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5.인자가 온 것은(마가복음10:32-45)
[성경본문] 마가복음10:32-45개역개정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
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자가 온 것은(마가복음10:32-45/2019.9.15.오전)
1. 1921년, 플러드 선교사 부부(David and Svea Flood)는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스웨덴을 떠나 아프리카 콩고로 선교를 떠났고, 그곳에서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에릭슨 선교사 부부를 만나 함께 오지로 들어갔지만, 추장이 토속 신들과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봐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할 수 없이 마을과 떨어진 산에 올라가 진흙으로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닭과 계란을 팔러 오는 원주민 소년이 었는데, 플러드 부인은 이 소년에게 전도 하였고, 그런 와중에 네 사람은 차례로 말라리아의 공격을 받았고, 에릭슨 부부는 선교본부가 있는 곳으로 철수했지만 플러드 부부는 계속 그곳에 남았습니다. 플러드 부인은 움막에서 임신하였고 출산할 때가 되니, 추장의 마음도 누그러져 산파를 보내 도와주었습니다. 딸의 이름을 ‘아이나’라 지었는데, 플러드 부인은 출산 후 17일 만에 숨지도 말았습니다. 마침내 플러드 선교사의 인내는 한계에 이르렀고, 그곳에 27살 된 아내의 시신을 묻고는 두 아이를 데리고 선교 본부로 돌아와, 갓 태어난 딸을 에릭슨 부부에게 맡기고는 “나는 아내를 잃었고 이 아기는 도저히 키울 수 없소. 하나님은 내 인생을 망쳐버렸다” 며, 스웨덴으로 돌아갔고 이후로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2. 플러드가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 8개월 만에 에릭슨 부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돌도 안 된 아이나는 어떤 미국인 선교사 부부에게 맡겨졌다가 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나는 미네아 폴리스의 성경 학교를 다녔고, 거기서 듀이 허스트라는 청년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나는 남매를 낳았고 남편 허스트는 시애틀 지역의 한 기독교 학교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나는 스웨덴에서 발간된 종교 잡지를 보았는데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허름한 움막 앞에 무덤이 있고 거기 하얀 십자가에 플러드란 이름이 보였습니다. 아이나는 학교로 달려가 스웨덴 말을 아는 교수에게 기사를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그는 그 내용을 요약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에 콩고의 한 마을에 온 선교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한 아기를 낳았고…, 며칠 후 산모는 죽었고…, 한 아프리카 소년이 예수님께 인도되었고…, 백인 선교사들이 모두 떠난 후에 이 소년이 자라서 추장을 졸라서 학교를 세웠고…, 그는 학교 어린이들을 모두 그리스도께 인도했고…, 그 아이들이 또 부모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고…, 나중에 추장 마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현재 그 마을에는 600 여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전의 플러드 부부의 희생 결과였습니다.
허스트 부부는 결혼 25주년에 학교의 도움을 받아 스웨덴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이나는 수소문 끝에 아버지 플러드를 찾아보니, 그는 재혼해서 네 자녀를 두었고, 술로 남은 삶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었고, 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로 부르지 말아라. 하나님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단다 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했습니다.
