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2.그리스도인의 자유(고린도전서 6:12-2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6:12-20개역개정

12.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리스도인의 자유(고린도전서 6:12-20/2007.9.2.오전)


1.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화장기술과 화장품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유명한 헐리웃의 여배우들이 화장한 얼굴과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비교하여 사진을 올린 것을 보았는데, 그녀들에 대한 아름다움의 환상이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요 변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장술의 발달의 공로는 역시 거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있기에 여성들의 아름다움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아름다운 여자일수록,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여자일수록, 머리끝에서 발끝에 이르도록 전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만족한 후에 외출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거울을 많이 보고, 자주 보는 여자는 자연히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적인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본문의 중심내용은 믿는 자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문제요,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육체 자체에 대한 자유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적으로 보면, 죽음, 죄, 저주, 고통에서의 해방입니다.
이 문제를 사실화 한 것이 히브리민족의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이미 그 자체가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 가운데 문제가 생겼을 때에 소송은 누구나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해서는 안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믿는 형제들끼리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는 일이며, 우리는 결코 정욕과 욕망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속임을 받고, 내가 손해보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우리의 신앙이나 도덕적인 가치관에 위배가 될 때에는 당연히 제한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3.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선택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 이 자유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얻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모든 율법과 의식들과 모든 죄와 허물에서 우리를 영원히 자유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21세기만큼 인류가 많은 자유를 누리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통하여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너무 얽매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각종 제도나 습관들과 미신이나 죄의 세력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 모든 것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오용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것은 모든 인생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이 죄인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던 우리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살리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셨고, 이로 인하여 우리는 그의 소유된 사람들입니다.
그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을 더러운 죄와 방종함에 방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4. 두 번째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거룩한 도구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5절에「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삶이 이미 그분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죄의 도구로 내어주고, 죄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축복을 남용하여 육체의 정욕에 자신을 방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자연스러운 욕구들이 있습니다.
식욕이나 정욕이나 소유욕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생각나는 대로, 본능이 요구하는 정욕대로 다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성에서 나오는 이런 욕구들을 절제와 분별력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갈5:1)고 하면서 도리어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미 우리는 그의 거룩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5. 세 번째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절에「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우상숭배와 음행이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또한 다신론적인 사상과 이론론적인 철학이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 교회도 그런 영향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 속에 내주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속적인 욕심을 따라 가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게 됩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고통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성령을 근심시키고 고통하게 만들면, 하나님이 우리 몸을 심판하시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9절 마지막에 기록된대로,「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1793년, 영국의 윌리엄 케리가 선교사로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힌두교의 가르침으로 3천년 간 혼란속에 있었습니다. 카스트제로 극소수만이 인간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육제도도 특권층만 누리고, 여성들은 다시 태어날 때 남자로 태어난다는 소망 하나만 가지고, 남자들의 온갖 폭력과 학대에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업을 받는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산채로 태우고, 어린아이들을 겐지스 강의 악어밥으로 산채로 던지며, 과부를 산채로 화장하고, 일부다처며, 어린아이가 병들면 천장에 메달아 놓고,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이기는가를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 인도 속에서 케리는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회를 조직하며, 대학과 인재들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을 만들며, 은행제도를 만들고, 40여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감독하면서 인도를 새롭게 만들어나갔습니다. 오늘날의 인도는 바로 윌리엄 케리라는 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받도록 자신을 드림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6. 자유함에 대하여 본문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자유가 무엇이며 자유함이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에 보니,「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상의 재물도 육체를 위하여 먹을 수 있는 뜻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이 말씀을 엉뚱하게 적용하고 말았습니다.
식욕의 본능을 채우는 것이 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적인 본능에 적용하여 성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도 죄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13)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욕구들을 원하는대로 다 채운다고 하여도 만족함이 없으며, 도리어 욕구를 따라갈수록 더 많은 죄를 짓게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적질이나 질투, 음란이나 싸움질, 이것도 다 본능을 채우려는 것이요, 그 결과는 죄를 더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것일 뿐입니다.

7. 그렇다면 참 자유는 무엇입니까?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의 법과 규범을 지키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모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참 자유는 내 자신을, 아니 나의 모든 본능적인 욕구들을 하나님의 법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법도 아닙니다. 내 양심의 소리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때, 그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에는 참다운 만족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내 육체가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며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 자체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기뻐하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자유라고 하는 그럴듯한 명분에 싸여 죄의 본질을 감추고 있는 우리의 본능은, 온갖 악을 자행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본능의 욕망을 따라 살면 살수록, 내 욕망을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 안에는 불안과 갈등과 두려움이 증폭될 것입니다.
또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심으로 내 삶 자체가 만족이 없고 고통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우리의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우리의 육체를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8. 4가지의 질문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반드시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1)이 일이 내게 유익한 것인가?
2)내 양심에 부끄러움은 없는가?
3)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4)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이것만 잘 살핀다면 참된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20절에 기록된대로 우리의 몸으로「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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