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7.성공하는 사람(민수기14:24)
[성경본문] 민수기14:24개역개정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성공하는 사람(민수기14:24/2009.6.7.오전)
1.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가 사는 이 일본 땅만 해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 하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시까가 사건이라고, 1990년 5월, 토치기껜의 아시까가시에서 4살 된 여자 아이가 살해되어 개천에 버려진 것을 경찰이 어린아이의 옷에 묻은 채액을 DNA 조사한 결과, 당시 유치원 버스 운전기사인 카가야와 일치하여 2000년에 최고재판소에서 무기징역에 선고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 DNA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결과가 나왔고, 카가야는 17년 만에 무죄로 석방이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부친이 사망하고, 본인은 45살에 옥에 갇혀 이제 62살에 석방이 되었으니, 부친의 생명은 물론이고, 17년 동안 무고하게 치룬 고난의 세월과 청춘을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브라질을 출발하여 파리로 가던 에어 프랑스가 공중에서 사고를 만나 228명 전원이 희생당한 일이며, 강도 만나 빼앗기고 죽음을 당하거나, 갑자기 쓰러져 건강을 잃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며, 이렇게 세상에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나와는 전연 상관이 없는 일로 인하여 그것도 억울하게 고난을 받으며, 청춘과 인생을 마치 강도만난 것처럼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특별히 이방 땅에서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원망 불평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아름답고 복된 삶인 줄 믿습니다.
2.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름도 성도, 가문도,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남녀의 구분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흔히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출생하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받고 훌륭하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본문의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출생은 좋은 집안도 아니고, 잘 사는 가정도 아니고, 갈렙이라는 이름을 보면 출생이 미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이 중동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요, 믿음의 후손들에게는 훌륭한 신앙과 인격의 감화를 주고 있습니다.
도덕과 인격이 땅에 떨어진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양심이 짓밟히며, 사람들의 젱체성이 흔들리며, 신실한 신앙심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시대에, 무엇이 성공이며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축복의 사람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3. 갈렙은 선택받은 일꾼이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점령을 위해 12지파의 대표를 뽑아 정탐꾼으로 세웠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들어갈 지형과 산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그리고 그 땅이 기름진 땅인지 박토인지 기후는 어떤지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갈렙은 선택받은 일꾼으로 유다지파의 대표로 뽑혔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쓰임 받는 일꾼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쓸모없는 일꾼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지닌 주간에도 20대 청년이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향해 아무런 관계도 없는 50대 아줌마를 껴안고 뛰어 들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범죄가 어디서 출발합니까?
나는 버림받았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이 갈렙처럼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부름 받은, 택함 받은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이 보다 더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일은 없습니다.
권사와 집사로, 권찰로, 교사와 성가대로, 교회 일에 내 손길이 닿는다는 이 자체가 얼마나 복된 사건이며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43: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하였고, 주님도 제자들을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17)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들처럼 택함 받고, 내 삶과 내 시간이며 나의 물질을, 인정받는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고 있다는 이 사실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인 줄 믿습니다.
4. 또한 갈렙은 믿음의 보고자였습니다.
민13:25절 이하를 보면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10명은 말하기를, 그곳 거민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낙 자손들로 장대한 사람들이요, 그 땅은 험악한 땅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무서운 땅이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는 그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 꼭 메뚜기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 소리에 온 이스라엘은 낙심과 공포와 실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40일을 고생하며 생명을 걸고 정탐한 일을 통해 온 민족에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없는 보고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람들의 결론은 이제 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외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일꾼인 여호수와와 갈렙이 일어서서 보고합니다.
그들의 보고는 10명의 정탐꾼들과 달랐습니다.
그 땅은 우리가 볼 때 너무 아름다운 땅이요 비록 그들이 강대하고 견고할지라도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주신 땅이요 그러므로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했습니다.
5. 무엇이 문제입니까?
12명이 함께 소명 받아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지역을 정탐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결과가 전연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0명은 불신앙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의심함으로 불가능한 일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록 어려운 환경과 조건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니 반드시 얻으리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짐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보인 것입니다.
같은 것을 체험하고도 믿음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에서 보고 판단함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까지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간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보고서를 내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의 생각은, 세계경제가 어렵다, 그래서 나도 어렵고 모든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어려울 때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전적으로, 지혜롭게 자신들의 사업을 펼쳐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고백대로 역사 하시고 갚으시는 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앙의 말은 이미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오며, 그것들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탓하고, 가정환경이나 주어진 형편을 탓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모든 이기고,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도리어 축복으로 가져오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일꾼이라고, 소명을 받았다고 다 성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소명과 목적을 위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승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믿음의 사람인 갈렙처럼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보지 말고,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귀한 소명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늘 긍정적이고 소망 넘치는 보고서를 내는 그런 축복의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6. 갈렙은 겸손한 협력자였습니다.
친구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고,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되었을 때, 갈렙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모든 예의를 갖추고 모세처럼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받들고, 조금도 질투나 경쟁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가능합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함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군중 앞에서 과거의 친구요 동료였던 여호수아에게 축복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그스틴에게 신앙의 첫째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역시 겸손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어그스틴은 세 번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제자라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실 때,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한 삶을 사시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의 그 겸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7. 갈렙은 비록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는 못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신앙과 가장 아름다운 인격을 소유했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기쁨 마음으로 충성을 다함으로, 여호수아를 더욱 더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목동 출신이고, 요나단은 사울 왕의 후계자인 왕자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은 생명을 주고받을 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다윗의 신앙과 인격을 본 요나단은, 이 목동출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부친 사울의 눈을 피해 다윗을 돕고 그 생명을 구해줍니다.
이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명에 의한 일인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소명을 아는 자는 교만하거나 분쟁하거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물은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풍성함 같이 우리의 인격도 겸손하여 낮추는 자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성공하는 줄 믿습니다.
8. 갈렙은 적극적인 축복의 소유자였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이고 불 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서 죽이려 할 때, 하나님은 친히 30절에,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예정된 축복도 빼앗깁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지도자를 향한 대적하는 마음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애급에서 출발한 반항적이고 불신앙적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다시 말해서 고난의 행군을 통하여서도 결코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태어났고, 광야라는 고난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언약을 바라보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성공은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이나 환경이나, 자신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오는 줄 믿습니다.
9. 찬송가도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예수 믿는 믿음이 온 세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세상에 오셔서 마굿간에서 출생하셨고, 머리 둘 곳도 없이 33년의 생애를 사시면서, 늘 그분의 주변에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 대적하는 원수들이 따라 다니면서 주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의 약속을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성공하고 100배의 축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교회가 25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자녀들인 새로오는 세대로 이어가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영육간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얼마 후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설 것인데, 그 때 우리는 오고오는 후손들에게도 믿음의 좋은 보고서를 남기고, 주님 앞에서 영원히 자랑감이 되는 성공과 축복의 보고서를 남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