3. 아이나는 술병이 뒹구는 허름한 침대에 누워 있는 73세 된 노인에게 다가가서 아빠라고 불렀고, 플러드는 찾아온 딸의 목소리를 듣고 울면서, 나는 너를 버릴 생각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아이나는 괜찮아요!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잘 돌봐주셨어요. 이 말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버렸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 삶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고 하였고. 아이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빠는 아프리카에서 헛된 세월을 보낸 게 아니에요. 엄마도 헛되이 돌아가신 게 아니었어요. 엄마가 주님 께로 인도한 그 소년이 자라서 그 마을 전체를 주님 께로 인도하였고, 아빠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기에 이제는 그곳의 600 여 명의 주민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아빠, 예수님은 아빠를 사랑하셔요. 하나님은 아빠를 한 번도 미워하신 적이 없어요! 그 날 플러드는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몇 주에 후에 플러드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허스트 부부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도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나는 자이르(콩고)의 침례교인 11만 명을 대표해 참석한 지도자 한 사람에게 플러드 선교사 부부를 아는지 질문하며 자신이 그 딸이라고 소개를 하였더니, “네! 알고 말고요, 나를 예수님께 인도한 분이 바로 플러드 부인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 부모님에게 식료품을 배달하던 그 소년이었고, 당신 어머님에 대한 추억과 그 무덤은 마을 모든 사람으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꼭 아프리카에 한 번 오셔서 우리 마을을 방문해주기 바란다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훗날 허스트 부부는 그곳을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아이나는 하얀 십자가가 서 있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땅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12:24)고 하셨고,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시126:5)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4. 위의 내용은 지금 미국에서 투병 중인 폴조 목사님이 보내온 선교 실화입니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이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도록 계속해서 무엇 인가를 창조해 내고, 발전해 나가면서 세상에서 인정받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처럼 광야 40년의 세월을 통해 그들을 훈련하시며, 때때로 감당하기 어렵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시련과 고통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하셨고, 고독함 속에서 미세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좌절감을 통해서 주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우리들의 열매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가치관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부분에 있는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 라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야 하며,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는 이 육체를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성공은 못 해도 멸시 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 방식으로 살고 세상과 사람들을 이용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반대로 자기 목숨을 남을 위해서 내어준다고 하니 말이 됩니까?
5. 본문 35절 이하에서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구하고 있는 이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생각했고, 제자들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37절에 보니, 세상의 표현으로 하자면 절대 권력을 잡겠다는 것입니다.
41절에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화가 난 것은 그들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에 대한 어떤 야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서두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3-34절에 보니,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이라는 목적지도 같고, 함께 가면서도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은 전연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비극입니다.
6.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성품, 불쌍히 여기는 마음, 화평을 위해 힘쓰는 것,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삶을 살라고 하셨지만, 과연 이런 것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악한 자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나의 속옷을 원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주고, 오리를 동행하기를 원하면 십 리를 함께 하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 하던 제자들조차도 오해하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잘못된 판단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자들은 인생의 성공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도 없으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과연 지금 내 생각과 내 삶 속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지금까지 걸어왔던 삶과 방식들이 예수님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제자들처럼 그런 생각과 삶을 고집한다면, 예루살렘 까지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더는 예수님과 함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이 붙잡히던 날 밤에,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목적이나 생각이 다르면 같은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평생을 통해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며, 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이런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7. 요 6장에 보면, 전체가 떡에 관한 말씀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면서, 이 떡, 곧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한다고(50-51) 하였더니,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고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고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세상과는 반대로 이렇게 고난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까?
요6:38에 보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요 곧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기 생각과 계획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분이 생각하며 행하는 그것을 우리도 같이 생각하고 같이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가 우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8. 야망과 욕심에 가득 찬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43절 이하에 보니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려는 자는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5절에, 나도 세상에 온 목적이 내 생명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리되 영원히 살리기 위함이고, 그렇게 하려고 남을 섬기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며, 그 일을 위해서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행복과 성공을 꿈꾸면서 살아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사방에서 많은 사람이 박해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부당한 대우와 범죄로 말미암아 희생을 당하고 있으며, 이런 고통이 개인에서 부터 시작해서 단체나 민족 단위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눅19:10)이라 하셨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가 있"(마9:12) 다 하시며, 그 아래 13절에 가서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하시면서, 죄로 말미암아 여러 모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이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9.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은 물론이고, 서두의 플러드 선교사의 이야기는 감동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지를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베대의 아들들이 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수님 처럼 생각하고 예수님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면, 그 꿈과 계획 속에서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그런 삶 속에 성령님이 함께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자랑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남이야 어찌 되었던지 내 성공과 행복 만을 추구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그들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라면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도 기쁘고, 바울 처럼 수도 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가도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어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의 완성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자가 세상에 온 목적이 많은 사람을 섬기되,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려 함이라 하셨으니, 제자 된 우리도 예수님 처럼 섬김을 위해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