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0.믿음으로 말미암아(로마서3:25-31)

[성경본문] 로마서3:25-31개역개정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으로 말미암아(로마서3:25-31/2022.2.20.오전)

1. 세상은 기독교를 가리켜 다른 종교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서 사실 내 신앙이 귀한 만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신앙심도 존중해 주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세상에 있는 종교들이 서로 도와주고 서로 융화를 이루면서 종교적인 가치를 높여 나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럴 때, 이런 문제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벽한 의를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고,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는 데 반하여,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구원이나 온전함이나 의로움에 이르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신앙과 다른 종교의 구원에 대한 방법은 그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으로 인간이 원하는 구원에 이르려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도 없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죄로 인하여 오염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들이 죄문제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다보니,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롬7:18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원치 않는 악은 행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은 고통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만 보았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죄인을 향한 자신의 사랑만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동시에 보여 주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아들이라도, 그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죗값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진노를 멈추지 않으시고 자기 아들 위에 다 부어 심판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을 감추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에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한 심판을 보았다면, 이것 또한 제대로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세 번째 것은, 죗값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내용처럼, 우리의 과거는 물론 지금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 더미 속에서 고통하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없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고, 이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그 의가 나의 영원한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온전함에 이르려고 하는 세상 종교들과는 함께 할 수도 없고, 그들의 가르침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요, 영원한 의가 되는 줄 믿습니다.

3.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인생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소유를 자랑하고 남다른 재능과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고, 남다른 외모나 과거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27절에서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에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성경은 우리 인생이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율법을 다 지켜서 그 의로움을 인정받아서 된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의롭고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창2:17절에 기록된 대로,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였는데, 그 죄의 삯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죽어야 할 십자가에 자신의 아들을 대신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타협이나 보류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직 법대로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26절에 기록된대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는자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치루신 대가가 너무 크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것이 너무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완벽하게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그 죄에 사로잡혔던 인생들을 율법에 어긋남이 없이 매우 정당한 방법으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높이 드러나고, 우리 또한 믿음을 통해서 의로운 자로 세움을 입게 하신 것입니다.

4. 우리 인간들의 행위는 항상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부터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왁진을 맞는데, 이 왁진이라는 것이 도리어 어떤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까지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몸에 좋은 보약이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약도 하나를 치료하면 다른 것이 망가집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려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평하고, 이러한 불공평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이 모든 것이 죄로 인한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은 처음부터 죽는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가,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내 육체가 원하는대로 정욕에 빠져 살다보니, 죄의 대가로 죽음이 선고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게 소망이 있다면 단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말씀,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영원토록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구약 성경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쉽게 표현하고 있는 말씀은 호세아서입니다.

어느날, 선지자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음란한 여자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고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대로 순종하였지만, 아내인 고멜은 부도덕한 여인으로 남편을 배신하고 집을 나가 다른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며 이전보다 더욱 처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호세아에게 네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데려오라고 합니다.

호세아는 많은 몸값을 치르고 아내를 다시 데려와서 사랑해 줍니다.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음란한 마음으로 떠나 온갖 죄 가운데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그 은혜를 신약에 와서 또다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갈보리 산상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게 하시고 광야에서 그들에게 거듭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 곧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출19:6, 22:31).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룩이나 의로움에 관심도 없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인생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나는 율법주의자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원죄와 더불어 내가 살면서 평생 지은 더러운 죄 때문에 반드시 심판받아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그가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함으로 얻으신 그 의를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 같은 죄인, 고멜같이 부끄럽고 더러운 죄인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자랑하고, 그 십자가를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고, 더이상 죄책에 시달리며 고통받을 이유도 없는 것은, 주님이 이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시고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고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일요4:15-16) 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우리를 죄가 가져다주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연약함에서 해방하고, 우리를 부끄러움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줄 믿습니다.

6.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이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복된 승리의 무기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향해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감으로 오늘부터 영원한 승리자가 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서 복을 누리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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