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10.우리는 성령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5:22-26)
우리는 성령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6/2006.9.10.오전)
1.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또한 성령의 체험을 확실하게 경험했던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6:1절에서 밝히기를, 사도바울이 그들을 향해「신령한 너희」라고 불렀던 것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또는 성령의 사람으로 불리울 수밖에 없는 이 놀라운 신분은 어떻게 주어졌으며, 이 신분에 어울리는 삶이란 어떤 것이며,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갈리디아 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 삶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누가 내 삶을 도와주고 있으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본문을 중심으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2. 먼저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에게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령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보혜사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절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하였고, 계속해서 17절 하반절에서,「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보증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적용하며, 또한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모든 활동은 하나님 자녀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할 뿐 아니라, 주님의 재림의 그 날까지 우리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워서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완성되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3. 성령님의 이 땅에서의 활동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자녀된 우리를 중심으로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늘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도우시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릴 때에도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롬8:26절에 보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디 기도뿐입니까? 성경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처럼 보이면서 가장 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잘 아시고 어린아이 같은 우리를 위해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신 줄 믿습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도록 우리의 모든 성화의 과정에 개입하셔서 도우시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을 향해 담대히 선포하도록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지금도 해산의 수고로 우리를 도우시고 계시며,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주고 사신 교회를 중심으로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천국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록 바깥으로는 교회의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안으로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셔서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시대마다 통과해야 하는 박해의 쓴 잔 속에서도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능력과 힘을 공급하여 대적으로부터 승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2천년의 역사는 피와 순교의 역사입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승리함으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박해의 폭풍 속에서는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았지만, 성령님은 이 박해를 견디게 하셨고, 박해의 폭풍이 사라진 후에는 십자가의 복음이 요원의 불길처럼 사방에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성령님이 교회를 붙드시는 손길은 교회를 중심으로 능력과 기적과 사랑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가 증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것과, 성령님은 교회와 성도를 주님 오실 때까지 그의 능력과 힘으로 이것들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줄 믿습니다.
5. 오늘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은혜의 공동체가 되게 한 것도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고전2:13절에,「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는니라」하였으니, 오늘 이 말씀도 성령님이 주시고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힘 주실 때,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25절에 기록된대로,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는 말은, 현재 의지적 가정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우리는 또한 성령으로 행하기를 계속하자」는 뜻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의 걸음을 계속 걷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성령을 체험하고도 성령과 더불어 걷기를 거부하거나 중단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6:4-5절에 보면,「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은혜의 자리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울왕처럼 버림받는 것입니다.
6. 신자의 정체성에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인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세상을 떠나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의 도구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17절에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응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옛 세력인 육체가 가진 죄의 세력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과의 싸움이 있고, 자신의 육체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이 육체와의 전쟁으로 엄청난 값을 치루었고, 그 싸움의 치열함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고 하면서,「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고 했습니다.
7. 이것은 분명히 성령 받은 사람의 절규요, 대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자신을 가리켜 곤고한 사람, 더 자세히 표현하면 비참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절망하여 비통한 마음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자의 이중성입니다.
내 속 사람은 말씀중심으로 살고 싶은데, 내 육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새벽기도에 대한 갈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심령은 아버지 집에 가서 기도하고 싶은데, 육체가 거부합니다. 옛 습성과 주위의 환경이 그것을 방해합니다. 그렇게 밀리면서 살다보니 세월이 많이 흐르고 말았고, 그렇게 신앙생활 해온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안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처럼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며 자신을 새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한 때는 은사도 받았는데, 그 은사의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를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듯이 자신을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 결단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성령님과 더불어 발걸음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8. 그것은 24절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육체의 요구를 끊어버리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곧, 9가지의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22-23)입니다.
19절에서 육체의 온갖 더러운 범죄를 가리켜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반하여, 22절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들은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그토록 수고하고 몸부림쳐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다 얻게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맺는 삶입니다.
이렇게 기독자의 이중적인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며 모든 싸움에서 이기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