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13.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1-11)
[성경본문] 마태복음4:1-11개역개정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의 시험(마태복음4:1-11/2011.2.13.오전)
1. 재일교포 출신으로 동경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강상중씨는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강교수 자신도 10대에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절을 보내면서 고통했지만, 친구를 통해서 건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얻는 다는 것은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고,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자신의 껍질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삶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가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시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인생이란 끊임없이 시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지금 예배드리는 중에도 시험은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시는 중에 마귀에게서 3번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노출되고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빠졌을 때, 왜 인생에 시험이 오는가를 생각합니다.
2. 과연 시험이 없는 삶은 없고, 시험 없이는 인생이 살아갈 수는 없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흔히 시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신앙심이 연약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시험 당하셨습니까?
그것도 연속으로 3번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시험받으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떨어져도 시험에는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험 당하는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아무리 어렵고 무서운 시험을 당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그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시험거리가 아니라 그 시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서 시험은 내게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부 하나님의「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은 후에 곧장 광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중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험이 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시험은 영적 전쟁이요, 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면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영박물관에서 본 돌에 새긴 앗수르 사람들의 벽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에 이긴 그들이 포로들을 잡아서 무엇하는 줄 아십니까?
두 사람이 포로의 다리 한쪽씩을 잡아서 골프채로 공을 치듯이 그렇게 돌벽에 치는 것입니다.
그 무참하고 끔찍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말하기를 전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시험 자체를 피할 길은 없지만, 일단 시험은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지만, 일단 시험에 지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시험거리가 있지만, 은혜 받고, 축복을 받고, 성공하고, 능력 받은 후에도 반드시 시험은 우리를 찾아 온다는 사실입니다.
창15: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10년이나 기다렸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증거를 보여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아브라함이 심한 피곤과 두려움 중에 있을 때, 쪼갠 짐승의 고기 사이로 하나님의 불이 지나감을 증거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증거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예상치도 못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부인 사라에게 억지로 밀려 여종과 동침하게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종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입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중동의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4.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850대 1의 영적인 싸움을 통해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3년 반 동안의 가뭄에 큰비를 내렸지만, 나중에는 큰 승리 후에 오는 더 큰 좌절과 낙심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받으실 때의 영광과 큰 은혜를 체험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만나셨습니다.
이것이 육신을 가진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합니까?
그리고 이런 시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은 없다는 말입니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광야라는 곳이 얼마나 불편한 곳입니까?
뿐만 아니라 광야라는 곳은 죽음을 연상하는 고통의 땅이요 두려운 곳입니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곳이 광야요,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에덴동산은 지상최고의 삶을 누리는 천국과 같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시험에 떨어졌고, 반대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태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을 예수님의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험에 이기고 지는 것과, 인생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의 환경은 어떠하셨습니까?
친히 말씀하신대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의 어려운 형편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그리고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 빠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얼마든지 마귀의 시험에 승리할 수 있고,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주리셨습니다.
광야라는 어려운 환경에 더하여 이제는 굶주림이라는 극한 환경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도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누셨고, 이 굶주림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셨습니다.
굶주림을 통하여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육신의 연약함이 어떤 것인지 깊이 체험하셨습니다.
주님은 굶주림 속에서도 기도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시험한 자가 마귀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시험에 넘어뜨리는 자도 마귀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마귀에 대한 극단적인 2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마귀는 없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든지 귀신, 마귀를 결부시키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마귀, 원수, 사탄, 귀신, 흑암의 세력은 실존하고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상과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으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까지 미혹하며,
아담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이르도록 시험거리를 가지고 늘 우리 곁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하여 도전하다가 타락하여 쫓겨난 천사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완전히 패배하였고, 장차는 영원한 불 못에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들어갈 존재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 마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성령 받지 전에는 그 존재를 알수 없으며, 마귀 또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중요한 것은 성도가 은혜의 삶을 살수록 마귀가 찾아와서 시험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대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귀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왜? 이미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정확한 때를 잘 알아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면 넘어질 것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즉 기다렸다가 그 육신이 가장 힘들고 연약해 지셨을 때에 공격해 왔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가장 연약해 졌을 때, 가장 배고플 때, 가장 혈기가 올라갔을 때, 제일 어려울 때를 노려서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고 했습니다.
마귀의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고통하게 만들고 늘 시험거리로 인하여 고민하고 괴로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가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주님의 뜻을 다라 살면, 주님은 그때마다 그런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도,「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약1:2-3)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의 시험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어떤 자세로 시험을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더욱 강한 자로 만드는 줄 믿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로 하나님 자녀된 자의 확신과 능력을 소유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온갖 시험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넘치게 받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7.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최악의 사건을 통하여 최선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죽이고, 파괴하고, 고통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만난 이 모든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받을 때,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신 후에 3가지의 시험을 당하셨지만,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죄도 없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인내하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당하셨기 때문에 자기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자의 어려움을 아시고 끝까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사 승리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시험은 지금 당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좋은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는 물러 설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에는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시고 주님과 함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