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8.약속을 받은 사람(고린도후서 7: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7:1개역개정
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약속을 받은 사람(고린도후서 7:1/2009.11.8.오전)
1. 데이비드 키네먼이 공동저자로 쓴,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 보고서인「언 크리스천」이란 책 속에는 말과 행동이 다른 크리스천, 상황파악이 잘 안되는 크리스천, 온실 속에 갇혀 있는 종교, 죄도 미워하고 죄인도 미워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18세에서 41세의 미국인 중에 6,000여만 명이 한 때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도 그 결정이 자기 인생에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은 불과 300만 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현대는 이미지 시대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그림이 좋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세상 젊은이들의 85%가 기독교인들은 위선적이 라고 하였고, 교회 안에 있는 젊은이들 중에 47%가 역시 같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우리와 삶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만난 실제적인 기독교인들의 삶은, 자신들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것입니다.
15%의 사람들만이 기독교인은 우리와 다르다고 답하였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가지고, 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왜 세상 사람들과는 구분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가, 또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 답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답을 얻고자 합니다.
2. 본문이 한 절만 있기 때문에 간단히 넘어가기 쉬운 것들이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말씀을 이 한 구절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받은 약속이 무엇입니까?
6:16-18절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는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됨으로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실 뿐 아니라, 16절에는 우리를 당신의 성전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에서 약속하신 언약으로, 신약에 와서 실현된 사건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며 동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신약시대와 와서 은혜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고, 실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생각할 때, 사랑의 하나님,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마는, 진정한 관계는 두려움에 있습니다.
왜냐면, 이 두려움이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3. 성경에는 이 두려움, 하나님을 향한 경외에 대하여 많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1:7).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더 많은 죄와 허물을 밤낮으로 더하면서도 조금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나 경외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롬3:18절에,「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우리가 두려움에 있어서 분명하게 다른 것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주어진 환경과 조건, 그리고 미래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일 일을 몰라도 하나님이 평탄하고 복 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고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명목상 크리스천들의 공통점이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속에 자리 잡은 그 죄가 생명의 빛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자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또한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 두 가지가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는 거룩해 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죄를 무서워한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애급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사람들, 그리고 종교적인 열심히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셉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의 준수한 용모에 팔려, 한 번만 동침하자고 했지만 번번이 그 요구를 뿌리쳤고, 결국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동행하였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란 곧 깨끗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위선적이고, 신앙과 생활이 다르다고 공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 첫걸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신 분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은 어떠했습니까?
우상 앞에서 그 제물을 먹었고, 우상숭배를 하였고, 이방인의 축제에 참여하여 함께 즐기며 죄가 주는 쾌락에 육체를 팔았습니다.
그들은 유행에 민감했습니다. 호색을 즐겼습니다.
시기와 분쟁과 방탕과, 술취함으로 자신의 삶을 육체가 원하는 대로 즐겼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영과 육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6.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룩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누는 것, 곧 분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분리됨으로, 나눠지는 것으로 우리의 성경,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점진적으로 성화의 단계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후서 6-7장의 문제입니다.
죄란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거짓말, 꾀부리는 것, 대강대강 하는 것, 우리가 생각할 때 이것 쯤이야 하지만, 죄는 바로 그곳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 가운데 빠져 고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더러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죄 가운데 그냥 방치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더러운 생각, 잘못된 계획들, 문제투성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믿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사면초가와 같다는 말입니다.
전부 우리를 더럽히려는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창기와 합하는 것은 육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영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부정한 생각과 계획들도 우리의 영과 육신을 더럽히는 것들입니다.
7.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우리를 자신의 성전을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집에 아버님이 계시면 함부로 못합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언행을 조심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 삼으셔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아는 자들은 언행을 조심합니다.
자신의 영과 육신을 죄악에서 지키려고 요셉처럼, 다니엘 처럼 조심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영과 육신이 근본적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과 죄 가운데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또다시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약에서 거룩함이란 단어는 무려 229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기오스」하면, 거룩함이라는 뜻이고,「하기아조」하면 거룩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함이란 일회적 완성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노력 가운데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라고 했으니, 주님의 형상을 닮을 때까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13절에 보면,「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절대 조건이 됩니다.
8. 신부는 신랑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고 그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가 은밀한 자리에 있을 때,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않을 때, 그 때에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남을 위식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위선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사람 앞에서는 물론 하나님 앞에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따라 자신을 거룩함으로 지키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주님이 받으신 그 영광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깨끗함을 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는 주님의 성전이 된 몸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할 때, 천국의 일꾼으로 귀하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거룩함, 바로 이것이야말로, 약속을 받은 자녀로서의 삶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