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25.우리가 가진 무기(고린도후서 10:1-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0:1-11개역개정
1.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우리가 가진 무기(고린도후서 10:1-11/2010.7.25.오전)
1. 1987년,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범인 김현희가 일본을 다녀갔습니다. 이 일로 한편에서는 말이 많고, 칙사 대접 혹은 여왕 같은 대접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마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대한민국의 은사를 받아 살아난 목숨이요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방일 내내 모든 일본의 언론들이 그녀를 보도할 때, 반드시 그녀의 이름 앞에는 「전 사형수」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붙여 주었고,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대항항공 폭파범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살았다고는 하나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그 천인공노할 범죄의 죄 짐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그 인생이 불쌍할 뿐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평안이 없는, 지치고 병든 마음을 가진 얼굴입니다.
국가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참 용서가 누릴 수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심으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육체적인 고통은 있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원한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줄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영원한 생명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싸워야 합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군인처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내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싸움이란 사람과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입니다.
불신앙과의 싸움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죄의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천치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신이란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무엇으로 그 사실을 믿고 오늘에 이르렀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제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사람하고 육체적인 싸움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회 안에서 시작된 문제입니다.
사도바울의 전도로 세워졌던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을 은혜 가운데 사랑으로 세우며 이끌었던 이 고린도 교회가 사도바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자신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면서도, 저들의 영적인 아버지며 스승인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요 사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구실을 가지고 바울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한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고 은혜를 받으면, 당장에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하며, 그래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골1:10절에 보면「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신」다고 하였고, 벧전2:2절에도「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미처 자라나기도 전에 교만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잘못된 것입니까?
바울이 없는 틈을 타고 이 고린도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과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영적인 싸움의 방향을 바꾸어 사람들과 싸움질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4. 바울은 자신에게 이런 육체적 싸움을 걸어온 사람들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
바울이 그들과 싸우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온유와 관용입니다.
온유는 당시 헬라인들의 중요한 사회적 덕목의 하나로, 마치 재판관이 피고인에 대하여 법에 정해진 대로만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온정을 베풀고 정상을 참작해 주는 관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관용이란 적절하다, 혹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공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온정이 있고, 공정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헬라인들의 사회적인 덕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삶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실 때 누구에게나 제한하지 아니하고 공평하게 하셨고, 원수들에게 위협과 고통을 받으셨을 때에도 같은 모습과 태도를 보여 주셨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 자체가 그분의 온유요 관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란 작은 일에도 불끈 성질을 내고, 아무것도 아닌 사사로운 것 하나에 열을 받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이 예수님을 본받은 사도바울처럼 자신에게 선의로 덕을 베푸는 자뿐만이 아니라, 잘못된 교사들에게 현혹되어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고린도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까지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5. 둘째는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3절에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하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위선자나 이중인격자로 취급하고, 세상 풍조에 맞추어 살아가는 아주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함에 대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바울은 교인들 앞에서는 매우 겸손한 척 하지만, 떠나 있으면 매우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이라는 인간은 세상에 영합하여 세상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요, 육체, 즉 이기심에 지배당한 사람이라는 등 온갖 못된 말로 그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고한 소리를 듣고, 근거도 없는 내용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 사람들이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고 수군거릴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대로, 즉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체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은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입니다.
몸의 가시로 불리는 질병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솔직히 인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육체가 아닌 성령을 따라 행하였고,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사모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명감에 넘친 나머지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에는 반드시 시험거리가 오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어떤 환란이나 공격을 받는다 하여도 죄 짓지 아니하고 낙심치 아니하고 도리어 악한 대적자들에게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6. 세 번째는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일부가 자신을 공격하며 걸어온 이 싸움에 대하여 분명한 자신의 태도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싸움의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자신은 육체대로, 육체적인 방법으로 싸우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우리의 싸우는 병기들」은「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습니다.
견고한 진이 무엇입니까?
헛되고 어리석은 세상적인 이론과, 복음에 불순종하는 자들의 교만한 마음을 말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 이런 견고한 진이 있다면 반드시 속히 피괴해야 할 대상입니다.
바울은 4절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자신의 의도를 밝히고 있는 것은, 믿음을 대적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이 악한 무리들은 반드시 징벌하여 교회 바깥으로 출교 시킬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러면 이 견고한 진은 어떻게 무너뜨려야 합니까?
여기 「강력」은 헬라어로 「뒤나타」로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강한 것, 혹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영적인 것들을 말하는데,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이론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외부로부터 도전해 오는 온갖 악한 능력들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 입입니다.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무엇으로 깨뜨릴 수 있습니까?
미혹에 빠져 어두워진 마음과 생각을 고치는 것은 빛 되신 말씀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삶을 구독하여 그것으로 묵상을 하고, 새벽기도도 하는데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은혜로운 말씀을 가까이 하면 그럴 리가 없는데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책은 가져다가 던져놓고 묵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현대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를,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값싼 은혜,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얻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자 하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요, 바른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우리의 신앙의 무기는 오직 말씀뿐입니다.
영적인 싸움의 병기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은 당연히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고, 그 말씀으로 영적 전쟁의 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 내 길의 빛」 (시119:105)이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히1:2)다고 했습니다.
바울은「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롬10:17)다고 했습니다.
8.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300명의 용사와 일어나 싸웠습니다.
그 300명으로 십삼만 오천명의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4-5절에서 분명한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에 따르고자 하는 순종이 무기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용사들은 칼과 창과 활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을 공격하던 불신앙의 세력들과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온유와 관용으로 무장한다면, 그 어떤 대적의 공격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이 말씀을 의지하고, 이 말씀에 나의 삶을 의탁하여 순종할 때,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