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5.고난 속의 위로(고린도후서1:1-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1-11개역개정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 속의 위로(고린도후서1:1-11/2009.1.25.오전)
1. 바울은 처음에는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이후에는 모든 사도들을 제치고 가장 크게 쓰임 받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입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과 은혜를 입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대적들과 가장 많은 미움과 환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과 갈등,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모든 길이 막힌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살 소망이 다 끊어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그토록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여전히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했습니까?
자국을 떠나 이방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몇 갑절의 어려움을 감수하지 아니하면 바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먹고사는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미래도 걱정해야 하고, 국가나 민족 간의 사소한 정치적 갈등에도 마음 고생을 해야하고, 그 위에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생을 크고 작은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 선 야곱의 고백이야말로 이방 땅 나그네의 설움과 고난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오늘 우리는 안팎으로 만난 환란과, 마음속에 숨어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나 우리나 다 같이 환란 만난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야곱의 고백대로 우리의 과거는 정말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어려움과 문제에도 잘 넘어지고 낙심하거나 쉽게 포기하는데, 어떻게 사도 바울은 그토록 어려운 환란 속에서도 잘 참아내었으며, 무엇이 그를 붙들어 주었고, 누가 그를 도와주었기에, 환란 속에서 기록한 그의 편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오면서 우리에게도 믿음과 소망을 더해 주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2. 믿음의 영웅들을 보는 우리의 생각은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나 세상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 연약한 육신으로 말미암아 당하신 고난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분은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약점과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슬프고, 힘들고, 많이 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에 올라가실 때에는 체력의 한계 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이 지고 가실 십자가도 구레네 시몬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성경은 바울도 우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특별한 것이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바울은 이기고 우리는 이길 수 없으며, 왜 바울은 고난을 넘었는데 우리는 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서도 자신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4절에 보면,「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 하였고, 계속해서「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우리는 다 같이 환란을 당하지만, 바울과 우리가 다른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고 환란과 고통에 빠지면 늘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눈앞의 하나님은 간 곳이 없고, 문제만 크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나 고통을 실제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은 내가 만난 문제나 고통보다 훨씬 더 작은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문제에 사로잡혀 온갖 고생을 다 한 후에 겨우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요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문제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고난 속에서도 넉넉히 위로하시는 하나님, 6절에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 9절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면 입을 닫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죽도록 고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8절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으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을 스스로 포기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살 직전까지 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상황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방비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바울은 9절에서 표현하기를,「사형선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생각과 마음 속에서는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스스로가 사형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고난은 있어도, 죽임 당하는 위협은 있어도 그 모든 것을 당연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도 극심한 상황 속에서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고, 살 소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끄럼 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4. 며칠전, 미국서 오신 친구 목사님 중에 심장 수술을 받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심장수술을 하면 미국에 가서 받았는데, 이번에는 일본의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하고, 동료들과 주위의 친구들에게 언제 어떤 수술을 받으니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병원에 들어갔는데, 생각 밖으로 수술이 쉽게 이루어져서 원래는 2차 수술까지 계획했는데 그것을 한꺼번에 다 하고, 간단히 끝나 다음날로 퇴원했습니다.
의사도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선교사님은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고 친구들이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열심히 전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수술인데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심장수술, 실패, 죽음이라는 두려움 보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넉넉히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물리치고 기적 같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거나 병들거나 실패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고난과 문제를 만나고도 입을 닫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자기 속에 일어났던 감정들조차 숨기지 아니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리면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본문 11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 고난 속에서도 감사가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난과 환란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드러내야 합니다.
죄도 드러내어 고백할 뿐만 아니라 고난도 드러내야 넘치는 위로와 감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문제 만나고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성도들이 환란과 고통속에 있을 때에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인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문제와 환란이 어떤 것이든지, 그 문제와 환란의 크기와 깊이에 관계없이 우리 하나님은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당한 문제와 환란은 각각 달랐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고난과 문제에서 한결같이 구원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모세와 다윗과 엘리야와 다니엘이 당한 문제는 달랐지만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도우심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9)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고 순종할 때 고난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난 당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6절에 보면「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라고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하여 또 다른 위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고난 당하면서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침묵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남들에게 위로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중보 기도의 체험을 맛보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는, 고난 당하는 자와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감사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6. 왜 사람들이 작은 어려움과 문제에도 잘 넘어지고 실패합니까?
모든 환란을 이기게 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안되면 자포자기하거나 아예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크고 작은 어떤 문제라도 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더욱 기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아직 영국에 있을 때, 로버트 하디 박사의 조수로 일하는데, 문제는 박사님이 월급 날을 자주 잊어 버려 곤란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테일러는 이 일을, 직접 박사님에게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월급날이 지나면 매일 박사님이 기억하여 지불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마침내 집세를 지불하는 날이 되어도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박사님이 월급을 기억해 내었지만 이미 모든 돈을 전부 은행에 입금한 뒤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난처한 테일러는 그래도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밤에 박사님이 직접 테일러의 집을 찾아와 말하기를, 환자 한 사람이 갑자기 와서 밀린 치료비를 주고 갔다고 하면서 잔돈이 없기 때문에 월급보다 더 많은 다음 달의 일부분까지 미리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7. 우리에게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위로가 있으며, 모든 문제와 환란을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낙심 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관계는 세상의 좋은 것을 나누거나, 돈이나 빌려 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생명과 능력과 소망을 나누는 관계요, 감사와 기쁨도 함께 하는 관계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신」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형통한 길을 가도록 하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