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12.새 언약의 일꾼(고린도후서3:1-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3:1-11개역개정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새 언약의 일꾼(고린도후서3:1-11/2009.7.12.오전)
1.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계속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권위있는 사람에게서 받은 파송장이나, 추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루살렘교회에서 준 어떤 권한도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런 문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이 해산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서 사역을 한 그 자체가 바로 바울의 사도성을 충분히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삯꾼 목자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권위있는 파송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한 생명을 위해 생명을 건 해산의 수고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교회 사랑과 성도들에게 쏟은 애정은 곧 그의 믿음과 능력은, 지상에 고린도 교회를 탄생하게 하였고, 그것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주님의 몸된 이 교회에서 각각 직분과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과연 이 직분은 누가 준 것이며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으며, 참된 우리의 임무는 과연 무엇입니까?
2. 첫째로 새언약의 일꾼은 그 기원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사도직분을 준 것은, 예루살렘 교회나, 사도권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혹은 어떤 선교단체가 아니라 직접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부르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권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직접 임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바울에게 어떤 남다른 능력이나 공적이나 배경이 있어서 그를 사도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을 따라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복음과 관련된 모든 직분은, 인간의 계획이나 어떤 지혜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첫 장을 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나옵니다.
진화론자들이 창조의 사실을 부인하고 공격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어떤 서류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것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롬1:20절에,「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문학계의 문장들은 그것을 쓴 사람들의 개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술계의 작품들도 그것을 만들고 그린 사람들의 기법이나 특징이 나타나듯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그것을 만드신 이, 곧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증명이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믿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그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3. 제가 아내를 데리고 다니려면 결혼사진이나 어떤 서류를 들고 다녀야 합니까?
아내는 남편인 제가 인정하고, 아내 또한 저의 아내된 것을 생활로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직분은 특별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것을 증명할 만한 외적인 요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님을 만나 주님으로부터 사도직과 사도의 능력을 받은 것이, 그의 열매인 고린도 교회와 그의 복음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관한 증거들은 세상이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시고, 성령이 감동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사람이나 그 어떤 조직이 직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시는 것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경험한 것은,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우려고 할 때, 뜻대로 안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조용히 넘어가면 나중에 반드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주님의 은혜에 특별히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받은 직분들이 내가 원해서 얻는 것이 아니요, 남들이 억지로 떠 맡겨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당신의 큰 뜻을 이루시고자 나를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이 주께 있고, 우리의 능력이 주께 있으며, 우리의 지혜와 능력과 은사와 받은 축복들이 모두 주께로부터 온 것인 줄 믿습니다.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이 큰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면서, 복음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4. 둘째로 새언약의 일꾼은 생명을 살리는 일꾼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있었고, 선지자와 성전을 섬기는 수많은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바울과 우리가 받은 이 직분은 구약시대의 그들이 받은 직분과는 전연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몬 9절에 보면, 구약시대의 직분은「정죄의 직분」이라고 했고, 6절에「의문은 죽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곧, 율법은 비록 그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는 할 수 있어도 그 죄를 이길 만한 능력은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의롭게도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율법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며, 모든 인생을 절망케 할 뿐입니다.
왜?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받고, 의인되기 때문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을 열심히 지킨다고 해도, 그 중에 한 가지만 어겨도 열심히 지킨 율법의 공로는 간곳이 없고, 잘못된 그 한 가지의 계명 때문에 인간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기록하기를「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 (롬3:20)라고 하였고, 그래서「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다 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5. 그러나 신약시대의 새 언약의 일꾼은「살리는」직분이라고 했습니다.
죄로 사형선고를 당한 죽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살리고 구원하고 치료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원수된 자들을 십자가로 화해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사도바울과 더불어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생명의 법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을 영혼도 살리게 하시고, 사망의 법에 사로잡힌 자들을 해방케 하시는 능력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정죄하는 대신에 용서를 선포하고,
죽음을 언도하는 대신에 생명을 주며,
썩을 육신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바라보는 영원한 소망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주님은 제자들에게「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주」(마10:1)셨고,「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 능력, 이 약속이 새언약의 일꾼된 우리에게도 임한 줄 믿습니다.
6.셋째로 새언약의 일꾼은 영원한 영광을 얻습니다.
7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영광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는 동안에 받은 영광으로, 그의 얼굴의 광채로 인하여 백성들이 모세를 바로 쳐다보지 못함으로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받은 그 영광이 어떤 영광입니까?
분명히 「없어질 영광」이라 했습니다.
잠시 있다가 곧 사라질 영광, 한 때의 순간적인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요 능력의 지도자가 받은 영광도 잠시 잠깐의 영광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영광들도 잠시 잠깐 있는 영광이며, 구약시대의 일꾼들에게 주셨던 영광도 그들의 직분이, 그들의 임무가 다하면 사라질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일꾼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영광이요 구약시대의 모든 일꾼들이 받은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원히 이어지는 영광이요, 미래에 갈수록 더 빛나는 영광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때에는 세상의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주신 줄 믿습니다.
7. 문제는 새 언약의 일꾼된 신약시대의 모든 일군들, 특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모든 영광, 이 모든 축복, 이 모든 능력이 어디서 왔습니까?
나의 공로입니까? 나의 능력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실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직분, 우리가 받은 이 능력, 우리가 받은 이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드려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대신 죽어주신 그 사랑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줄 믿습니다.
그 분의 속죄의 공로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늘 넘치는 주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능력 있는 삶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귀한 이 직분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에, 확신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세상이 흔들려도 더 큰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의 삶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과 고통에 사로잡힌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보내시고,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인류가 자유함을 얻고 영생을 얻게 하신 이 사실을 증거하도록, 바울처럼 오늘 21세기에 나를 부르신 그 주님께 우리의 일생을 드리는 새언약의 충성된 일꾼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