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18.모든 능력은 하나 됨에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10-1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0-17개역개정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모든 능력은 하나 됨에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10-17/2007.3.18.오전)
1.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나보다 더 힘 있고 능력이 있고,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나보다 더 열심이 있고, 나보다 더 잘 믿는 사람을 만나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 혼자 힘으로 일어선 사람은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삶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창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도 비슷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러다보면 늘 만나는 사람끼리 만나고, 대화도 그렇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폭이 좁아집니다.
고린도교회는 지정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곳에 세워진 교회이고 보면,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이미 끼리끼리 모이는 4종류의 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라고 하면서 교회를 개척한 바울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로 헬라파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볼로파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철학과 이성적인 경향이 강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게바라고 불리우는 베드로파가 있습니다.
바울파에 대항하여 베드로의 수제자 된 사도권을 내세우면서 정통성을 강학 주장하는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모임인 것 같습니다.
이러다보니 분파를 싫어하여 순수한 신앙만을 고집하면서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또 생겼는데,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파라고 불리웠습니다.
2. 우리가 믿는 십자가 복음의 기독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양성과 조화에 있습니다.
성경이 66권으로 저자들이 다르고, 시대와 기록된 배경에 다릅니다. 그러나, 이 66권은 한가지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하나하나의 소리가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를 부르실 때, 일률적으로 부르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능력과 여러 종류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사람들을 일치의 훈련과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더 높으냐는 문제로 다툼도 있었고, 의견의 대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시건 이후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로는 온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였고, 성령충만한 그들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믿음의 가치는 능력에 있으며, 큰 능력은 분열이 아니라 하나 됨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다 같은 말을 하고---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 때에는 우리 가운데 큰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3.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경향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니 아볼로니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이름 아래에 여러 분파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나 지금에도 동일한 현상은, 인본주의가 모이면 반드시 시기하고 분쟁한다는 사실입니다.
분파가 생기면 각각 제일먼저 자기 자신들의 그룹의 존재목적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서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고, 이 정통성은 반대로 다른 그룹을 정죄하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교회 안에서 시기심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파, 분쟁, 시기심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죄로 말미암아 원수된 것을 예수 십자가로 화해케 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인위적인 막힌 담을 헐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의인 따로 없습니다. 우리 모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또한 한결같은 은혜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이며, 이 사명을 위해서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분쟁과 시기심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각각 지체가 다른 것은 받은 사명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발이 하는 일을 손이 할 수는 없습니다. 입이 하는 일을 코가 할 수도 없습니다.
받은 사명과 은사를 모르는 사람은 자꾸 남이 하는 일을 간섭하고 빼앗으려고 합니다.
4. 셋째는, 받은 은사와 능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헬라세계는 지식과 웅변이 뛰어난 곳입니다. 아마 아볼로파 사람들 가운데는 나름대로의 지성과 웅변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웅변의 재능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이 얼마나 놀랍고 탁월한 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도리어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신 주님의 뜻을 거스리고, 교회를 분열케 하는데 이 웅변술을 사용했다면, 이것은 받은 은사의 목적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 되는 것 자체가 큰 힘이요 능력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과연 우리의 뜻대로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까?
가정 안에서도 부부가, 가족들이 하나 되기를 원하지만 도리어 분쟁하고 분열하고 깨어지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과연 진정으로 하나 되는 방법은 없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뜻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10명이 모이면 12가지의 의견이 나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뜻을 버리고 한 가지의 뜻,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너의 의견이나 나의 고집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자기주장이나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복음 안으로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킴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할 필연성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롬12:5절에도「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하였으니,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됨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우리 모두는 하나 된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목적이 바로 17절에 기록된 것처럼,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5. 예수 십자가의 복음은 율법에도 메일 수 없고, 헬라철학이나 웅변이나 그 어떤 지식에도 메일 수 없습니다. 또한 헬라인이냐 유대인이냐 그런 민족적 장벽에 갇힐 수도 없습니다.
어떤 제도나, 사상이나, 습관에 메이는 것은 힘이 없는 것들뿐입니다.
능력 있는 것은 메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하나 됨을 지키면 우리를 묶고 제한 할 세력은 없습니다.
눅10:19절에, 예수님이 70인의 전도자들에게「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는 역사가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날 때, 「너희 믿음대로 될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정이 복음으로 하나 되고, 이 땅 이 민족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