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2.동방박사들의 경배(마태복음 2:1-12)
[성경본문] 마태복음2:1-12개역개정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들의 경배(마태복음 2:1-12/2010.12.12.오전)
1.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너무 작고 빛이 약하여 가물가물하는 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별들 중에 대단히 큰 별들이 많습니다.
직경이 16억km로 태양의 1,220배 크기의 별이 있으며, 1963년에 발견된 퀘이사라는 별은 별 중에 가장 밝고, 그러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별로, 그 규모는 은하계에 있는 천억 개가 넘는 별들을 다 합친 것의 200배나 더 밝은 빛을 낸다고 합니다. 무려 지구에서 느끼는 태양보다 1만 배가 더 밝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별들이 우리의 눈에는 가물가물하는가?
지구에서 무려 10억 광년의 거리에 떨어져 있고 지금도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별들을 보고 연구하다가 인류의 구세주인 아기 예수의 탄생지로 인도함을 받고, 그에게 경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동방에서 온 박사들입니다.
우리는 2010년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온 교인들이 함께 성경말씀을 쓰고 읽는 가운데, 말씀 속에서 성탄절의 바른 의미를 깨달아, 우리 모두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만을 경배하고 예수님만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참된 성탄절의 계절이 되고자 합니다.
2. 이들이 본문2절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는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탄생이, 온 세상의 온 인류를 다스리는 왕 중의 왕으로서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빌라도의 질문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네 말이 옳도다」(마27:11,요18:33) 하심으로 스스로 자신이 왕되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천하 만민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란 말은 그리스도와 축제의 뜻을 가진 마스(Mass)의 복합어로, 이는 그리스도가 주인공인 그리스도만의 축제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의 성탄절은(교회를 포함하여)그리스도가 없는 축제,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상업적이고 육체의 쾌락을 만끽하려는 타락한 축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성탄절에 사용할 목적으로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림이 아기 예수님의 그림이 아니라 산타클로스였습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얼마 후에 보니, 유명 백화점의 윈도우를 장식한 거대한 그림이 술취한 산타의 모습이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스페인의 세인트 니콜라스가 자기의 생일인 12월 5일에 어린이들에게 자기 생일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에서 유래한 것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서양세계는 바겐세일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것이 더욱 성탄절을 상업화하는데 공헌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속사회가 어떤 성탄절을 보내던지 주님의 교회는 메시야 탄생이라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의 시작을 기념하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크리스마스 본질의 축하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내용은 예수라는 이 왕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10)이라는 사실입니다.
3. 또한 그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평강의 왕」(사9:6)이라 하였고, 미리 예언하기를, 마1:21절에,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 하였습니다.
인류에 많은 왕과 영웅이 있었으나 아무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참된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어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 수상자인 중공의 류사오보는 물론, 그와 관계된 가족, 친척, 친지들까지 참석하지 못하고 빈자리가 됨으로 아직도 인류는 참된 평화를 얻지 못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그 어떤 종교와 사상과 선행, 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이 아기 예수만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그 분만이 우리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또한 그는 축복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22: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의 이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육신의 복과 영혼의 복을 겸하여 주셨고, 우리는 금세의 복과 내세의 영원한 복까지 그의 약속을 따라 얻은 줄 믿습니다.
4. 문제는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사건입니다.
박사들이 예수 탄생의 장소를 찾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 경배란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스쿠네오로 이는 절한다, 엎드리다, 가치를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사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왕 중의 왕 되신 예수님께 절하고, 엎드리고, 그에게 보물을 드림으로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기 위함입니다.
동방에서 아기 예수님의 강탄을 알고 찾아온 박사들이 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성탄의 목적들이 분명하게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은 박사들의 길을 인도하심으로 초자연적인 도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동방에서 별을 보게 하였고, 그 별의 인도를 받게 하였고, 그 별로 하여금 아기 있는 곳을 지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박사들의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의 감동하심은, 처음에는 그 의도를 잘 알지 못해 의심할 수도 있고, 내 마음과 내 생각과 상반됨으로 때로는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싹틀 수도 있지만, 마침내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예배에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으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박사들이 고국에 돌아갈 때도, 다른 길로 가라는 특별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 아기 예수의 강탄을 축하하는 사람들은 내 생각이나 내 계획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깨달아, 가장 온전하고 가장 복된 길로 가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5. 무엇보다도 동방에서 온 이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렸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유는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황금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야말로 나의 참된 왕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정말 우리 모두의 왕이요, 내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한다면, 오늘 우리는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그분께 드림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황금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것이 왕 됨의 표시기 때문입니다.
왕은 자기 백성의 생명을 지키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며,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열어 가는데 선봉에 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그 사람이 박사이든 양치기이든 남녀노소를 불분하고 예물이 필요한 것은 그가 나의 생명의 주인이요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유황을 예물로 드렸는데 이것은 예수가 대제사장되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몰약을 드렸는데, 이것은 장차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려 죽으시는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통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에 있으며,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탄생은 죄가 주는 모든 고통과 저주에서 나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렸으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리는 이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믿음으로 먼 여행길을 떠났고, 믿음으로 나아가며, 믿음으로 경배하고, 그 믿음으로 감사하고 무사히 본국에 돌아갔습니다.
6.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늘 내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연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로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향한 바른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는 우리의 왕으로 오셨고, 우리의 영원한 목자로 오셨고,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모든 죄와 모든 허물, 그리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적 고백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도 모든 사람들이 몰려 나와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찬양하며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며칠이 못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며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님이 나시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실만한 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자신들의 즐거움을 누리는 축제를 위해 만원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풍성한데, 정작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은 안데르센의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깥에 홀로 버려지고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인 예수님은 간곳이 없고, 술 취한 산타클로스만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7. 주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 빈방을 찾고 계십니다.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말하기를, 지금 세계는 두 세계관이 서로 투쟁하고 있다. 현대주의는 자연인을 소재로 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수립하고 자연을 소재로 인간 자신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경건하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을 완수하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였고, 귀한 예물을 드려 감사를 돌렸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참 왕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은 나의 가장 귀한 것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계절입니다.
이 드림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고백되어지고, 이 드림을 통해 우리의 감사가 열납되는 날입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드림의 목적도 물질의 차원을 넘어 내 심령의 지성소, 내 인격과 삶의 지성소를 그의 거룩한 탄생의 자리로 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경배라는 이 예배를 통해 우리의 왕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예물 드림을 통해 더욱 성숙된 신앙이 고백되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