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23.군중과 제자들(마가복음3:7-19)
[성경본문] 마가복음3:7-19개역개정
7.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군중과 제자들(마가복음3:7-19/2018.9.23.오전)
1. 제가 오래 전에 한국에서 택시를 탔는데, 이 분이 운전을 너무 거칠게 해서 나는 바쁘지 않으니 천천히 가자고 했더니, 하는 말이 뭐 그래 오래 살려고 하느냐면서 이렇게 살다가 팍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손님을 태우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자신의 사명은 아랑곳없이 그야말로 너 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사는 인생 같았습니다.
의외로 우리 주위에 보면 이와 같이 마구잡이로 사는 인생이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며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를 때 일어나는 현상은 제 인생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함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가치 없는 생명이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내 생명, 내 삶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그곳에 걸맞은 사명과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집게벌레는 천하에 무용지물 같고 징그럽게 보이지만, 그 벌레를 자세히 관찰하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감동시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알을 낳고는 쉬지도 못하고 그 알에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하나 하나 자신의 혀로 계속해서 핥아 주다가 지치면,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그 어미를 갉아 먹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이런 벌레보다 못한 모습으로 산다면, 이 사람은 인간의 존엄과 그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2. 우리가 몸담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이 교회라는 존재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권세나 어떤 세력에 의해서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사죄의 은총과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소망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고, 고통 하는 자와 슬픈 자에게 감사와 찬송을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상의 눈높이에서 보고 판단하면 이 사람은 영원히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은 자의 은혜를 노래하고 또한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나와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축복의 그릇으로 삼고,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향하여 너무 많은 무리들이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렇게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문제는 이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이렇게 찾아다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 찾아 나온다고 했고, 요6:26절에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 라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오는 이유가 내 육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에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사람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로 그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들을 초청해서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해서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원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까?
내 지식이나 내 경험, 내 능력에 의해 스스로 판단해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본문 13절에 보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구원받고 은혜의 자리에 나온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밀고 에워싸고 한 마디로 질서가 없는 혼란상태였습니다.
오죽하면 9절에 보니 예수님이 그들을 피하기 위하여 배를 준비하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에는 주님이 직접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제자의 특징은 내가 스스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나의 필요에 의해 내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 21세기 우리 인생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 순종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부려 먹으려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도 내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유는 내 필요를 채워야 하고,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질서도 없이 몰려다니는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필요로 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분 때문에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우리가 누구를 만난다면 그 대상이 예수님이든지 부모님이든지 스승이든지 당연히 다 내가 부려 먹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을 둘러싸고 엄청난 숫자의 군중들과 소수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군중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선동 당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광우병으로 인한 촛불 데모나 세월호 사건과 대통령탄핵에 사용된 가짜 태블릿에 의한 광기의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이미 예수님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거짓과 악의에 가득찬 선동에 의해서 무고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성난 군중들의 함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을 향해 분노심을 가지고 죽음을 선언한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큰 무리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군중의 한계요 약점입니다.
5. 예수님은 군중들에게는 그런 말씀이 없지만,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따라 오라"(마4:19) 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마16:24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와서 배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군중들을 향해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군중과 제자의 차이점입니다.
과연 제자의 삶이란 군중들처럼 내 필요를 채우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필요에 의해 부름 받고, 주님의 요구에 의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나 자신을 그 분의 소유를 드리는 것이 제자의 삶이요, 십자가 복음을 위해 온전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군중은 필요에 의해 모였다가 필요가 채워지거나 일정이 끝나면 다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는 것입니다.
6. 본문 14절 이하를 보면 몇 가지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하였는데, 이것은 온전한 제자로서 세움을 입기 위한 훈련이 목적입니다.
문호 세익스피어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3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위대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토머스 에디슨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강요받을 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이 세 가지가 다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세 번째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9절에도 보면 제자들에게 명령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도 명령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명령이라는 강요에 의해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려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을 배우려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을 한 번이라고 만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자는 그 분과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는 특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함께 하고 나누는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로,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이것은 그들이 받은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감당해야만 하는 사명이 무엇인지, 내가 평생 감당해야 할 직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눅19:10에 보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를 지셨고,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4절에서 그들을 내 보내셨다는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시고, 예수님이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이제부터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들이 대신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원하는 그것을 너희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특별히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셋째는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대신 감당하는 사명자로 살려면 신분이 변화되어야 하고, 그 변화된 신분에 어울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경찰을 보면 20대 초반에 경찰 유니폼을 입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제 눈에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찰이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면 일국의 수상이라도 멈춰서야 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신분에 어울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대행하려면 당연히 예수님의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평생을 군중 속에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과, 예수님의 필요에 의해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의 삶을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군중들은 자기의 필요를 따라 예수님을 찾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들의 필요를 위해 찾아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날마다 주님 앞에서 주옵소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명과 능력을 받은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군중들은 책임 의식이 없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면 그때부터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사명을 받은 대로 책임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권능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주일 예배만 드렸다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또 일주일 동안 세상에 나가서 내 마음대로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교회 안에도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동거하는 그런 특권을 누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대신하여 그 일을 사명으로 받은 축복을 누리고,
영적인 싸움에서 늘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무장하여, 지금까지는 고침 받는 존재였고 위로받는 인생이고 도움 받는 연약한 인생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찾아가서 고치고 회복시키고 도와주고 구원하는, 세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주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이렇게 제자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