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2.세상과 우리(마태복음 5:13-16)

[성경본문] 마태복음5:13-16개역개정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상과 우리(마태복음 5:13-16/2010.5.22.오전)
1. 1830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나 샤를 10세가 퇴위 당하고, 최고의 권력자들은 왕가 출신이 아닌 루이 필리프를 선택하여 왕좌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의례나 격식 같은 것을 싫어했고, 귀족들보다는 은행가들이나 사업가들, 그리고 중산층 평민들과 잘 어울리면서 왕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한껏 낮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이 플리프의 상징은 왕관이나 손에 쥐는 홀이 아니라 회색 중절모에 우산이 그의 상징이었고, 이런 차림으로 파리 시내를 의기양양하게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왕들과는 달리 돈을 좋아했고, 그래서 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은행가를 왕궁에 초대할 때에도 왕인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를 했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이런 왕을 좋아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체통이 없는 왕을 경멸하기 시작하였고, 은행가들조차도 왕을 멸시했고,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왕이 아니라 돈을 쥐고 있는 자신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왕을 마치 자기 아랫사람 다루듯이 하였고, 공개적인 석상에서도 왕이 늦게 왔다는 이유로 망신을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1948년 2월 23일 밤, 파리의 성난 군중들이 왕궁을 둘러싸자, 루이 필리프는 왕위를 버리고 잉글랜드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이 루이 필리프라는 사람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왕의 품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왕의 대접을 받으려면 왕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그는 기껏 사업가나 평민처럼 행세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는 루이 필리프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사도베드로는 말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아보려면, 제일 먼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 생각이나 내 행동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결국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영향력과 어떤 가치를 지녔고,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나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염려하거나 그곳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소금이 나오고 빛이 나옵니다.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였고, 14절에서는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님이 우리를 가리켜 천국의 보배나 면류관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세상과 분리해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세상과 연관된 존재로 그것도 세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가장 중요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는 사명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금 노릇을 하지 못하고,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13절에 기록된 대로, 버림받고 밟힐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루이 필리프가 이 지구촌에서 불과 몇 몇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과 능력을 그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기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때 모든 잃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왕관을 쓰면 왕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보좌에 앉았으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그를 높이고 그에게 모든 권세와 능력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원래 교회는 세상을 염려하면서 이 문제 많은 세상을 가슴에 앉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 세상을 치유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처럼, 왕같은 제사장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신 사명을 완수한다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은혜와 넘치는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3.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금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맛을 내는 것과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요리에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향신료를 첨가해도 소금 없이는 요리가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냉동만 시키면 어떤 음식 재료도 부패를 방지하고 오랫동안 그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소금만이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소금은 환경과 조건을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만일 소금이 염분을 상실하여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면 누가 그 소금을 사용하겠습니까?
요즘 기름 값과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소금이 금이나 기름보다 더 소중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값이 싸고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금이나 기름 없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소금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헬라사회에서는 비유로 말하기를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곧 바보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빨리 천국 가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서의 주어진 기능과 사명을 감당할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4. 어떻게 해야 소금으로서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녹아지는 것입니다.
곧 자기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친구 목사님이 지진이 일어났던 동북부 지방을 다녀왔는데,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같은 교단 선교사님들이 피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숙식을 하면서 자신들도 주먹밥으로 연명하면서 재해 만난 사람들을 도왔는데, 그들의 현실이 너무 참혹스러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30여명이 모여 피난 생활하는데 정부에서 보내는 물자가 그곳에는 오지도 않고, 그의 자급자족의 수준이었다고 하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의 그 하루하루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는 말씀이 저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특히 일본 사람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니,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참상을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럴 때, 주님은 제자된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신의 녹이지 아니하고는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심같이 우리에게도 이 시대의 속죄제물이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5. 계속해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적당히 세상을 살다가 천국가면 그만인데, 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합니까?
주님의 먼저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 빛된 사명을 대신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유능한 사람도 더듬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비록 교회를 욕하고, 성도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긴다 할지라도, 십자가 없는 세상, 교회가 없는 동네, 하나님 백성이 없는 거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 빛을 감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더욱 잘 비취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5절의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한」다고 한 것은, 타고 다니는 말이 아니라 곡물의 양을 가늠하는 됫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 말은 약 9리터의 곡물을 담을 수 있는 됫박으로 「모디우스」라고 부르는데, 만일 등불을 켜서 이 됫박 아래에 감춘다면 등불은 곧 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대를 높게 만들어 등불을 그 위에 둔다면 사방으로 많은 빛을 비추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빛의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6. 주님이 성도들을 세상의 빛으로 표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세상에서 숨어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본의 기독교가 1549년에 들어왔지만,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가꾸레 기리시단(숨은 크리스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일본 땅에서 기독교인은 박해를 피하여 숨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는 이름뿐인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빛은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의 박해가 극심했던 시대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여러 방법으로 드러내면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어 사는 그리스도인은 빛을 잃은 존재입니다.
이미 가치를 잃고 아무런 힘도 없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적 가치는 자신이 소유한 생명의 빛, 사랑의 빛을 사람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낼 때 그것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감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드러내기 위해 잠시 잠깐 전략적으로 감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받은바 구원의 은혜를 간증하고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기쁨을 드러낼 때, 그 가운데서 구원의 능력과 새롭게 되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우리 자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낼수록 세상은 점점 밝아지고, 빛으로 드러난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한 평생을 살면서 남을 위해서 한 번도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녹아진 적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이 전도 한 번 못하고, 감동도 주지 못한다면 그 신앙과 삶은 가치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치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때에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 단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소금으로, 빛으로서 세상에 온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낼 때 주어진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비출 때 빛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어떤 물질과 능력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의 소금으로 빛으로 보내셨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만이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 이 민족은 하나님 자녀된 우리 손에 그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세상을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한다면, 일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존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온 세상을 덮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 앞에 소금으로 빛으로 드러낸다면,

첫째는 남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고,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셋째는 우리의 영원한 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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