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25.행복한 사람(여호수아 11:21-23)

[성경본문] 여호수아11:21-23개역개정

21.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2.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23.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행복한 사람(여호수아 11:21-23/2008.5.25.오전)

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해 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더 불행한 경우를 만나고, 갈수록 어려움과 고생을 경험하면서 불행한 삶으로 한평생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행복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리켜 행복이라 할 수 있으며, 그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그리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만 많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 계속 잘되고 소원을 성취하는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육신이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 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개념과, 행복해지는 비결이 무엇이며, 그리고 성경에서 행복한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2. 첫째로, 행복한 사람이란 수고한 후에 그 수고한 결과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평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간 사람입니다.
젊어서는 하나님의 종인 모세의 시종이 되어서 섬겼고, 모세 이후의 시대에는 그의 후계자가 되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쟁의 일선에 서서 몸 바쳐 싸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쟁취한 사람입니다.
가나안 7부족에게서 빼앗을 땅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12지파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여, 마침내 모든 백성들과 더불어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가나안 땅의 정복을 위하여 몸바친 사람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그 결과,
1)하나님의 축복으로 원하는 모든 땅을 얻었습니다.
2)또한 마침내 전쟁을 쉬고 안식을 얻었습니다.
인간이 불행해지고 비참해 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중요한 원인 한 가지는, 내가 수고한 만큼의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내가 그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했는데도 그것을 몰라 줄 때에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다.
교인들도 목사가 몰라주면 섭섭해 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내가 평생을 수고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얻는 것이 없거나 부족할 때에는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3. 달란트 비유에서도 장사하는 말씀이 나오고, 야고보서에도 장사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가지고 손님을 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한 이미 번 돈을 가지고 다시 많은 것으로 투자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장사의 이익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투자한 만큼 그것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정말 수고한 만큼, 정성을 쏟은 만큼, 투자한 만큼의 결과가 주어진다면 그 장사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업을 통하여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한 종인 여호수아에게 주신 축복은 다름아닌 수고한대로 얻는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축복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수고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차별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원리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4.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가 원하는 행복, 내가 원하는 안식만큼 수고하거나 희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환경과 조건의 어려움이 어떤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우리가 수고한 만큼, 희생하는 만큼의 대가를 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학생들의 학교생활도 열심히 한 만큼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도, 내가 남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존경해야 합니다.
남을 인정하는 만큼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주는 법입니다.
사랑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사랑하십시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열매든지 잘 가꾸어야 좋은 열매가 나옵니다.
하나님도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수고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수고하고 희생하는 만큼의 결과를 누린다는 것을 잊고, 적은 수고와 노력, 얄팍한 희생으로 남들보다 적게 수고하고서도 더 많은 결과를 얻으려고 함으로, 원하는 행복은 얻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모습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기꾼이나 노름꾼, 도적놈, 강도들이 순간적인 쾌락은 있어도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그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위해 투자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5.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과장」이라면 「과장」으로서 직책과 능력과 권한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때, 인정받고 그 능력을 바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 공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착수되었는데, 경영자들과 간부들의 비리가 속속 들어나고 있습니다.
잘되는 곳은 잘 되는대로, 어려운대는 어려운대로 국가의 돈을 탕진하고, 개인의 인심쓰는 일에 국민의 세금을 횡령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러날 줄 모르고, 책임질 줄도 모르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한국사람의 특징은, 잘못한 책임을 질 줄은 모르고 전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할 일을 제대로 못해놓고 좋은 결과만 얻으려다 보니, 이 사람들의 종말이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게 주어진 직분과 능력에 맞추어 성실하고 충성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과 12지파의 분배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물론이고 온 백성으로 안식을 얻게 하였습니다.
친구 목사님 교회의 훌륭한 장로님 한 분 계십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화가로 그림의 천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건축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내가 교회 장로인데 내 그림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님의 사업을 내 자신을 먼저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홍성에 땅 50만평을 사서 그곳에 미술가를 중심으로 예술인의 마을을 짓고 있습니다.
홍성군도 협조해서 그곳에 길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이 우선순위이며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평생 행복한 삶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6. 둘째로 행복한 사람이란, 자신의 수고한 댓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장악한 후에, 다른 나라들의 제왕들처럼 그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12지파에게 분배하는 일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여호수아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레위족속을 제외한 모든 지파들에게 땅을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성공한 기업인들, 존경받는 기업인들의 특징은,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벌면, 먼저 함께 수고한 종업원들, 사원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나에게 돈을 벌게 해 주었으니 마땅히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회사는 절대 망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여호수아는 사명을 다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명한 다한 결과로 안식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결과,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각지파별로 분배된 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항상 세상적인 개념과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내 행복이 아니라 먼저 남의 행복을 위해 내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면, 이미 나누어준 것 보다 더 놀랍고 풍성한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막10:45절에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섬기고 나누고 자신을 마지막까지 다 내어주심으로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위에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7. 셋째로 행복한 사람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헤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흉년이나 재앙이나 천재지변이나 그 어떤 경제적인 이유도 아닙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금이간 그런 관계의 틈새로, 사단이 침투하여 그들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던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고생하여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많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남북전쟁과 그리고 보릿고개를 넘어 인간 승리를 가져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누리는 방법이 잘못되는 바람에 많은 시간과 돈과 기회를 가지고 인생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들만이 망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까지 오고오는 후손들까지 망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더욱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치고, 그래서 절재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먼저 대접을 받으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남을 대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주어지는 영원한 축복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원망, 불평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려할 때에도 그 입을 막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내 마음, 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33:29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취하는 것에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하여 참되고 영원한 행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야말로, 내 인생에 주어지는 최고의 행복이요 영광이요 기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때, 내 삶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견고해지며, 우리는 이 세상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자로 살아 갈 수 있는 줄 믿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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