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15간계에 속지말라(고린도후서 11:1-15)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1:1-15개역개정
1.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간계에 속지말라(고린도후서 11:1-15/2010.8.15오전)
1. 고린도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바울이 지나치도록 고린도교회, 혹은 고린도교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거짓된 교사들로 점령 당해 그들의 잘못된 교훈을 받아들여, 신앙의 아버지 같은 바울을 신랄하게 공격하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같은 사랑, 이 같은 수고가 악한 자들의 손에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던 고린도교회를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야말로 바울 자신의 인생의 자랑이요 큰 공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까?
고린도교회가 바울 자신의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요, 그가 양육한 신자들이기도 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 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베푸시는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합니다.
마치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자녀들이 보호를 받고 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언제 쯤이면 알게 됩니까?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 가정을 이루고 어린 자녀들을 출산하여 양육해 보면, 그 때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날 위해 쏟으셨던 그 사랑을 나도 부모가 되어 내 자식에게 쏟아 붓는 그 때 가서야 그 부모의 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 안에서만 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받은 사랑과 그 은혜를 사도바울처럼 고린도교회라고 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 부을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남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입니까? 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모든 부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피곤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버렸을 때,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짓눌려 있을 때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이 8월 땡볕에 어린아이들을 안고 1시간 이상 씩 걸려 교회까지 나온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우리들, 이 속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질 것입니다.
3. 우리가 누굽니까?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입니까?
바울은 그 대답을 2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신부로 단장하여 예수님께 드리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혼인을 약속한 사이요,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에 대한 정절, 정조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을 낸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그 날까지 그 몸을 정결하게 하고, 아름다움으로 단장을 하고, 순결한 처녀로서 남편을 사모하도록, 바로 이 일을 위해 바울은 열심을 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열심」熱い思이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을 질투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자기의 자녀요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그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더나 사신 우상에게로 달려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넘칠수록 그들은 죄악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쏟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질투로 나타난 것입니다.
질투는 미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한「열심」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세우려 한 것입니다.
4.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면 뱀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 마음이 빼앗길 때, 하와가 뱀에게 유혹된 것처럼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배신하고 돌아서고 만 것입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을 유혹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자들을 유혹하여 아담과 하와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것처럼,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거짓교사들을 통해 정말 천사처럼, 하나님의 사자처럼 악마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외로울 때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가까운 형제처럼 가장하여 나타나 우리를 유혹합니다.
심지어 섭섭해 하거나 분노할 때 우리의 감정을 지지하면서 유혹합니다.
이러 때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마귀의 궤계를 도무지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마귀가 가지고 등장하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4절에 기록된대로,「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인 예수, 영, 복음인데 그 앞에 혹이 하나 씩 붙어 있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5.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바로 차별화입니다. 다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설교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을 신선하게 여기고, 이전에는 없었던 예배 방식이나 어떤 프로그램에 빠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다르다는 것 그것 한 가지가 사람의 감성을 엄청나게 자극합니다.
그래서 남다른 물건에 마음이 빼앗기고, 내 남편, 내 아내와는 다름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우리 목사님, 우리 교회와는 뭔가 다른 것에 그 영혼을 도적질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행4:12) 다고 하였고,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갈1:8)받는다고 하였고,「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히13:9)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이름을 빙자하고, 예수의 영으로 가장하며, 예수의 복음을 말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영혼을 노략질 하는 사단의 궤계일 뿐입니다.
이 다른 복음이 신학적으로 명백하게 이단성을 드러내는 것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분별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분명히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이 마치 복음인 것 처럼 교인들을 현혹하고 그들의 사고를 조종하는 것은 잘못된 복음입니다.
주님은 치료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든 몸이 신앙심이 부족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것처럼 매도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잘못된 복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인생의 죽고 사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성공과 실패, 병든 것과 치료받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이란「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사실을 믿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지식, 내 경험, 내 능력, 내 소유, 내 감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6. 그러므로 성도는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내게로 오는 수많은 영향력들과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만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내 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타당한 것인가를 말씀으로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거짓된 교사들로 인하여 그들이 전해 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바울을 버림으로 영적으로 위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그들의 의지와 결단과 행동에 뱀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격분하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아비가 준 것을 버리고 강도나 도적놈이나 사기꾼같은 그들이 전하는 잘못된 복음을 그렇게 쉽게 간단히 용납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웅변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적은 지식과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어리석은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이런 사기꾼 같은 교사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서 복음의 사도로 가장하여 그들의 환심을 사면서 바울을 공격한 것입니다.
7. 심지어 자급자족하며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바울의 이런 행위조차도 사도로서의 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공격합니다.
당연히 사도라면 사도의 권한이 있으며,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가 있는데 본인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사도가 아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것이 너무 감사했기 때문에 자급자족의 선교를 자원한 것입니다.
복음에게 빚진자라고 생각했기에 자급자족의 선교를 한 것입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와 권리를 사양하는 것이 죄가 됩니까?
바울은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이 애쓰면서 다른 전도자들이 받는 대우를 스스로 제한한 것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지나치게 예수를 사랑한 것이 죄가 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은 이렇게 단순한 꾐에도 쉽게 넘어가 바울을 공격하는 이단들의 한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바울이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교활동과 그의 생활을 위해 풍성하게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헌금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아니하고 고린도교회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궁핍함을 보고도 바울을 돕기는커녕 바울의 도움을 받으면서 바울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자급자족 전도는 공격받아야 할 구실이 아니라, 바울의 자랑이요 스스로 얻은 특권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입니다.
8. 마지막으로 바울은 교회 안에 들어와 활개 치는 거짓교사들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13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위해 일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며, 기꺼이 사단의 졸개노릇을 자청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단의 졸개들이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파선케 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가르침을 쉽게 용남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15절에「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졸개인 거짓 교사들은 물론이고, 여기에 속아 뇌화부동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고린도 교인들까지 그 행위대로 중대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여기「행위」라는 말은, 심판과 관련된 말입니다.
곧 하나님이 저들의 행위를 따라 엄하게 심판하시리라는 의미입니다.
고린도 교회 스스로 잘못 판단하여 받아들인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라고 하는 이 비진리와, 잘못 결정해서 내린 어리석은 행동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것은 매우 단호한 선언입니다.
9. 목회자가 젊었을 때는 모든 사건과 문제에 대한 명쾌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한 가지의 사건을 놓고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이 바깥에서 보면 우유부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이 감정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것인가?
지금 내가 내리고자 하는 이 결단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인가?
내가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혹은 장로교 목사로서 소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신앙의 여정에 비추어서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값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었고, 그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내 마음속에 뱀이 들어와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면 내 감정을 휘젓는 뱀의 유혹을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새것은 없습니다. 특히 복음에는 새것이나 남다른 것이 용납되어질 수 없습니다. 새것을 좋아하며 따라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이미 뱀의 간계에 걸린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주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 그대로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이 믿음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 지켜 내는 것이 우리가 받은 사명이요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더욱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며,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여 마구의 궤계를 물리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