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13.지금이 어느 때인가(고린도후서6:1-2)

[성경본문] 고린도후서6:1-2개역개정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지금이 어느 때인가(고린도후서6:1-2/2009.9.13.오전)

1.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유명합니다. 그 내용의 7가지란, 주체성을 발휘하라,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라,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 상호 이익을 추구하라, 경청한 다음에 이해를 시켜라, 상승효과를 발휘하라, 자신을 연마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 오른 이 7가지의 성공의 법칙 중에서 시간 관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3번째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내용이 시간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과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린 결론은,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관리라는 것도 처음에는 정한 목표를 메모지에 기록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목표를 향해 자신의 가치기준과 일치가 되도록 매일 매일의 계획 수립과 최대의 이익을 가져 올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작성하는 치밀한 준비들이 오히려 스케줄에 얽매이게 만들었고, 결국 그 시간 관리가 자신을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불상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방법이 시간을 관리하기 보다는 먼저 우리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간 관리의 최대의 쟁점은「긴급성」과「중요성」에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최대의 관심사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때」라는 말씀과 더불어「지금은」을 두 번 이나 반복 강조하면서 때와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있으면, 이미 2천여 년 전에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을 강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2. 그러고 보면 성경은 때나, 시간에 관하여 매우 많은 분량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첫 장 첫 구절에서부터「태초」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으며, 계시록 마지막부분에도「속히 오리라」는 말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바울은 본문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의 중요성을 반복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이사야서 49장8절에 기록된 말씀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고 하시면서,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언약의 백성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했던 땅을 기업으로 주시며, 그들로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하게 할 것이며, 더위와 햇볕에 상하게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결코 우리의 문제들과 고통스러운 환경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 늘 도우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3. 이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것을 이루셨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땅 끝까지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곧 이 땅에 여호와의 구원과 그의 베푸시는 은혜가 충만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으며, 이방인이었던 우리들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복음은 전파되며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 1절에서,「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장난처럼, 농담처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1:3절 이하에 보면 주님의 비유가 나오는데, 장터의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그 시대의 문제점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곧, 함께 동무된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지 않으며, 장례를 만난 사람들처럼 곡을 하는 흉내를 내어도 함께 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응이 없는 것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낙심하거나 사역을 멈추고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교회 안에도 목회자는 열심히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교인들이 반응이 없습니다.
더 심각하는 것은, 소돔성에 거하던 롯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불과 유황으로 심판 받을 소돔성을 속히 떠나라고 전하자, 롯은 그 사실을 사위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를 농담으로 여긴 결과가 무엇입니까?
소돔성과 함께 죄악 중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켜「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의 속담에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 의식이 없는 사람, 관심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남들보다 먼저 구원으로 부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거하지 않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은혜가 세상에 충만할 때, 이때가 전도 할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가 가장 활발할 때, 이때가 기도 응답받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 구원받아야 하고, 지금 응답 받아야 하고, 지금 능력으로 역사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로「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神の協力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농담처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과 재산을 드려서라도 이 은혜, 이 구원의 기회를 사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사람들입니다.

5. 하루 자고 나서 내일 생각하고, 내일부터 일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나면 어제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납니까?
읽고 또 읽어도 은혜가 넘칩니까? 바로 그 때가 은혜 받는 기회입니다.
멈추어서는 않됩니다.
기도만 해도 눈물이 나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까? 절대로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바로 그 때가 은혜의 시간이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며,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사람들이 날 찾아오고 도움을 청하고,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 때는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가 분명합니다. 전도 왕이 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점점 어렵습니다.
불신 남편들의 전도기회를 놓친 사람들, 고생이 많습니다.
불신앙과 신본주의가 무엇이 다릅니까?
불신앙은 개인주의이고 인본주의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일도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착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본주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 놓치면 내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이것 놓치면 복 받을 기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만큼 절실합니다. 열심을 내기 마련입니다. 생명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먹어서 못한다고, 어떤 사람은 몸이 허약해서 못한다고 핑계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몸이 허약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70살에 전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7년 동안 지구를 무려 여덟 바퀴 돌면서 전도했습니다.
이 사람 하고 우리가 무엇이 다릅니까?
그는 때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지금 깨닫고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외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일꾼이요 동역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고 구원받은 것을 헛되이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후리꼬미(송금) 사기꾼들이 또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경찰들이, 은행이,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해도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고를 농담처럼 장난처럼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라」,「지금은」이 말은 긴급함을 알리는 말입니다.
더 이상 허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지금은 은혜와 구원의 시기이지만, 곧 그 은혜도 구원도 사라지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마25:10절의 말씀처럼 혼인잔치의 문이 닫히듯이 은혜의 문이 닫히고 구원의 문이 닫히고 교회의 문이 닫히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을 한 없이 부어 주시는 때입니다(요3:34).
지금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는 때입니다(눅3:6).
지금은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나타나고 있는 때입니다(행2:47).
바로 이때야말로 우리가 복음을 들고 일 할 때인 줄 믿습니다.

7. 중요한 사실은 도움이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응답이 있을 때 더욱 부르짖어야 합니다.
감동이 있을 때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라는 말씀은, 지금이 곧 일할 만한 때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고한 대로 열매가 있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세상에 전파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온 지구촌을 덮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보는 것처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 (사11:9)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지구촌의 교회들은 매일 구원 받는 자들의 수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림으로 이 지구촌에 풍성하게 가득찬 주님의 은혜의 바다 속에 우리 자신을 잠그고, 오직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부끄럼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동역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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