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1.주님이 칭찬하는 사람(고린도후서 10:12-18)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0:12-18개역개정

12.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이 칭찬하는 사람(고린도후서 10:12-18/2010.8.1.오전)

1. 우리가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을 만나 고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 세운 예산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든가, 여행을 갔다가 질병이나 사고를 만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온다던가, 예상한 수입을 얻지 못하여 생활이 타격을 받는 것 등의 일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만 아니라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의 상황도 매우 어려운 출발이었습니다.
이미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갇혔었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의 극심한 방해로 쫓겨났었고, 아덴에서는 제대로 전도를 해 보지도 못하고 초장에 실패하고는 고린도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상황을 성경은 표현하기를,「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전2:3)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전긍긍했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참담한 실패와 더불어, 뛰어난 철학과 웅변으로 잘 포장된 이 헬라 사람들의 위풍당당함에 바울 자신은 눌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외모도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에는 힘이 있어도 말에 있어서는 연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고린도 지역의 사역은 주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주님의 몸된 고린도 교회를 잉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바울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 분의 능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들의 삶과 더불어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은혜인 줄 믿습니다.

2. 문제는 바울이 이 고린도교회를 안정시키고 또 다른 사역지로 나아간 이후에, 남들이 수고한 터 위에 자신들의 공로를 세우려는, 남의 수고한 열매를 자신들의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거짓 교사들이 이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들의 유익을 취하고 성도들을 자신들의 욕망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바울을 공격하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고린도 교회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과 동일합니다.
그들은 첫째로,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려면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고, 남의 공로를 깎아 내려야 합니다.
둘째로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땀과 눈물로 수고한 그곳에 무단 침입하여 바울이 수고한 모든 공로를 마치 자신들의 것처럼 여기고 분수 이상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랑을 통하여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모든 일에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나의 나 된 것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인 줄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거짓된 교리로 이끌고 그 교회의 모든 권리를 자신들의 소욕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일부 어리석은 교인들이 그들의 마수에 걸려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추종하며 그들의 종노릇을 하면서 바울을 향해 함께 비난하고 공격한 것입니다. 자신들을 자랑하는 그 어리석은 자랑에 감염되고 만 것입니다.

3. 그러나 비젼을 품고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면에 있어서 늘 앞서 가는 자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앞서가는 자들을 따라 잡으려고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있고 승리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그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자신의 행위나 과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든 수고를 당연한 일로 여겼고, 도리어 연약하고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1992년에 제가 스위스의 제네바를 방문하고는 요한 칼빈의 사역하던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그 분이 서서 강론하던 강단과 그 분이 앉았던 의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공동묘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크고 휼륭한 비석들과 묘가 있었고, 그 한 구석에 묘비도 없는 평장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곳이 무덤인지 조차 모를 정도였기에 후세 사람들이 조그만 돌을 깍아서 J.C라는 이니셜을 새겨 둠으로, 그 무덤이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칼빈의 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로마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 장본인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조차도 정말 요한 칼빈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살아생전에, 자신이 소천한 이후에 우상화되거나 그 어떤 명예도 얻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4. 오늘날 교회의 분쟁의 많은 원인은 이 고린도 교회를 침투한 거짓교사들처럼, 이 거짓교사들에게 현혹되어 그들의 종노릇하는 일부 어리석은 신자들처럼,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려는 소위 자화자찬의 신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랑은 결코 칭찬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자랑으로 인하여 자신의 무식함과 어리석음이 들어날 뿐입니다.
스스로를 자랑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못난 인생입니다.
남이 자랑해 주는 인생은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는 물론이요, 남들이 자랑해 주는 것도 사양해야만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칭찬해 주시는 그 날까지 우리는 참고 인내해야만 합니다.
마6:1절 이하에 보니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절에 보면,「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과 수고를 칭찬하고 자랑하면, 우리는 천국에서 받아야 할 상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고 착한 일일수록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4)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5. 그러므로 인생의 자랑이란 당장에는 좋아 보이지만 하는 것만큼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헤아리는 것만큼 내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빛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교회를 위해 수고를 하고 희생을 했다면 과연 얼마만큼 했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면 과연 얼마만큼 했습니까?
그 열매가 얼마나 됩니까? 주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합니까?
아마 내가 수고해서 얻은 것보다 더 많은 영혼들이, 내 잘못된 한 마디의 말에 시험 들고, 더 많은 영혼들이 나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자랑할 만 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무조건 적인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물론, 이 교회도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요즘은 서로 공로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 남편들이 부인에게 흔히 하는 말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 줄 알아? 입니다.
누구 덕에 먹고 살기는? 마누라 덕에 사는 것이지.
이 사람들, 돈 벌어오는 것만 최고인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 덕에, 아내는 남편 덕에 살고,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6. 지지난 주일 아침 NHK 뉴스에 「柴田とよ시바다 도요」 라고 하는 99살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92살에 취미로 하는 일본 무용을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할 수 없자 의기소침해 있을 때, 그 아들이 찾아와서 시를 쓰라고 했더니 7년 동안 쓴 시를 작년에 출판했다고 합니다. 책 제목이「좌절하지 말라くじけないで」입니다.
그녀의 시를 소개해 봅니다.
くじけないで
ねえ、不幸だなんて、溜め息をつかないで、
陽射しやそよ風はえこひいきしない、
夢は平等に見えれるのよ、私、辛いことがあったけれど、
生きていてよかった
あなたもくじけずに。
약해 지지마,
이봐, 불행이라고 한숨 짓지마,
햇살이나 산들바람은 서로 차별 하지 않아,
꿈은 누구나가 볼 수 있어,
나도 괴로웠던 일들이 있었지만,
살아 있어 다행이야, 너도 약해 지지마.

生きる力
九十九を越えた今、一日一日がとてもいとおしい、
頬を撫でる風、友からの電話、訪れてくる人たち、
それぞれが私に生きる力を与えてくれる。
삶의 힘
구십구를 넘긴 지금, 하루 하루가 너무 즐겁다.
뺨을 스치는 바람, 친구의 전화, 찾아오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희망이 없는 인생의 나이에도 남들에게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99살이라도 꿈이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구름이라도 타고 싶은 그런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99살의 인생이라도 100살을 넘어가는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남들과 함께 나누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7. 인간의 삶 자체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 생명을 위해서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왜냐면,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생명이 귀하면 남의 생명은 더욱 귀한 것이고,
내 수고가 귀한 것이면 남의 수고는 더 귀한 것인데, 어째서 남의 수고한 것을 빼돌리려 하고, 남의 귀한 삶과 사명을 함부로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이 자랑스러운 것만큼 다른 사람의 삶도 귀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맹점은, 모든 것을 내 시선에서 바라보고, 내 수준의 생각에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늘 보는 것만 보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바깥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런 상황에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니,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 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려움을 극복함으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넘치기를 원했고, 이 성장한 믿음을 통하여 복음이 아시아 전 지역 뿐만 아니라, 로마와 온 유럽, 저 서반아에 까지 이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시아와 유럽 전체를 복음화 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17절에,「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수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면서도, 정작 남의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것을 들어내었습니다.

8. 신앙과 삶은 하나님 앞에서 일치해야만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자랑이 있다면, 이 썩어질 육체나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주님의 자랑이 됩니까?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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