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1.내가 누구인가를 알면(벧전2:9-10)
[성경본문] 베드로전서2:9-10개역개정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벧전2:9-10/2010.11.21.추수감사절)
1. 인류에게 가장 근본적이며 동시에 영원한 미해결로 남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나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수학이나 과학의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답이 나오지만,「나는 누구인가」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답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질문이요 숙제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 땅에서 실존하는 이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미해결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살아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할 것이요, 이 질문에 대한 바른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을 향한 질문만이 아닙니다.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운명의 결정권을 가진 왕궁에서도「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왕자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첫걸음이라 합니다.
왕궁에서 태어난 자로서 주어진 특권이 무엇이고 받은 능력과 권세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올바르고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임금은 폭군이나 무능한 왕이 되어 온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것이나,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진 임금은 백성을 위해 살면서 성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도「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한다면, 신앙생활은 힘들고, 결국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메여 시달리는 헛된 삶을 살게 될 뿐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오직 너희는」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야말로, 서두에서 밝힌 대로의「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며 답입니다. 그 답이 무엇입니까? 「택하신 족속이요」,「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기 전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부터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동시에「왕 같은 제사장들」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위에 특별한 능력을 더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왕의 제사장, 곧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이한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축복하시며 영원한 영광의 유업을 잇게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고 자녀 삼으신 것을 말합니다.
왕을 위해 일하면 일하는 사람은 왕이 아니라도 왕권의 능력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도와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고 하였습니다.
3. 그러나 우리가 처음부터 그런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9절에 보면,「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었다고 하였고, 10절에는,「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하였으니, 우리에게 문제 있는 과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과거였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고통하던 삶이 있었습니다.
죄의 자녀로 어두움의 사람들로 영원한 사망과 저주에 묶였던 삶이었습니다.
유럽에 어느 작은 왕국에 자비가 풍성한 임금이 살았는데 후사가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백성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잠행을 나갔다가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기생이 버렸는지, 술주정뱅이의 자녀인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버려두면 갓난아이가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궁으로 데려다 왕자로 키웠는데 자랄수록 늠름하고 기풍과 지혜가 있습니다.
나중에는 왕과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임금의 보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자격도 없고, 도리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특권과 사명과 은총 이전에, 내가 누구였다는 사실을 먼저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출생, 즉 죄 가운데서 출생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안다면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안다면 하나님의 매일 베푸시는 그 사랑에 감사할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왕같은 제사장의 사명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말하기를,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된 우리와의 관계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감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4. 이 땅의 삶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릴 영원한 천국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눈 깜빡 할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입니다.
이런 짧은 하루살이 보다 못한 인생들이 이 지상의 삶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이 지상의 삶을 천국처럼 살며 영원히 살 것처럼 애를 쓰는데, 불쌍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인생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잘 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도리어 허무한 인생을 깨닫고, 원하지 않는 고통과 슬픔과 후회 가운데 살 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를 더할 뿐이요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는 두 가지입니다.
속죄제사와 감사제사가 있습니다.
첫 번째의 속죄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완성하신 제사요, 둘째 번 제사인 감사 제사는 구원받은 감격을 가진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일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이 예배는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매 주일 마다 찬양과 기도와 헌물과 헌신으로 드려지는 이 감사 제사가 오늘의 우리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이 시간에 드려지는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 모든 감사 제사의 대표적인 제사입니다.
매주일 드리는 감사 제사 이상의 힘과 마음과 제물을 가지고 1년을 대표해서 드리는 감사제사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는 힘을 다하여 드려지는 넘치는 감사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5.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만 합니까?
감사는 피조물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당연한 반응의 결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만족을 주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런데 기쁨을 맛보는 것보다는 감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큰 만족을 주게 됩니다.
왜냐면 기쁨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며 동시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감사는 새롭고도 무한한 힘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감사를 낳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는 자의 감사는 하나님의 구속하신 은혜와 값없는 사랑과 은총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기 때문에, 이 감사를 반복하면 할수록 감사 속에서 넘치는 사랑과 더 많은 감사로 인하여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니 되는 일도 없고 오늘 일을 생각하니 짜증만 나는데, 가만히 보니 이 세상이 너무 많이 썩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에이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콱 망해 버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신문이요 하고 던져놓고 가는 배달부를 보니 그 사람은 죽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는 살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기사양반이 죽으면 출근하기 곤란하니 그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통순경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살고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전부 살아야 될 사람들뿐이고 결국 죽을 놈은 나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의 가슴속에서 진짜 감사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회복되니 망할 세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이고,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6. 이 추수감사절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더 많은 감사, 더 풍성하고 깊은 감사를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 와서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문을 닫고 목사 설교가 왜 저모양이냐? 남의 집 아이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하면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자세로 앉아 있으면, 내마음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면 마음은 더욱 답답하고 불평과 낙심과 근심속에서 한 주간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지 그렇지, 아멘 아멘 하면 마음에 만족을 얻게 되고,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로 인하여 마음은 행복을 얻게 되고, 한 주간 동안 위로부터 내리는 힘과 은혜를 체험하여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불효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왜 이래요? 아빠 엄마가 틀렸어요!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요? 하면 부모의 마음도 아프고 자기 마음도 괴로운 법입니다.
그래서 나가서 술이나 처마시고, 기분 나쁘면 싸움질도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나가서 또 사고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부모님도 기뻐하고 제 마음도 기쁜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어디가서 무엇을 해도 안심하고 기뻐하며, 본인도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기쁘고,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자신감이 생기니 당연히 용기가 생기고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7. 아직 2010년이 40일이나 남았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수입의 전부를 다 드린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1년 중에 남은 십분의 일이지만 감사로 남은 날들을 채운다면 우리는 2010년이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한해가 될 줄 믿습니다.
또한 2011년은 소망 가운데 확실한 성공을 갖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가운데 넘쳐 나는 감사의 고백은, 나를 위해 피흘려 죽어 주신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더욱 값지고 의미있게 만드는 줄 믿습니다.
이 넘치는 감사의 고백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들을 더욱 값지게 만들고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참된 마음으로 감사하도록 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며 누구 때문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안다면, 제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