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18.영원한 사랑(고린도전서 13:8-1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3:8-13개역개정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영원한 사랑(고린도전서 13:8-13/2008.5.18.오전) 1. 요즘 소문을 들어보면, 일본은 더 이상 노인의 천국이 아니라 노인들의 지옥이 되어간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당장 심각한 것은 의사가 부족해서,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노인들이나 산모들이 의료시설의 혜택을 받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북해도의 노인 부부는 남편이 정년을 4년이나 남기고 조기은퇴를 하면서 우는데, 류마치스를 앓는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였다. 사는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이 의사가 없어서 결국 문을 닫는 바람에, 일주일에 두 번, 병원 신세 한 번 지려면 왕복 260킬로를 자동차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수가는 오르고, 자동차 기름 값도 만만치 않은데 직장까지 그만 두어야 하니 참 난감할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평생을 종사해오던 직장을 도중에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 보다, 자신의 명예보다도 병든 아내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운 결단을 한 것입니다. 사실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국가가 백성들에게서 혈세를 짜내는데 그야말로 혈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우리는 더 이상 국가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아무리 들여도 보아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내가 그동안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행하던 그 모든 것들이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똘똘 뭉쳐진 自己愛는 있어도, 타인에 대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아가페는 없습니다. 정말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에 스스로 속아서 살다 죽는 것이 인생입니까? 2.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좋아졌다 싫어졌다, 다시 좋아졌다 하는 것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생각하기를 사랑이라는 것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주신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에는 더 놀라운 것이 보너스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도 값없이 조건도 없이,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사랑이란 우리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죄인들이 스스로의 죄 때문에 고통과 저주에 빠지는 것과, 그 죗값으로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어떤 몹쓸 인간이라도 다 회개하고, 고침 받고, 새 사람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으로 자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시고, 그 아들을 통하여 사죄의 은총을 입고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3. 이번에 얀마의 태풍 피해와 중국 四川省의 지진 피해는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몰된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통계를 보면, 매몰된 지 24시간 이내의 구조는 생존률이 80.5%고, 48시간 이내라면 생존률이 28.5%고, 96시간(4일) 이내라면 매몰된 사람들 중에서 살아서 돌아올 사람은 5.9%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존률이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물 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지진 때에 입은 상처나, 원래 가지고 있는 지병의 악화, 그리고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중국 수준이 완전 중세 수준입니다. 전부 손으로 작업하고, 연장이라고는 삽, 곡갱이, 망치 같은 수준입니다. 일본 구조대가 가져가는 장비는 음파 탐지기, 철근 절단기, 각종 컴퓨터 장비들과 훈련된 개까지 동원합니다. 공무원들이 몰려들어 구조작업 하는데 보니까 깨끗한 유니폼에 장갑도 끼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사진 찍기 위한 쇼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제가 조금 발전했다고 전 세계를 향해 큰소리치며, 인해전술로 유명한 대국 중국에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그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란 노래가 있는데 의미 있는 말입니다. 4. 사랑이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에 보니, 믿음, 소망도 있지만「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영원한 생명도 구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소망은 어떻습니까? 인간이 소망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불가능합니다. 소망 없는 나날은 순간순간이 고통일 뿐입니다. 1967년 8월에 충남의 구봉광산에서 매몰 사건이 일어나 많은 광부들이 희생 되었는데, 그 가운데 당시 36살의 양창선씨기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16일만에 구출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에도 15일 9시간만에 구출된 19살 박승현양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그들 나름대로의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어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8절에 보면「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언제까지라는 말은, 다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떨어지고, 변질되고, 가치가 상실되지만, 사랑은 결코 변하거나 중단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다 일시적인 것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생명이 있을 때 필요하고 가치가 인정되고, 효능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본문에 나오는 성령이 주시는 여러 가지의 은사와 능력들조차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모두 다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래서 본문은 그런 것들을「부분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하여 접하는 이 태풍의 피해나 지진의 재해도 부분적인 것들뿐입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과 문제점들, 그리고 그 모든 실상을 우리는 0.1%도 모릅니다. 은사를 받아 능력이 있습니까?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풍부합니까? 남 다른 많은 경험을 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것들이 다 유치하고 너무 보잘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소유와 능력들이 마치 세상의 전부요,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자기가 배운 대로, 그기에 길들여져서 그것이 제일인 것처럼 착각하고, 다른 방식의 신앙적인 표현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들을「부분적」인 것일 뿐 아니라, 이런 것들을 11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치하고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10절에 보니「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최고라고 여기는 예언도 방언도, 능력도 그 어떤 영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이 온전한 것 앞에서는 다 일시적인 것이요,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6. 그러면 이 온전한 것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남편, 아내, 자식, 부모의 사랑 그 어떤 사랑도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부끄러운 것들뿐입니다. 주례하시는 분들이 상용하는 말이 있습니다.「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다시 말해서 아무리 뜨겁고 순수한 사랑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모는 행위들은 죽음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죽음을 이기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 온전한 것이라고 하였고, 이 온전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8절에서「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고」, 7절에는「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사랑 안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누가 사랑을 위해 하나님만큼 오랫동안 참았습니까? 누가 사랑을 위해 주님처럼 모든 것을 견디어 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십자가에서「다 이루었」을 뿐입니다. 7. 고린도전서 13장이 우리에게, 너희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그러므로 너희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오래 참으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도 참지 못하는 것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누가 모든 것을 믿으며, 누가 모든 것을 바라며, 누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입도록, 그 분만이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13장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며, 이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까지 하나님의 희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달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 이 믿음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일 뿐입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바램일 뿐입니다. 비록 믿음, 소망의 동기를 부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이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결코 완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믿다가도 의심하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잔뜩 기대를 가지다가도 어느 날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이 사랑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에 결코 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영원한 것처럼, 그 분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 역시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세상에서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큰 소리 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입었다는 사실 그것입니다. 이 사랑은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방황한다고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죄를 이길 수 없고, 죽음을 이길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가지 못하는 지나치게 제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서 역사하여,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넘어가고, 모든 것에 이기게 하는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은 마치 청동으로 갈고 닦아 만든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지지만,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서로 보는 것처럼 온전함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깨닫는 만큼,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만큼 그 크기에 비례하여 우리는 허울좋은 사랑이 아니라, 능력으로 행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우리도 그 사랑 안에서 행하며, 이 사랑의 행위가 영원히 이어지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