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29.그리스도인의 삶(마태복음5:17-32)
[성경본문] 마태복음5:17-32개역개정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그리스도인의 삶(마태복음5:17-32/2011.5.29.오전) 1. 아사히신문에서 최근에 조사한 앙케트를 보면, 인생의 리셋(새출발) 버튼을 누를 것인가? 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이 46%였습니다. 그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지금 인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순서별로 보면, 일이나 직장, 학업이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다음이 내 자신이 싫다는 사람, 그 다음이 연애나 결혼생활이 파탄이 났거나, 혹은 질병으로 고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인생을 어떻게 리셋 하겠는가 물었더니, 직장이나 학교를 바꾸겠다는 사람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해외로 이주하겠다, 다른 일을 병행하겠다, 별거나 이혼을 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대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견해를 보면, 인생 리셋은 도피성 내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잘못된 현상을 잘라 내어 버리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실패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였습니다. 막연하게 특별한 대안도 없는 인생의 새 출발은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좌절만을 안겨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삶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고 그기에 따른 계획과 대안이 준비되어졌다면 새출발의 성공률은 매우 높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다는 것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환경이 바뀌면, 새집에 새 물건으로 가득 채우듯이 인생의 조건들을 새롭게 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환경이나 조건이 바뀐다고 결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삶의 방향과 목적이 잘못된 사람은 무엇을 바꾸어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고,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바꾸지 못하면 고통은 더욱 증가할 것이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분명한 대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바꾸어도 행복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다고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바로 살 수 없고, 위로 받을 수도 없으며, 인생의 빈 잔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에 참 목적을 주시고, 내 메마른 심령을 채워주시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도 참 행복을 맛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참된 목적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그의 본을 좇아서 순종하고 살아갈 때, 가치 있는 인생, 보람 있는 삶,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2. 본문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제 마음대로 가감하는 종교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살인이며 분노며, 다툼이나 원망, 이 시대의 유행병처럼 번지는 성적인 문제나 이혼 문제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런 삶을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살다보니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그래서 원치 않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생각하기를 남들보다 더 의롭게 살고 싶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살인이나 도적질 하다가 감옥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잘못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의외로 준엄합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셨고,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하셨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형제에게 화만 내어도 지옥 불에 떨어진다거나, 멸망하지 않으려면 눈을 빼어내고 팔 다리라도 자르라는 무시무시한 말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런 말씀에 순종하여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화를 한두 번 내지 않은 사람 없으며, 알게 모르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마음속에 음란한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것 때문에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니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말씀은 주님이 오신 목적에서 그 뜻이 분명해 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율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리어 율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율법이 정죄하는 사람을 주님은 도리어 용서해 주셨고, 스스로의 행동 또한 안식일을 범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의 가르치시는 것도 매우 파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에게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17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는 율법을 변형시키거나 없애거나 오해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말미암아 왜곡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제자리에 돌려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느끼는 율법의 존재는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그것을 정죄하며, 그래서 그 죄 값을 치루도록 심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에 이러한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이 가진 일부의 기능만 우리의 기억속에 남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와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완악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핵심을 놓치고 껍데기인 율법의 기준만 보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추는 삶을 살고자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래 의도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님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이 파괴적이고 율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언행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분명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고 했습니다. 곧 율법의 완성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하셨다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율법이 아니요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 하면 율법은 심판이고 은혜는 사랑입니다. 율법의 말씀대로 의롭지도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한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의 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죄와 허물을 없이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 힘으로 율법이 원하는 목적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하는 목적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죄를 죄로 알지도 못하며, 율법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조차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보혈 속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율법의 말씀을 하나도 지켜낼 수 없는 그렇게 연약하고 어리석은 불쌍한 인생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율법 속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법의 완성자요 하나님 사랑의 완성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리스도는 불완전 해 진 율법을 다시 완전케 하신 자입니다. 5. 바로 여기에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있습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왜 분쟁과 미움과 살인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까? 원인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이나 조선의 궁궐에는 방중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오히려 고독했고, 그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많은 여자와 방중술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왕자, 공주가 출생해도 전부 보모상궁이나 내시의 손에서 자라납니다. 궁궐 안에는 여자도 많고 시종도 많았지만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절대권력자라 하여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참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그래서 사랑만 있으면 인생을 리셋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 자체가 우리의 의가 되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야 할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잃지 않게 하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시면서 죄인 되었던 우리들을 온전하게 보전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대로 하고, 세상 방식대로 하면 심판하고 싶고 복수하고 싶습니다. 남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이지매 하면, 미워하는 사람이나 미움을 받는 사람이나 같이 괴물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함께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완성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6. 48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되신 주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못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분노와 정욕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으로 살인과 간음을 반복하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백체가 온전히 보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 의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때 온전해 지며, 이 사랑에서 세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나오고, 이 사랑에서 죄와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과 확신과 기쁨이 나오며, 환란 당한 이 땅 이민족을 구원하는 능력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