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9.공중 나는 새를 보라(마태복음 6:25-34)
[성경본문] 마태복음6:25-34개역개정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공중 나는 새를 보라(마태복음 6:25-34/2006.11.19. 추수감사절) 1. 우리의 장래는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인격과 어떤 신앙, 어떤 삶의 자세를 가졌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돈 많고, 힘과 권력을 가져도 그 부모와 자식의 인격이 병들고 삶이 파괴된 가정은 한 마디로 망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그 인격, 성품, 인간성,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다시 일어서고, 욥처럼 더 큰 축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고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실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면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병든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도 속으로 썩고 문드러지고 분쟁이 끊임없는 가정이 있습니다. 반면에 겉으로 볼 때는 시원찮게 보이고 문둥병자처럼 가난해 보여도 사랑과 믿음과 은혜로 그 속이 온갖 좋은 것으로 꽉찬 심령, 가정도 있습니다. 2. 18세기 영국은 경제, 정치, 도덕, 온갖 부정부패로 최대의 위기를 만났을 때, 1720년 한 가난한 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하나 태어났습니다. 그는 요한 웨슬러로 그의 모친 스잔나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스잔나는 무려 19명의 자녀를 출생하면서 가난과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19명의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양육하여 비록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으로 키웠습니다. 요한웨슬레와 그 형제 챨스웨슬레를 옥스포드 대학에 보냈는데, 이 두 형제가 타락한 대학 한 가운데서 홀리클럽을 만들어 말씀읽기와 기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비난했지만 단 4명의 학생의 경건운동이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어 각 대학으로, 각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영국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일은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한 일일수록 적은 사람이 일어나고, 위대한 지도자일수록 외로운 곳에서, 어려운 곳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난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침내 영국은 웨슬레 형제의 경건 운동으로 그 나라의 정치, 경제, 도덕, 학문이 세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신사의 나라가 되고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된 부흥운동의 결과였습니다. 3. 중동이 자원이 풍부한 나라, 땅 속에서 달러가 솟구쳐 올라오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있나,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명이 있나, 세계에 내 놓을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잘 살고 좋은 환경 속에서도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과 어려운 환경과 싸우면서 영적으로 훈련받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나라와 민족, 그런 가정과 교회는 반드시 축복받는 것입니다. 1875년 미국서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의 7남 2녀 중 6남으로 태어난 디엘 무디가 있습니다. 부친이 석공으로 일하다가 일찍 죽고, 그는 10살에 출판사에 취직하여 종이를 날라 주는 일을 하다가, 16살에 보스톤에 있는 친척 구둣방에 취직해서 그곳에서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어도 학교라고는 6개월 다닌 것뿐이라 받아 주지 않자, 자신이 나가서 전도하여 데리고 온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원래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가르쳤습니다. 무디는 타락한 미국에 새로운 청교도 운동을 일으켜 힘을 잃고 소망 없이 무너져 내리던 미국을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다. 4. 이 민족의 장래를 누가 이끌어 갈 것입니까?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가난해도 어려워도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힘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이 결코 그 외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힘은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적인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농부는 농부이기에 아름답고, 군인은 군인의 본연의 모습에서 힘을 느낄 수 있고, 학생은 학생다울 때 그곳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답게 순수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지킬 때 아름다운 법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점은 인간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사람이라도 다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비인격화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할 것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본래의 인간성과 삶의 모습을 지킬 때 아름답고,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5. 오늘 본문 26절에 보니 공중의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이 보라는 말은 엠브렢사테로 단순히 눈을 들어 보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나님이 기르시는 새들과 하나님이 입히시는 들의 풀과 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만물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 바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새들과 들풀과 꽃들조차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며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치 못한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 그의 영광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고, 그럴 때 마다 감사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결코 내가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 아는 부모, 이런 영적인 눈을 가진 부모는 속이고, 싸우고, 빼앗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살 이유가 하나도 없는 줄 믿습니다. 왜? 다 천부되신 하나님이 기르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 불평 대신에 감사가, 원망 대신에 찬송이 넘치는 법입니다. 6. 28절에도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보라는 단어는 카타마데테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라는 말입니다. 모든 만물, 자연 속에서 모든 수고는 다 하나님이 하시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그의 손길에 의해 양육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란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창조주에 의해 보호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우리의 목자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내 안에서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기독교가 기복종교니 하면서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하면서 그 축복의 결과인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내가 왜 잘 살아야 하는지 그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 받고 잘되는 목적이 내 썩어질 육신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서 먼저 이루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웨슬레 같은 사람, 무디 같은 사람을 양육하여 한 시대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7. 공중의 새를 보라 했습니다. 왜? 그곳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 교회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도, 병든 가정에도, 실패한 가정에도, 버림받은 인생 위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손길이 이미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선한 사업위에 하나님은 이미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이 절망하고, 자살하고, 미워하며, 머리 터지라고 싸움질 합니다.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축복의 손길이 온 우주 만물에 한 포기의 풀과 꽃에도 함께 하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염려 대신에, 불평과 원망 대신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더 많은 축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힘 있는 교회가 되고, 선교의 큰 역사를 감당하는 축복된 교회가 되려면, 먼저 성도들의 가슴속에서 감사가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선교하는 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건축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도 감사의 문으로 닫으며, 2007년도 한 해의 문도 여호와를 향한 감사로 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 안에서 감사하며 자라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염려 대신에 감사와 기쁜 찬송으로 살아갈 때 힘 있는 성도, 아름다운 성도, 복된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