄 것 같은 가정이 흔들리고, 동경 지역은 다시 흔들릴 지진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백년 해로를 약속하는 결혼식의 선언은 쓰레기통에 던져진 3류 잡지보다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까?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받은 바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장 중요한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영적 신념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사랑을 위해서라면 나 혼자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원인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시대에는 적어도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광야로 나가 요한의 말씀을 듣기를 즐겨했고, 말씀에 양심이 찔리고 영혼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요단강으로 나가 그에게서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늘 우리 시대는 광야로 나가 말씀을 들을 용기도 없고, 회개에 합당한 세례를 받을 시간적인 여유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말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이 이 시대를 위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이 일을 위해 남은 내 생애를 불태울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마지막 시대의 능력의 지도자로 큰 일군으로 세우시는 줄 믿습니다.

4. 또 한가지는 “부드러운 옷”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욕망과 성취감을 만족시켜 주는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드러운 옷이란 그 당시에 왕궁이나 권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단한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단정되고 세련미 넘치는 모습만으로도 지성인으로 자처했고, 사람들을 압도하는 권위로 장식하고, 많은 인기와 육체의 향락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거친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차고, 험한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양식이라고는 바위틈에 고여 있는 석청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선지자다운 삶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그가 말씀을 선포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포한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도 자신의 말씀대로 사신 분이었습니다.
저신을 가리켜゛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요6:35)이라 말씀하신 대로 벳세다 광야에서 주린 군중들의 배를 채우시고, 나중에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떡으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자신의 몸을 희생해 주셨습니다.
짐승은 자신이 수고한 대로 먹고살지만, 인간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삶, 특히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창조하셨고, 우리 주님도 말씀대로 사셨으니,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능력과 은사와 축복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5. 사람의 가치가 어디서 살며, 무엇을 먹으며,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요한은 짐승들의 거처인 광야에서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자신이 속한 한 시대를 살리는 참된 지도자였습니다.
특히 그에게는 하나님께로 받은 세상을 향한 불같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대신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포하며 사는 선지자였습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에, 사람의 눈치를 볼 줄 몰랐습니다.
세상의 영화와 성공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비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천하게 산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신 선지자의 사명에 충실하였을 때 주님이 평가하신 대로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시대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출생하기까지 이스라엘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줄 예언자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비 내리지 않는 사막처럼 메말라 비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위기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많고, 설교자가 흘러 넘치고, 성경의 종류가 수백 가지 출판되지만, 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불같은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선지자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썩어져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 바른 말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그대로 들려준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선지자보다 나은 자”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6. 무엇보다도 그의 받은 사명이 그를 크게 만들었고 위대하게 했습니다.
10절에,“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선지자 말라기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말3:1).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그를 가르치고 그를 예언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미 오신 메시아를 직접 만났고, 그의 사역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명은 보통 선지자들의 받은 사명과는 달랐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의 길을 닦는 일에 자신의 삶과 생명까지 바쳐 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이상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가장 크고 위대한 존재임을 칭찬하고 인정하시면서, 동시에 어떻게 보면 가장 작은 자처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잘못해석 하면 크게 오해를 사기 쉬운 구절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의 의보다는 신약의 믿음의 의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도 큰 자이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아, 영적으로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는 우리가 더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가장 큰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나 삶이나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메시아 되신 예수님으로 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도 자신이 예언하는 대상인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실에서 가장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누가 가장 위대하고 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구약시대에는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시대에는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7.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할 내용은 예수님이 그 시대를 비유하기를,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아이들과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셨습니까?
옛날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라 별도로 없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은 결혼식 흉내나 장례식 흉내, 그리고 전쟁 놀이 같은 것으로 어울려 놉니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는 것으로 보아 결혼식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같이 놀아 줄 동무들이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서로 각기 자기들이 좋아하는 다른 놀이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리 소리에 무관심하고, 동무들의 권고를 듣고도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관심입니다. 무관심 하는 것은 자기 고집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위대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도 가슴을 칠 줄 모르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해도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유대인들은 메시아 왕국을 그토록 사모하면서도 정작 그 왕국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메시아를 선포하는 요한을 잡아다 목을 베어버렸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 행하심을 보고 귀신 들렸다고 조롱하였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하시는 것을 보고 죄인들의 친구요 탐식가요 술주정뱅이라고 조롱했습니다.  
마침내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나의 놀이, 나의 고집, 나의 스타일과 삶을 버리지 아니하고는 구원의 여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21세기는 자기 고집 때문에 망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8. 이 시대에서 가장 큰 자는 누구이며 누가 가장 위대한 자입니까?
12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단순히 천국만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천국을 스스로의 힘으로 침노하고 정복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라면 주위를 불 밝히는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그런 의지, 그런 생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요 가장 위대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이란 시험을 칠 때 답안지에 예수라고 쓰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예수님 얼굴만 그리지는 않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십자가 목걸이나 예수님 얼굴이나 이름이 새겨진 기념품이나 만드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이 보여주신 본을 따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세례 요한 처럼 예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요, 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제일 큰 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이 신앙으로 인한 어려움 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위해서 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것만 해도 가장 큰 성공인데, 천국에 들어갈 소망이 있는 것 만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었고 누리고 있는데, 우리가 그 위에 무엇을 더 욕심 내야 합니까?

9. 생활이 좀 어렵고 하루 하루가 피곤해도, 먹고 입는 것이 남들과 비교해서 조금 못할지라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의 확신, 그 변함 없는 의지, 주님을 향한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코 부끄럽지도 초라하지도 않으며, 도리어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무너져 내리는 21세기를 다시 세우고, 혼란과 고통 속에서 참 지도자를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를 살리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원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시며, 구원을 완성하시는 줄 믿습니다.

내 욕심으로 세상에서 성공하면 그것은 잠시뿐이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큰 사람이 되어 주님을 모시고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면, 이 땅에서는 물론이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가장 큰 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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