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26.성도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고린도전서 6:1-1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6:1-11개역개정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도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고린도전서 6:1-11/2007.8.26.오전)
1. 우리가 살다가 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 참으로 어려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와 친하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의 잘못은 쉽게 용서가 되고, 그 과실이 잊혀지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된 것은 쉽사리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용서 못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변명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다른 것 다 이해해도 이것만은 용서 못해”라든가------.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제일 먼저 손해보는 사람은 용서 못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분노와 미움으로 마음이 병들고,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혀 생각과 판단력이 흐려지고, 영적으로도 기도문이 막히고 육체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리라」고 하시면서,「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함으로 내려 놓지 못한 모든 우리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고, 용서 대신 분노로 가득한 우리 마음에 용서를 심음으로 참된 평안을 얻기 바랍니다.
2. 고린도전서의 특징은 성도의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신앙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실용적인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 교회 안에서 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교인 스스로가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작은 문제든 큰 문제든지 가라지 아니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교회의 공통점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고, 지상에 있는 국가와 민족, 인종을 초월해서 모이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가 이런 문제로 심각한 이유는 교인들간에 생긴 위화감이 다른 교회보다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성원을 보면, 하층 노예 출신의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그 인종도 배경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각각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여러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의 이익을 따라 편을 갈라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십자가의 신학, 십자가의 신앙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교회의 주인노릇을 하면서, 섬기며 살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했습니다.
3. 하나님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믿는 자들에게 주신 능력이 무엇입니까?
본문 2절에 보니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함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능력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3절에는 「천사를 판단」하는 능력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세상을 다 우리의 권한에 위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와같은 큰 능력과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인간관계의 불화가 우리의 모든 것을 어둡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고전4: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는데,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고 바울의 엄한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들끼리 싸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니,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있는 자가」없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의 형제들끼리 다투고 있는 이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쾌하게 판단하고 해결할만한 말씀의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미 3절에 보니 이전에 받은 바 능력들을 상실했습니다.
5절에 보니 말씀에 착심치 아니하므로 그들 가운데 문제를 해결할만한 지혜있는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6절에는, 그 결과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부끄러움 당하는 자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에 서로가 믿는 형제를 고통케 하고 있었습니다.
4.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교인들간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를 판단하는 소위, 영육간에 신령한 지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자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어른들 싸움을 초등학교 어린아이에게서 해결받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삶의 영역은, 비록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지만 그 모든 영향력은 영원한 장래와 하늘나라에까지 미쳐 있습니다.
일단 교회 안에서 같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가족의 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상대가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상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의 위상은 세상에서 높아질 것이며, 하나님은 큰 영광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5. 둘째는 문제가 있으면 중재하여 교회 안에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사명은 회복케 하고, 화평케 하는데 있는 것은, 우리가 믿고 붙잡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평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복음으로 화평을 이루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주님께로 받은 바 아가페 사랑으로 화목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명입니다.
셋째는 마지막 수단으로 세상 법정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속임을 당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도 모든 것 다 지시고 십자가로 나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고 하시면서, 베인 말고의 귀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 이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 참아야 합니다.
성도간에 분쟁이 있고, 그 문제를 싑게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의 능력을 스스로가 상실한 증거가 됩니다.
6. 그러면 왜 우리는 형제의 불의함과 잘못을 보고도 참아야 하고, 용서해야 합니까?
첫째로, 주님도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 형제도 주님이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고 나도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으니, 용서가 사람을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재산 문제이던, 교리 문제이던, 도덕적인 문제이던 다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자는 되었지만, 근본에서 문제가 많다보니, 쉽게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사도바울과 아볼로 같은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주어진 환경과 시대적인 정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세월을 세상 풍조에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능력을 잃고, 말씀의 지혜를 잃고, 마지막에는 형제가 형제를 고소하고 정죄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7.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내 신앙이 죽은 신앙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은, 11절에 보니 이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도 나중에는 변화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시가껭의 오미(滋賀県の近江)에 가면, 향토 문화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물건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낡은 유물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집마다에서 자발적으로 가져다 놓은 것들입니다.
그것이 문화관이 되고, 관광지가 되고, 오미시의 유산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무엇을 가져다 놓겠습니까?
돈이나 재산이나, 어떤 세상의 자랑되는 것들을 가져다 놓겠습니까?
이것은 분쟁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그의 피로 깨끗이 씻음받은 거룩한 삶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분쟁대신 화해하는 것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경쟁하는 것 대신에 서로 공존하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유행이나 자랑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고, 겸손과 사랑으로허리를 동이고 서로 섬기는 겸손과 온유함의 모습을 가져다 놓기를 바랍니다.
성도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하고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