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22.하나님 나라의 본질(고린도전서 4:14-2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4:14-21개역개정

14.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 나라의 본질(고린도전서 4:14-21/2007.7.22.오전)

1.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없고, 내 마음에 들도록 완벽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는 문제없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완벽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내 마음에 들거나 객관적으로 완벽한 존재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류의 역사가 종언을 고하기 전에는 그 어떤 인생이라 할지라도 완벽함을 누릴 수는 없으며, 그러므로 삶 자체가 불안전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불완전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불완전하며,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 자체가 매우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형상에 가장 근접한 곳이 있다면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며, 또한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완벽한 사랑을 입은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의 모든 환경과, 심지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불완전할지라도, 그 속에서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줄 믿습니다.

2. 본문의 고린도 교인들은 한 마디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심각할 정도로 타락했고, 믿음의 공동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가 많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교회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의 대리자로서의 사도바울이 그들을 향하여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바울은 부모가 해산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듯이,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희생과 땀을 흘려가며 양육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듯이, 고린도 성도들을 자기의 자녀처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1세기의 지구촌에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가 경제성이 있고, 경제적인 가치를 재생산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경제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애완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교회도 세상에 속해 있으며, 교회도 경제적 바탕에서 움직이고 활동하고 있는 이상에는, 교회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 세상 사람들이 간과해 버리고 만 중대한 사실 한가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죄인을 향하신 변함 없으신 사랑입니다.

3.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을 정도로 모든 일에 실패하여 세상에서 버림을 받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변함 없이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우리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뇌성마비에 걸린 아이처럼, 기형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근심이었고, 고통이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마치 해산의 수고를 통해 낳은 자녀처럼 그렇게 사랑했고,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온갖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온갖 희생은 오늘날 교인들의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들이 배워야 할 모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하나님도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서 그 자신도 모든 것 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잃어버리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이와같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찾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고, 주님 또한 십자가에서 그렇게 희생하셨으며, 사도바울 역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 고린도 교인들을 그렇게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4. 지난 18일, 분당의 샘물교회의 의료 봉사팀 18명이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서 텔레반에 납치되었습니다. 한국군인들이 철수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하는데, 인터넷 신문에 홍수처럼 올라온 이 사건의 기사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함께 그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위해 기도하고, 이 일로 고난 당하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도리어 교회가 사회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성장일변도로 달리고 있는 사이에,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에, 도리어 국내에서는 엄청난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포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개같은 기독교」라는 뜻의「개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좌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렇게 매도한다고 하지만, 목회자인 제 자신이 볼 때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고도성장 이후에 사회에 끼친 영향들이 별로 그렇게 좋은 것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사상적인 대립에서 오는 감정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알고 있는데, 막상 교회에 들어와 보니, 교회의 보이지 않는 기득권의 담벼락은 너무 높고, 쉼과 위로를 받고자 하는 마음에 찾아 온 교회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더 많은 무거운 짐과 고통과 고민을 안겨 주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5. 사도바울은 문제많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꾸준히 노력한 내용이 있습니다.
16절에 보니,「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의 행위로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무엇인가를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나자, 교회는 분쟁에 휩싸였고, 많은 문제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나태하였고, 파당과 분쟁으로 몰려다니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남은 삶을 주님께 드려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섬기면서, 자신들을 높이고, 자신들의 육체가 좋아하는 일에 분주했던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18절에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사도바울을 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영적인 아비이며,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신들을 믿음으로 출산한 어머니같은 바울을 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표현하기를, 변덕이 많은 사람(고후1:17)이요, 몸은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은 사람(고후10:10)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서 참된 교사들을 비방하며, 강한 자들에게는 굴종하고, 약한 자들은 억누르고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온 이스라엘이 고라당의 유혹을 받아 큰 죄에 빠진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계략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고, 경성하여 말씀과 기도에 정진한다면 이러한 악의 세력에 미혹 받지 않으며, 도리어 은혜의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6.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21절에「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값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징계와 책망이란 당하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며, 원상태로 회복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성도는 속히 깨닫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때에도 책망과 칭찬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바른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징계와 책망도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3 종류의 신자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성인된 신자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방향만 잘 잡아주면 알아서 나아가는 신자들입니다.
2)청소년 신자가 있습니다. 책망과 사랑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양육해야 할 신자입니다.     3)젖먹이 신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젖만 잘 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깨달아 고치기를 원하는 바울의 충고는 성장치 못한 어린아이같은 신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충고였던 것입니다.

7.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언어라고 하는 고도한 문화의 수단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스승이 필요하며, 많은 가르침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고도로 발달한 문화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시면서 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능력은 말이나 수단이나 처세술이나 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줄 믿습니다.
행함이 있느냐 없느냐? 행함이 있다면 그 열매가 무엇이냐 ? 바로 이것입니다.  
19절의「능력」이란 헬라어로 「뒤나미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힘, 가능성, 지적 영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있는 신자가 되려면,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말씀으로 양육받고, 배운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 순종한다면 그 순종함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지난주에 한국의 파송교회에서 보내온 책 중에 「천국의 섬」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전라남도 증도라고 하는 섬을 중심으로 문준경 여전도사님의 사도행전적인 전도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주민 90%이상을 혼자서 복음화 시킨 능력이, 신학교에서 배운 학문이 아닙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도와 사랑의 희생으로 일구워 낸 기적의 역사입니다. 1897년에 태어나서 1950년 공산당의 손에 순교하기까지의 기록이 사도행전처럼 우리 곁에 남아서, 과연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8. 이렇게 훌륭한 전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왜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바울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마음이 있었고, 남다른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께 크게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빚을 억만 분의 일이라도 값겠다는 그런 심정으로 복음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원수도 사랑하게 되고,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빚 값는 것은 말의 잔치가 아니라, 사랑으로 행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도 침노하고 빼앗는 자의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랑이 아니고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오사카중앙교회를 사랑의 능력으로 가득채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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