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3.나를 따르라(마태복음 4:18-25)
[성경본문] 마태복음4:18-25개역개정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4:18-25/2011.4.3.오전)
1. 일본의 청산학원에 다까하시 라는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68세에 폐암에 걸려 소천하기 까지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며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 한 편이 그 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나를 도와 준 여자가 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해 준 자식이 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여러 가지로 염려해 준 형제자매가 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라 와준 학생들이 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성실한 교제를 나눈 친구들이 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아니 잠깐 기다려봐,
못난 인생이란 사람의 판단일 뿐,
이런 사람이라도 주님은 부르셔서 사용해 주셨다.
일본이 패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온 은사요 사명인 줄 알고, 그것이 주님의 제자로서의 가야 할 자신의 길인 줄 알고, 헌신적으로 사역하다 주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고, 이어서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하신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면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가운데「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주님이 늘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백성들이 고통하며 방황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생명과 진리의 길로 바르게 인도해 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착취하고, 내일에 대한 소망의 싹을 잘라 버리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더욱 무겁게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이 사람들을 고통에서 건져 줄 자가 없다는 사실에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어촌구석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어촌의 연약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훈련을 통해 당신을 닮은 제자들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과거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그 부름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나를 따라 오너라」는 주님의 부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3. 첫째는 대가를 치룰 각오를 하고 따라 가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희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답답하고 억울한 생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즐거워해도, 내가 남들 때문에 희생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보다 내가 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가진 소유보다 내 것이 더 가치가 있고, 내 인생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했고, 세베대의 아들들도「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란, 버림의 희생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지금까지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것들, 오랜 세월동안 몸담았던 곳을 버리고 기약도 없이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고, 그들은 곧 모든 것을 버려두고 좇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버리고 간 이 모든 것을 나중에 베드로는 표현하기를,「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마19:27)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배나 그물이나 부친만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 오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창12:1)것과 같은 순종이요 희생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란 다름아닌 자신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 풍성한 생명을 거두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는, 즉시 반응하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20절과 22절에 「곧」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시간의 공백이나 주저함이나 지체함이 없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많은 손해와 오해며 고통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어느 부자 청년은 소유의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실망하고 근심하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마19:20-22).
이 사람은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큰 희생 없이도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의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생각이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시간이 많아도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물이 많거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와 천국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자 할 때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우리의 손에 잡고 있는 일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사회는 일 중심의 사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일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회사가고 돈 벌이 하는 일에는 생명을 걸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걸지 않습니다.
주일 한 번 빼먹는 것은 쉽지만 회사 하루 쉬거나 가게 문을 닫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타산을 따지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5. 여기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배와 그물, 그리고 부친을「버려두고」라는 것은 더 이상 이런 것들로 인하여 메이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버림이 아니라 어떤 권리니 이익이나 물질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님이 부르실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베드로 형제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 부친과 더불어 그물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일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을 때, 이 일을 끝내고 하자고 말합니다.
요즘은 부모가 자식에게 부탁해도 하던 일을 도중에 멈추고 일어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는 도중에 부름을 받은 것이고, 그리고 그 일을 끝내지 못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일어나 따라 간 것입니다.
원만한 교회 마다 그 교회의 형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정말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마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제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고 하여도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일어나 따라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함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6. 셋째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절대로 그냥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13:1절에 보면,「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고 따라 오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고, 무엇을 주셨습니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말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택함받은 사명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름받아 따라 간다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다로 나간다고 해서 그물을 던져 베드로처럼 고기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고기 잡는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적어도 바다가 어떤 곳인줄 알아야 하고, 고기들의 생태를 알아야 하고, 배나 그물 같은 도구가 필요하고, 그리고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사람 낚는 어부, 즉 전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까?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제일 먼저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충만한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분의 겸손과 온유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7. 사람들의 잠깐의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그 반복된 행동이 습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습관 속에 인격이 형성되고, 마침내 그 사람의 일생과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일생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주님의 모습을 통해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훈련에는 당연히 희생이 따라오며, 그 희생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로 변화되고, 밑에 있던 사람이 위로 올라가고, 늘 부족함을 느끼던 사람이 남을 도와주게 되고,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댓가를 치루고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보다 주님의 부르심을 우선으로 하고, 일어설 때 그래서 많은 것들이 끊어지고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간다면, 주님은 우리의 일생은 물론이고 영원까지 책임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시면서,「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눅12:29-30)고 하셨습니다.
8. 그래서 부름받은 사명자들이 빈손으로 나아가도 능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장래에 대한 염려를 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책임을 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미래가 완벽하게 준비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잠시 세상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믿음으로 고난 받기를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리심에 응답하여 광야로 나아갔지만 하나님은 그의 평생 120년간을 동행하시며 축복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더러운 귀신을 좇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마10:1)주시면서,「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7-8)고 하셨습니다.
그저 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제자들의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9. 이러한 부름에 응답하여 나가는 제자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확신입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 나를 향해 오라고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경주를 하다가 도중에 탈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가면서 함께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제자훈련을 받고,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올 때 전부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따라 오라고 부르시는 그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라면 십자가에서 죽기 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되 울면서라도 기어서라도 마지막 까지 따라 가는 그 사람이 참 제자인 줄 믿습니다.
이 땅에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없어 탄식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향해,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이 부르심에 즉시 일어나 따라간다면, 우리가 그 분을 따라감으로 치러야 할 희생이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사,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세상은 변화되고,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큰 구원의 역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